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가 있다

by 영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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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약간 정신이 없고 숨차고 조금은 지쳐있다. 아득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숨차고 지치지만 아가와의 정신없는 아침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는 하다. 아이와의 이 모든 실갱이. 아침을 깨우며 아이 얼굴에 내 얼굴을 파묻는 일, 아이를 들어 안고 궁둥이를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하는 일, 아침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원(?)하는 일, 무엇을 입힐지 옷을 고르며, 어떤 모자를 쓸 건지 묻는 일, 아침 동화책을 읽는 일, 때때론 한권을 함께 골라 가방에 넣는 일, 더 놀면 엄마는 지각이라며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 그 모든 일들. 매일 매일 전쟁같지만, 벌써 부터 이 때를 그리워하고 있을 조금 먼 미래의 내가 그려져서 애잔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 나의 때란 그런 것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아이의 필요를 채우고, 온갖 짜증과 온갖 즐거움을 받아내는 때. 나의 즐거움은 조금 미뤄두고, 귀하게 얻은 이 생명의 자라남에 나의 시간을 온전히 투여해야 하는 때말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겪었으면 체력이 조금 더 나았을 테지만, 또 젊은 나는 지금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매일 매일 작은 전쟁을 치뤄야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늘 미안하다. 엄마아빠와 노는 시간이 부족하니, 밤에는 더 놀지못해서 잠을 미루고, 아침에도 엄마랑 조금 더 놀자며 등원시간을 미루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밀리면 나는 조급해져서 아이를 닥달한다. 닥달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자아가 분열될 지경. 내가 둘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 둘이면 또 의미가 없지 하고는 단념한다.


아침이 등원전쟁이라면 저녁에는 잠과의 전쟁이다. 우리 아이는 잠이 드는게 쉽지 않다. 책도 읽어주고 블록도 하고 이런저런 놀이를 할 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내 안되겠다 싶어 자는 척을 해봐도 어떤 날은 정말 잠이 들지 않는다. 그런 어떤 날, 나도 모르게 '너무 힘들다'는 말이 입밖으로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데, 아이는 그저 나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놀고 싶은 것 뿐인데, 그런 말이 입밖에 나와서 스스로 화들짝 놀라 아이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맞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졸려서 힘든거라며 말을 얼버무렸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육아는 거의 죄책감과의 왈츠.


늘 미안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균형이므로,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잘 유지하며 이 시기를 지나가야한다. 그저 적당히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도닥이며 매일을 지나간다. 돌아서면 월요일, 돌아서면 주말이다. 어느새 아이의 바지길이는 훌쩍 짧아져 있다.


나는 생각보다 욕망에 충실한 엄마라, 일이며, 공부며, 글이며, 여행이며 그래도 여력이 닿으면 뭐든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욕망에 충실한 편인 나도 (마음이) 참 쉽지는 않다. 애엄마가 어디를 다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반대로 아이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지 불평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니, 대응할 말을 찾다가 포기하고 만다. 울컥하다가도 지나고나면 뭐 다 맞는 말이다 싶어서 대응할 말을 찾던 나를 나무라게 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한 것은 시간이다. 운동 할 시간이 내게는 물리적으로 없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는데, 일단은 한해(?) 미뤄두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보고 싶은지가 한참인데, 아직 보지 못했다. 작년에 함께했던 스터디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채 참여한 적도 두번(?)이나 된다. 마감을 놓쳐서 이제야 쓰는 브런치 연재며. 연극보고 쓰지 못한 리뷰며. 소논문 준비며. 구체화해야 하는 올해의 사업계획들. 일과 육아만 해도 벅차서 부족한 시간. 욕심이 나서 하겠다고 했던 것들을 미처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오는 좌절.


(일과 육아가 전부인게 맞는데도) 일과 육아를 빼고 내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이 막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밀려오면 우울해지기 쉽다. 더욱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다. 그런 멋지지 않은 나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지금은 그런 때인 것이다. 내가 선택한 지금 내 때. 내가 선택한 결혼과 출산이 지나가야 하는 시간들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 것. 그 시기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와 아이가 탄생하기 이전과 당연히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어야 한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난 연말 소중한 지인들을 만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내준다면 그 사람들은 내게 정말 소중한 이들인 거구나. 한편으로는 시간을 내어주지 못해도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나를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서 또 얼마나 감사한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 내 곁에는 젊은 시절 이해관계없이 마음과 시간을 다한 관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나를 진정 아는 이들(知己). 계속 만나고 연락하고 시간을 들여 관계를 일부러 유지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믿고 내 곁을 지켜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평안하게 한다.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대개 학창시절과 인생의 초년 시절에, 순수한 내가 순수하게 맺은 관계들로 부터 일때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깊은 사귐도 때가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다 때가, 자기 시기가 있다. 나의 지금을 헤아려주고 기다려주는 이들을 믿고 지혜롭게 지금을 사뿐이 밟아나가보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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