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by 영롱

연재를 하기로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그 후로 본업에 매진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새 해 새 마음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하며.




지금 돌아보건대,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주었으면 좋았겠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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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너는, 네가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리고 그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기만 하면, 네가 되고 싶은 그 무엇이 정말로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어디든 도달해 있을 거라고, 누군가 말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은 나의 부모와 나를 둘러싼 어른들을 탓하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나의 두 팔을 쥐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이것이 정말 진짜라고 각인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그러니 네게 맞는 것을 살펴서 좋은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 당시의 나에게 필요했던 것 같다.


무엇이든 정말로 될 수 있다고



꿈이라는 것은 의지와 끈기에 관한 것이지, 부유함과 재능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누군가 내게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좋은 목표란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종착지가 아닌 여정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삶의 방법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너는 어리지만, 어려도 생각의 깊이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줬더라면

충분히 생각하면서 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해줬더라면

그냥 괴로워하거나 피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이것은 내 부모를 탓하는 말은 아니다. 다들 어렵던 시절, 그만큼 살아낸 내 부모를 나는 존경하고 한편으로는 연민을 가진다. 나였더라면 그마만큼도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내 부모덕에 내가 배우고 익히고 살아온 경험과 삶의 여건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어릴 적에 이모는 줄곧 내 이름자 뒤에 박사를 붙여 부르곤 했다. 그러니까 이름하여 "롱박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끝내 스스로도 박사학위를 가지게 된 우리 이모가, 어린 시절 내내 나를 롱박사라고 불러준 덕분에 나 역시도 정말 박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사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은 탓에, 어떤 선택지와 옵션처럼 들렸기 때문에, 마음을 먹고, 그냥 죽어라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엔 어딘가에 나를 도달하게 했다. 방황을 거치고 조금 늦게 공부가 하고 싶어진 나는 덕분에 굳이 박사학위까지 따느라 고생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어 한 공부는 끝을 보게 된다. 지나 보니, 제때에 제대로 공부하면 나중에 나를 증명하기 위해 드는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 이야기는 들었지만, 당시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왜 내게 들리지 않았을까. 들리게 하는 방법은 뭘까. 일단은 부모의 권위가 중요한 것 같다. 부모의 말이 유효한 말이 되려면.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식으로부터 신뢰받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쉽지 않지만 부부가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않아야 할 테고, 서로의 잘못을 아이 앞에서 열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 우리 부모님의 말은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하하.


<홍진경의 공부왕찐천재>던가, 거기서 서울대생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공통적으로 하던 말은 부모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동기부여가 되면, 본인이 필요하면, 알아서 하는 것인 게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중요한 것은 그냥 알려주는 것.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알게 하는 것 말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말 한마디,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그 의미가 크다. 때문에 그 말들은 항상 열려있는 말일 필요가 있다.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아가도록, 그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짜로' 전달될 수 있도록 알려줄 것.


제법 말을 조리 있게 했던 어린 시절에 우리 부모님에게 가장 좋은 직업이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선생님은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내게 맞는 직업인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가족들은 내가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했고, 그렇게 내 꿈은 선생님이 되었다. 매해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을 쓰는 공란에는 조금의 의심과 고민도 없이 선생님, 교사라고 적었다. 그렇게 대학에 갔고, 재수를 하기 싫어서 선택한 전공에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교직이수를 했고, 교생 실습을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갔고, 기간제 교사를 틈틈이 했다. 그렇게 교단에 서면서, 나는 교사라는 직업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라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의 서른이 다 된 시기였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실은 영화였고 글쓰기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만약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면, 그 과정이 존재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상황과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어느 정도의 타협을 거쳐, 할 수 있는 것, 그래도 조금 더 내가 원하는 것으로 선회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돌아보건대 늘 최선을 다했지만 배의 머리를 돌리는 키를 쥐고 있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 늘 최선을 다하는 습관이, 그리고 꾸준히 하는 태도가 그래도 잘하는 영역을 만들고 일할 기회를 열어주기는 했다.


사족이 길었지만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정말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가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을 피부로, 현실로, 실제로, 감각하는 것. 그런 가르침이 내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판단할 옵션과 선택지가 열려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렇게 열어주는 것이 부모와 어른의 역할인 것 같다.


요즘 우리 집 아기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경험들로 동물과학자, 곤충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동물과 곤충에 최근에 경험한 과학자놀이를 합친 것임이 분명하다. 정말 우리 아기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떤 영역에서 활동하든지 다정하고 고운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는 이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며.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의 다짐과 함께 드디어 한편을 매듭짓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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