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에게'라는 주제를 정해두고는, 무슨 말로 시작해서 어떻게 맺어야 할지 이제 와서 감도 잡지 못하겠다. ‘엄마’라는 주제는 모든 이들의 영원한 주제이지만. 동시에 너무도 절대적이고 절대적이어서 쓰기를 망설이는 주제이자, 반대로 너무도 보편적이어서 쓰기가 어려운 주제인 고로. 내가 무엇을 쓴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올 초에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의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오래도록 좋아했고, 종료될 때까지, 종료되고 나서도 자기 전에 자주 듣고는 했다. 작가님의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과 <여행의 이유>를 재미있게 읽었다. 어느 날, 교회 서가에 꽂혀 있던 <단 한 번의 삶>을 발견하고는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내용에 금세 빠져들어 하루 만에 뚝딱 읽었다. 솔직한 글의 힘. 부모님 사후에야 쓰게 된 자신의 부모 이야기. 작가의 표현대로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그 어떤 책 보다 작가의 마음의 ‘추’가 될 것 같은 그런 책.
최근에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햄넷>도 모성에 관한 영화라고 하더라. 너무 보고 싶은데, 또 두렵기도 하다. 자식을 잃는다는 상상조차 두려우니까. 확실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세상의 모든 자녀를 잃은 엄마들의 마음이, 그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임을, 그러므로 누구도 그 슬픔을 그만두라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더 더 공감하게 된다. 책도 좋다고 하던데, 읽고 싶은 책을 다 사다간 파산할 것 같아서 일단 담아만 두었다.
부모라는 것은 아이의 온 세계이자 우주였다가 점점 작아져 끝내 소멸하는 존재. 끝도 없이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는 존재. 나는 왜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를 사랑할 수 없나 생각해 본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기적인 나는 이제 일흔이 다된 엄마가 여전히 나를 더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이제는 나의 돌봄과 사랑이 필요한 엄마가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이해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으니, 그냥 내가 모자란 것이다. 평생을 같이 했는데도, 서로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몰라서, 여전히 상처를 주고 싸우고, 돌아서서 우는 관계라니. 나는 제대로 된 어른인가.
각자의 사정, 각 가정의 슬픔과 비극이 있게 마련이라, 다들 그러하듯 각자의 가정사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우리의 내면을 구성하므로, 완벽한 사람이란 없게 마련이다. 더욱이 식민지와 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친 나라에서 누구 하나 트라우마 없이 자라기 어렵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매사에 부딪히는 일이 싫어서 때로는 어떤 주제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나는 어떤 완벽한 가정의 환상을 만들어두고, 엄마와 아빠의 결핍은 모른 체하며, 그저 엄마, 아빠가 더 완벽하기만을 바라는 바보 같은 자식에 다름 아니다.
참배맛 같은 우리 엄마. 정직하고 투명한 사람. 손끝이 야물어서 무엇이든지 그 안에 아름다운 것들을 맺게 하는 사람. 나는 엄마를 더 사랑해야 한다. 엄마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엄마의 든든한 곁이 되어주어야 한다. 남들 챙길 시간에 내 엄마에게 좀 더 상냥할 것. 우리 엄마는 내가 내 자식에게 하는 것보다 몇 곱절은 귀하게 나를 키웠는데, 참 자식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슬프다.
감기 걸릴까 봐 일 년 내내 입혔던 내복. 초중고 내내 라이딩을 해주던 엄마. 매일 도시락에 넣어주던 손 편지. 용돈에 박했지만 배우고 싶다는 것은 뭐든지 배우게 해 주던 엄마의 지갑. 늘 그 큰 사랑에 내가 못 미친 것이 미안해서, 그런 엄마의 사랑을 못 본 척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외로움과 여성으로서의 슬픔과 이런 것들을 내가 껴안을 자신이 없어서 자꾸 화만 내온 것이 아닐까.
아이가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못된 행동을 할 때면, 아이의 두 팔을 붙잡고 눈을 맞추며 힘껏 말한다. 엄마가 소중해 안 소중해하고 묻고, 아이가 소중해라고 답하면, 소중한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는 거야 하고 가르쳐준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거야 하고 말이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가르치듯 좀 더 내게 소중한 이들에게 다정해야 한다.
엄마. 나를 가장 슬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이자 거부할 수 없이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것을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