밖에서 안으로

[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1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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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가까운 데다 곳곳에 숲과 둘레길, 하천이 펼쳐진 고도 제한 지구는 계절 옷이 여러 벌이다. 철마다 하루가 다르게 오만 가지 계절색을 뽐낸다. 그 숱한 빛깔들을 늘 곁에 두고 산다는 것이 고도 지구 거주민의 큰 호사다. 자연이 발하는 천연색에 어찌 순위를 매길 수 있겠냐만, 내 얄팍한 도량은 기어이 한 계절을 으뜸으로 삼고 말았으니⋯ 바로 겨울이다. 주택가를 빙 두른 산천초목이 눈옷으로 갈아입는 순간 사방 천지가 화폭으로 둔갑한다. 쌓인 눈의 양과 농담에 따라 어떤 날엔 백묘화, 또 다른 날엔 수묵화가 전개된다. 봄⋅여름⋅가을의 형형색색 가려(佳麗)한 수채화도 물론 좋지만, 휘황함을 잠시 거두고 담묵에 가깝도록 제빛을 삼가는 겨울 풍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품게 만든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안달해 온 그간의 내 분투와 처신이 가소로워진다. ‘중꺾마’의 외피를 둘러썼으나 실제 본체는 ‘인정 욕구’인 마구잡이식 원심력—‘될 때까지 한다!’ 태도로 지속한 입사 지원, 공모전 응모, 출판사 투고 등등—이 그제서야 오랜 팽창을 그친다. 졸아들고 졸아들고 또 졸아들다가 원점을 되찾으면, 밖으로만 뻗치던 에너지가 돌연 방향을 바꾼다. 나 스스로 그걸 느낄 수 있다. 눈자라기의 첫걸음마와 같은 생된 기운이 내 안을 향하여 아장아장 밀고 들어온다. 겨울 낙엽목이 오색 잎으로 치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데 쓰일 에너지(수분 공급과 광합성 작용) 일체를 제 몸안에 꾹꾹 눌러 담아 시리고 건조한 겨울과 맞서기 위함이다. 깊디깊은 내공 수련 끝에 머리칼이 하얗게 샌 무림 고수처럼. 그야말로 최대치의 구심력.

동네 겨울 풍경을 흉내내면서 나도 자신의 채도를 한껏 낮춰 본다. 아장걸음이던 구심력이 내 마음 안으로 달음박질쳐 올 수만 있다면야, 남들이(혹은 세상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전혀 괘념하지 않을 것이다. 옅어진다, 하얘진다, 단단해진다, 장엄해진다, 나는 산이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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