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 영원한 게 없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나와 같은 일반인이 AI로 영상도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하는 시대가 왔다. 정보와 부의 격차는 더 커지고, 기후위기에, 여전한 전쟁과 늘어만 가는 자살률이 세계를 낙관하게 하지만은 않는다. 한 해가 저물 즈음 새해를 준비하며 트렌드를 짚어주는 책들이 쏟아진다. 덕분에 시대의 변화를 감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세상이 걸어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태어나 다른 트렌드들을 살아내는 세대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으니까. 영원한 게 없어서 재미있지만 또 그로 인한 불안도 있다.
문득 신발 뒤축 하나도 관리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그 불안은 더 커진다. 큰 마음먹고 산 가죽구두도 어느새 신다 보면 뒤축이 다 닳아서, 어떨 때는 미처 살펴보지도 못한 채 뒷굽을 갈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가죽구두를 오래 신으려면 이른바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오염이 되면 닦아주고, 뒤축과 밑창도 살펴가며 갈아주고 기름칠을 해주어야 오래도록 신을 수 있다. 한 신발만 주야장천 신기보다 돌아가며 신어주고 신이 숨을 쉴 수 있게, 자기 몸의 탄력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집이나 직장 근처, 자기 활동반경에 잘하는(?) 구두수선집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두 곳이상은 방문해 봐야 수선 시세도 알 수 있다. 신발 하나만도 이러한데,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관리'를 요한다.
건강도, 지갑사정도, 인간관계도, 커리어도,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 그렇게 멈춰있는 것은 이미 도태된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 생각하건대, 관리를 하려면 각각의 원래 속성과 가치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고, 그 각각이 지녔을 시간을 내다볼 줄 알았어야 했다. 미처 무언가의 속성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나는 그저 나이만 훌쩍 먹어버린 것만 같다. 돈에 대한 것도 그렇다.
자라면서 돈에 대한 교육을 크게 받아보지 못했다. 필요한 것들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용돈의 개념이 크게 없었다. 세뱃돈도 엄마가 가져가기 일 수였고, 수중에 크게 돈이 없었다. 그리고 돈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없었다. 주일이면 받은 돈을 가지고 가서 헌금을 했다. 물질이란 것에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 돈이 때로는 우리 부모의 주요 싸움의 이유였기 때문에 약간은 악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돈에 대한 개념이 없이 커서는 부끄럽게도 지원해 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대학원을 다녔다. 한편으로는 돈에 큰 관심이 없는 탓에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적은 보수를 받고 사명감을 가지면서 일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돈은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도구이자 삶의 기반이었다. 돈을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한다는 의미였다. 돈은 사람의 심리 그 자체이고, 사회와 시장의 작동원리였다. 돈이 많다는 것은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고,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감각한다. 게다가 앞으로도 그렇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갑자기 오만가지 정보의 홍수에 빠져들기도 한다. 재테크 노하우와 이렇게 해야 절세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모든 가르침들에 마구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지쳐서 이것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또 낙담을 한다. 그래서 여적죄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일 게다. 누군가는 그렇게 시대를 읽고 돈을 버는데 말이다.
모든 것을 관리하려고 생각하면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도 피곤하고, 실제로 그렇게 '관리'의 측면에서 모든 것이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어떤 습관과 감각을 기르도록 해주고 싶다. 나는 돈을 터부시 하며 지냈지만, 원하는 것,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전략을 짜고 노력해 보는 경험,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늘려나가는 경험, 저축의 습관, 절약 습관 이런 것들을 용돈이라는 것이 필요해지는 순간부터 자기가 가진 것과 가지고자 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원하고 있을 때의 선택과, 유한한 시간과 재화를 어떻게 자기 범주안에서 꾸려갈 것인가의 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설명해 주었더라면 내 삶도 달라졌을까. 하하. 그냥 어서 일어나 학교에 가라고, 학원에 가라고, 친구들과 싸우지 말라고, 행동에 대한 가이드는 무수히 받았는데,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준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유한하고, 영원한 것이 없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 삶을 꾸려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 줬더라면 내 세계가 조금 더 넓어졌을지 모르겠다.
동시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보게 된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 속에서 영원할 것들을 발견하고 만들어가고 지켜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사람, 기준이 되는 사람이 되는 상상.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도전이 길이 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AI 시대를 만든 사람들이 세상을 점령한 지금,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기 흐름과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한데, 그런 감각을 키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시도와 경험과 실패와 성공을. 그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는 것 같다. 삶에 대한 감각을 생각으로 흡수하고 몸이 저절로 반응하도록 말이다.
너무 당연하고 뻔한 말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적어본다. 생각하고 적고 말하면 내게 각인될 거라는 감각으로, 아이를 대할 때 내게도 그런 몸의 습관과 생각의 방향이 바로 작동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번 주 마감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너무 두려웠는데, 부족함에도 일단 쓴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한주 또 발행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