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0
회사 다닐 때 친한 직원들 열댓 명끼리 일박 이일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사진을 무진장 찍어 놔서, 보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아이클라우드 폴더를 뒤적거린다. 그래서인가 날짜도 안 까먹는다.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오라동 메밀밭, 지점명이 무려 ‘성산일출봉점’—도로명 주소 또한 ‘성산읍 일출로’다.—인 프랜차이즈 카페, 당시 인기였던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아이유 씨가 방문한 노형동 천왕사 등지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섬 속 섬’이라 불리는 우도(牛島)다. 소가 누운 모습이라 이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이미 이곳저곳 쏘다니다 온 터여서 녹초가 된 상태였다. 몇몇은 가만히 앉아 쉬기로 하고, 나머지는 이륜차 대여소에 갔다. 섬을 걸어서 돌기는 힘드니 탈것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대여소가 취급하던 스쿠터와 전기 자전거 모두 시속 25㎞ 속도 제한을 걸어 둔 것들이었다.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 2종 소형 면허, 자동차 면허 등을 소지하지 않아도 합법적 주행이 가능한 이륜차들이었다. 돈만 내면 무조건 대여 가능한 게 아니라, 우선은 안전 점검 차원에서 ‘테스트 운전’에 통과해야 한다. 같이 온 동료들이 스쿠터를 능숙하게 다룬 반면, 나는 안장 위에 앉는 것부터 쩔쩔맸다. 간신히 시동 거는 데는 성공했지만 단 1미터도 나아가지 못했다. 균형을 못 잡고 자꾸 기우뚱댄 탓이었다. 결국 대여소 안내원이 ‘스쿠터 대여 불허’ 결정을 내렸다. 동행들이 폼나게 스쿠터 핸들그립을 부릉부릉 돌릴 때, 나는 전기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이게 뭐라고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갔다.
서울로 돌아와 나름 설욕전을 준비했었다. 스쿠터 오너인 친구가 안장에 나를 앉히고 미주알고주알 운전 요령을 가르쳐 주었으나⋯ 결과는 매번 우도에서와 같았다. 나는 깔끔히 마음을 접었다. 그 뒤로 내게 오토바이는 일종의 ‘불가능한 꿈’ 같은 상징물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 스스로는 나아갈 수 있다 믿지만 현실은 늘 비틀비틀. 그럼에도! 욕심만 버린다면 대안과 대체물은 금세 찾아진다. 스쿠터 대신 전기 자전거를 탔듯이.(막상 타고 우도 풍경을 감상하니 기분은 좋았다.)
귀여운 길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부터 집어 들 듯, 길 가다 예쁜 오토바이를 보면 자동으로 카메라 전원을 켜게 된다. 내가 끝내 올라타지 못한 꿈, 앞으로도 이뤄질 가망이 없는 꿈(균형감은 음감⋅박자감처럼 어느 정도는 기본기를 타고나야 하는 ‘자질’의 영역이 아닐까!). 그 꿈들을 사진으로나마 남겨 두는 청승맞은 심리. 포기한 것들도 모아 놓고 보니까 예쁘기만 하다, 라고 자족하는 대책 없는 낙천관. 아마도 이런 꺼벙한 기질 덕에, 이런저런 포기 이후로도 심통 안 부리고 그럭저럭 앞으로 나아가지 않나 싶다. ⋯⋯라는 건 자기 합리화일까 객관화일까.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