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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Jan 26. 2024

교실을 예민하게,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고운

언니와 나는 한 독서모임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2016년, 모두가 페미니즘이라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던 때에 언니는 그 이슈에 풍덩 뛰어들었다. 비장한 전사 같다기보다 흥미로운 모험을 떠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초등학교 선생님인 언니는 함께 여정을 떠날 크루를 모으고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를 만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일을 유쾌하게 해나갈까?’

나를 포함한 많은 지인들이 아마도 언니를 보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안 그래도 에너지 넘치는 언니가 8년째 애정과 열정을 듬뿍 쏟고 있는 ‘아웃박스’. 그 길을 항해하며 겪은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다.


<사소한인터뷰> 416번째 주인공, 고운. 얼마 전 결혼식에서 하얀 수트를 입고 입장하던 모습!




안녕! 언니의 이야기를 <사소한인터뷰>로 담을 수 있게 되어 기뻐. 먼저,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저는 고운이고,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교사를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아웃박스’라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웃박스’는 성평등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모임이에요. 팀의 모습은 독서모임으로 출발한 처음과 많이 달라졌지만 뜻은 늘 같지요. 성평등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소한인터뷰>에는 1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식 질문이 있어. 언니를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요즘처럼 아무것도 모르겠는 시기에 이런 질문을 듣다니.(웃음)


요즘의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 ‘되고 싶은’ 것이 많아. 지금 내가 되고 싶은 상태는 이런 거야.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다’, ‘더 유쾌하고 편안하고 싶다’, ‘더 사람들이 찾아주는 존재이고 싶다’, ‘더 좋은 일들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등. 에너지가 넘쳐서 여러 일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큰 상태야.


이미 유쾌하고 편안한데 얼마나 더…(웃음)


혹시 이효리가 새로운 프로그램 시작하면서 새해 인사하는 영상 봤어?


“갑진년, 바로 저다 값진 년. 올해는 바로 저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라면서 웃는 영상. “여러분, 값진 년과 함께 갑진년 파이팅 해봅시다”라고 하는데, ‘와 이 드립은 진짜 이효리밖에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 농담을 사람들이 오해 없이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여야 저런 드립을 칠 수 있거든. 그 정도는 되어야.(웃음)


맨날 아웃박스 맨투맨만 입고 다니려고 회색&남색 조합으로 만든 거 아니냐며. 아웃박스밖에 모르는 바보.



Part 1. ‘아웃박스’라는 모험의 시작


아웃박스의 슬로건이 ‘교실을 예민하게, 세상을 들썩이게’야. 이 슬로건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어?


원래 처음 슬로건은 ‘남자답게? 여자답게? 아니, 나답게!’였어. 그런데 우리가 바꾸고 싶은 건 구조인데, 그 슬로건이 당사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표현인 것 같아서 바꿨지. 2022년에 이틀 동안 워크숍을 하며 추리고 추려서 바꾼 슬로건이 ‘교실을 예민하게, 세상을 들썩이게'야. 개인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불평등한 포인트를 알아차리고, 우리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그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어.


‘예민하다’는 표현은 아웃박스가 책 『예민함을 가르칩니다』를 썼을 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라고 출판사와 고민을 많이 했어. 예민하다는 건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라는 뜻인데, 이런 능력을 자꾸 무디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지내게 만드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오히려 그 인식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넣었어.


문득 궁금해졌는데, 사람들은 왜 예민한 걸 경계할까?


우리는 갈등을 싫어하니까! 예민함은 불편하고 곤란한 문제상황을 개선하게 만드는 힘인데, 기존의 것을 바꾸려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 밥상에서 나누는 대화부터 제도 같은 큰 문제까지 말이야. 갈등의 대화도 어렵고, 그 대화를 통해 생긴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걸 테니까 그것도 어렵고. 


물론 그럼에도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나면 또 금방 적응하는 게 사람들이기도 해.


‘아웃박스’를 만들기 전에 언니에게는 젠더 관련하여 어떤 고민이 있었어?


솔직하게 말하면 없었어. 20대 때는 관련 고민이 거의 없었고 놀기 바빴던 것 같아. 그러다 서른이 되면서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 커뮤니티를 시작했고 새로운 인사이트와 자극을 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그 시기가 2016년쯤이어서 자연스럽게 맞물렸던 것 같아. 2016년에 강남역 살인 사건도 있었고 『82년생 김지영』 등 페미니즘 책들도 막 쏟아져 나왔고 문단 내 성폭력도 있었고 정말 이슈가 많았잖아.


원래 독서모임을 하던 교사 친구들끼리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페미니즘의 F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다들 관련된 경험이 있는 거야. 한 번도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도 비슷한 경험이 다 있으니까 이상했어. 전 세계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거면 이건 개인적인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토론을 했는데 사람들이 자꾸 “당장 해결하기 너무 어려운 이슈니까 교육이 바뀌어야 된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어. ‘그러면 우리가 교육에 있으니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라는 마음에 2017년부터는 교사 독서모임을 연구회로 바꾸어 시작하게 되었지. 그렇게 그냥 한번 해본 건데 재밌었어.


언니 개인에게는 진짜 재미의 영역이었구나.


응. 돌아 보면 그때 만든 강의 자료, 수업 자료가 진짜 엉성했는데 그래도 재밌었어. 이전 선배들이 만든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도 한몫했던 것 같아. 알고 보니 우리 앞에는 수많은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잘 몰랐어. 그 세계를 앞서갔던 언니들의 이야기를.


인터뷰가 진행된 숙대입구역 근처 어느 아담하고 따뜻한 동네 카페


그쯤에 교사라는 길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


교사라는 직업이 보통 24세에 시작해서 63세까지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긴 거야. 교육 공무원을 들어갈 때 ‘3년만 하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별일 없으면 정년까지 할 거라 기대하고들 시작하는데, 하다 보니 이 일을 40년 동안 그냥 반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어.


이 일을 오래 즐겁게 하는 선배들을 보니, 자기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면 나는 뭐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재밌어하는 것들을 다 해봤어. 20대 중후반부터 이런저런 연구회 활동도 하고 강의도 들었는데, 딱 내 것처럼 붙는 게 없더라고. 근데 독서모임 하면서 젠더 경험에 대해서 나누는 건 되게 재미있었어. 이 분야가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고,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처음부터 ‘이걸 내 분야로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뛰어든 건 아니었지만, 그냥 이게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니까 공감이 확 됐어. 결정적으로 안 따분하고 새로웠지. 특히 학교에서는 그전까지 전혀 해본 적이 없던 이야기기 때문에 더 신기하고 재밌었어.


아웃박스 덕분에 학교 밖보다는 학교 안에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구나.


그치. 사실 ‘이 일 오래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진심은 아니야.


나는 학교에 있는 걸 좋아해. 아이들 인생에서 찰나지만 1년 동안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야. 그 일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 최근에 학교 선생님들이 힘들어하고 비관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잘 있고 싶어서’지, 파고 들어가 보면 ‘학교를 뜨고 싶어서’가 아닐 때가 많아. 나도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으니까 학교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그게 자꾸 실현이 안 되는 것 같고 오랜 기간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못 찾겠으니까 ‘오래 못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던 거지.


더욱이 성평등 교육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니까 더 학교 안에 있어야 되겠더라고. 바깥에 나가서 하는 활동으로는 도저히 폐쇄적인 학교 공교육에 침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웃박스를 만들고 생각과 계획을 구체화하면 할수록, 제약이 많고 아쉽더라도 학교 안에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




Part 2. 아웃박스가 항해해 온 길


아웃박스 이름으로 낸 책이 무려 4권! 작년 가을에는 성평등 기획전 <인사이드 더 박스>도 열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았다.


지난 8년간 정말 많은 시도를 해왔어. 아웃박스가 책, 수업 자료, 강의, 행사 등 다양한 매체와 접점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한국에 성평등 교육이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


진짜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야?


없어. 특히 초등 교육에는 없어. 정규 교육과정 내에 그 주제를 메인으로 다루는 건 아예 없어.


교과 교육과정에서도 국어 교육의 목표라고 하면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등 주제마다 성취해야 되는 기준이 있어. 예를 들어 5, 6학년에 '드러나지 않거나 생략된 내용을 추론하며 듣는다' 같은 성취 기준이 있다고 하면, 그걸 달성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구현해 놓은 게 교과서야. 한국의 교육 과정에서는 성취 기준에 어떤 한 문장이 들어 있는지가 되게 중요해.


그 어떤 교과의 교육과정에도 ‘양성평등’,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와. '생활 속에서 인권 보장이 필요한 사례를 탐구하여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권 보호를 실천하는 태도를 기른다'라는 성취 기준이 들어있는 단원에서 선생님이 교육 자료로 성평등 이야기를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없는 거야. 그나마 2009년에 만든 교육과정에 따른 4학년 2학기 교과서에서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단원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없어졌어. 


물론 “그럼에도 발전이 없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지. 예전과 달리 역사 다룰 때 여성 역사 인물을 소개한다든지, 뉴스에서 한 번 주목받으면 남자는 다 의사고 여자는 간호사인 삽화를 바꾸는 등의 변화는 있지만, 성평등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초등학교 교과 교육과정은 없어. 


선생님이 작정하고 가르치지 않는 이상 배우기 어렵겠네. 


그치. 성평등 교육이 정치적인 얘기라서 하면 안 된다는 인식, 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인식도 있으니 웬만하면 하지 않아. 굳이 나서서 논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도 성교육 시간에 콘돔 씌우는 거 보여줬다고 민원 들어오고 뉴스에 나오는데, 초등학교에서는 꿈도 못 꾸는 거지.


이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라고 생각하는데,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거든. 근데 ‘정치적 중립’이라는 표현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풍토도 분명 있어.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해 보자면 ‘성평등 교육이 지금까지 없었는데, 사회는 성평등 주제로 시끌시끌해져 이미 아이들은 접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의 스탠다드를 올릴 필요가 있다’, ‘근데 지금 우리에게 아무런 교육 자료가 없다', ‘그 자료가 바로 여기, 아웃박스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웃음)


시대가 바뀐 지 좀 됐는데 교육이 아직 똑같다니 아쉽다.


그간의 노력 덕분에 조금씩 변하고 있는 교실의 모습들


성평등 교육이라는 주제가 정말 쉽지 않은 키워드야. 비장하게 보면 한없이 비장해질 수 있는데, 언니는 늘 편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게 참 신기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건 그냥 기질인 것 같아. 내가 원래 무딘 성격인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까지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


이 주제가 정말로 너무 절박하면 비장해질 수밖에 없거든. 사실 “당신에게 젠더 이슈가 그렇게까지 크리티컬하지 않아 보이는데 왜 업으로 삼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어. 그럼 난 이렇게 답해. “이 문제가 되게 중요한 주제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고, 훨씬 절박한 사람들보다는 내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하고 싶다.” 장애인, 저소득층 여성, 이주 여성 등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무언가를 해서 조금이나마 해소됐을 때 그 유익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누릴 수 있다면, 이만큼 가성비 좋은 활동이 어디 있나 싶어.(웃음) 젠더 이슈가 '여성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봤지만, 성별로 옭아매는 데서 자유로워지는 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봐.


언니는 그런 얘기를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기질을 가진 편이구나. 


맞아. 그 절박한 마음이 뭔지는 그동안 공부도 하고 실제로 마주하기도 했기 때문에 깊이 공감해. 절박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조금 덜어내고 때론 차갑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히려 내 문제는 민감하지 못한 게 아니라, 유약함이거든? 담대하지 못한 게 이 일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데, 그건 우리 동료들 덕분에 어느 정도 헤쳐올 수 있었던 것 같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이 일하는 내 마음의 대장 수진이부터 시작해서 서로 보듬고 응원하는 아웃박스 멤버들이 없었으면 이걸 계속 유쾌하게 하지 못하고 쪼그라들어버렸을 거야. 혼자서 성평등 문제를 푸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고, 그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믿을 만한 동료가 있는 건 무슨 일을 하든 제일 중요한 요소일 지도!


신나는 모험의 크루들이자 언니의 믿을 구석, 아웃박스 팀.


아웃박스 활동을 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어떨 때야?


최고의 순간을 하나만 꼽기 어려울 정도로, 뿌듯한 일은 투성이야.


사람들은 반드시 뭘 느껴. 느끼고 바뀌어. 변화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 영향을 받지. 특히 영향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은 꼭 변하고, 그 변화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어. 사람들이 “덕분에 생각해 보지 못한 걸 알게 되어 고맙다", “덕분에 바뀌었다"라는 얘기를 해 주면 신이 나. 그런 즐거운 순간들에 우열을 가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 


앞으로 아웃박스가, 그리고 아웃박스를 함께하는 언니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제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려 해. 선생님뿐 아니라 청소년, 학부모 등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커뮤니티. 


사람들을 모아서 성평등 교육 얘기를 지치지 않고 재밌게 나누는 경험을 주고 싶어. 처음에 우리가 너무 재밌다고 느끼고 ‘이 활동을 통해 진짜 대한민국이 바꿀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처럼 좋은 첫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어.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나도 지금 8년째 하고 있으니, 사람들에게도 설레는 경험을 만들어 주어 어딘가에서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거지.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구상 중이지만, 성평등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올리고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어.


결국 성평등 교육은 실천의 영역이라서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려워. 사람들이 이 이슈에 대해 좋은 마음을 먹고 갈 수 있는 토대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기분 좋은 숙제야. 개인적으로도 수업 기획하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만나서 수다 떠는 걸 더 잘하고 즐길 것 같아.(웃음)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이 있어. "본인의 성격에 대해 만족하나요? 변하고 싶다면 그 이유도 궁금해요."


마음에 듭니다. 고치고 싶은 습관 많지만 성격은 마음에 들어요.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어쩌죠.(웃음)


다음 인터뷰이에게 흥미로운 릴레이 질문 하나 남겨주자.


“요즘 뭘 잘하고 싶나요? 그걸 잘하기 위해서 뭐 할 건가요?”

요즘에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에요. 정말 사소해도 돼요. 물구나무 이런 것도 돼요.


마지막으로, 아웃박스 응원하고 지지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남겨줘.


팬이라뇨, 동료죠. 아웃박스는 이 이슈에 공감하고 지지해 주시는 동료 시민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개인적으로 전방에서 법도 바꾸고 활동하는 활동가를 보며, 저는 후방에 있다고 생각하곤 했는데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수업 자료를 만들고, 강의도 하는 활동이 누군가한테는 ‘내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시고는 부채감을 갖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마음 자체로 되게 감사하고, 저와 아웃박스팀이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에요.


사실 그게 진짜 실체가 있는, 확실한 마음이지요. 매번 욕만 먹는다고 생각하다가, 묵직한 응원과 지지의 말씀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욕하는 사람은 실체가 없는데 그 한 마디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우리가 기대야 될 것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따뜻한 동료 시민의 한 마디라는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응원의 말을 멈추지 말아 주세요.(웃음)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은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 생각하곤 했다. 더 잘하고 싶어 고민하는 언니의 평범한 표정을 보며, 어쩌면 나의 생각이 그 일에 선을 긋고 구분 지어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언니처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부딪혀 봤나'라는 질문이 남았다. 내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부딪히고 지켜내야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언젠가 나의 길을 찾아 걷게 될 때 언니의 얼굴, 농담하며 어려움을 툭툭 털어내던 모습을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뚜벅뚜벅 해내는 언니를 보며,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든 언니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귀하고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걷고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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