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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Dec 05. 2016

식사의 기쁨과 슬픔

크리스텔 이야기  

남편의 사촌동생인 크리스텔을 처음 만난 것은 결혼을 하고도 한 해가 지난 후였다. 

대부분의 시댁 식구들과 인사를 했고, 시부모님과 특히 친한 그녀의 부모님과는 편하게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늘 화제가 되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술기운이 조금씩 오를 즈음, 내내 꺼내지 못했던 그녀의 안부를 누군가 묻고 나면 모두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른거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덤덤하게 최근에 측정한 그녀의 몸무게와 의사의 소견을 이야기해주었고, 가족들은 그 결과에 따라 안도의 탄식을 내뱉거나 걱정의 한숨을 쉬었다.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그녀는 163 센티의 키에 25 킬로그램 안팎의 무게로 생을 버텨내고 있었다. 거식증을 앓은 지 이미 10여 년이 되어가고 있던 때였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놀라움을 물론 잘 기억하고 있다. 

놀라움이라기보다는 충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드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리라, 절대 그녀의 몸에 시선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느릿느릿 차에서 내려 힘들게 떼는 한 걸음 한 걸음도 주변의 부축이 필요했고, 당장에 달려가서 안아 올리고 싶을 만큼 그녀의 몸은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괜찮았다. 달려가 인사를 하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뼈 위에 가죽만 남은 어느 피로한 노인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눈에 스치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분명 읽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크리스텔은 내내 피로해 보였으나, 그 자리의 그 누구보다 상황을 명민하게 파악했고, 사람들과 최대한 섞이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와 함께 식탁에 앉았고, 그 누구의 작은 말에도 재미있는 대답을 내놓아서 좌중을 웃겼다. 냉소적이지만 뛰어났던 그 유머감각은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예민했던 순간은 사람들의 스마트폰이 살짝이라도 본인을 향해 있을 때였다.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피했고, 늘 효과적으로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당시에는 본인의 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거라고 단순하게 짐작했었는데, 사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녀는 아마도 어떻게든 “남겨지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상태를 스스로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겨지는 것이 싫지 않았을까. 사진은, 어쨌거나, 영구적이니까. 

식이 장애로 생명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환자 앞에서 식사를 하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치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주는 대로 마구마구 먹어대고 있는 나를 보며 혹시 비위가 상하지는 않을까, 저 사람에게 나는 넘쳐나는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는 돼지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이렇게 마음껏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는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도저히 고개를 들고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내내 접시만 바라보며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날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아니 크리스텔이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먹기는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식사의 기억 속엔  끊임없이 음식을 입에 넣고 와인 잔을 홀짝이던 내 모습만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다란 식탁 위에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한 여자와 맞은편에서 그것을 피곤하게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는 풍경이 3인칭의 시점으로 떠오른다. 마치 루시안 프로이트의 작품들 중 하나일 것 같은, 적나라하면서 쓸쓸한 초상화로 말이다.        

Evening in the studio (1993) / Lucien Freud 


누가 보기에도 날씬한 몸매가 아니고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지만 살면서 다이어트를 고민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거식증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나 또한 타인의 시선, 사회의 시선 앞에 놓인 식욕의 문제에서는 크리스텔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그녀의 시선을 굳이 의식할 이유는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남편을 비롯해 누구도 그녀를 걱정하면 했지, 그녀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식탁은 식사를 위해 있는 공간이니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는 게 불편했다면 그녀가 스스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하게 나의 과잉 반응 혹은 자격지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그날 인지한 것은 크리스텔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크리스텔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상관없이 나는 그녀를 통해 숨겨져 있던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끄집어낸 것일 수도 있다. 식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먹는 일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내 안의 숨겨진 자아를 꺼내 크리스텔의 자리에 앉혀두었던 것은 아닐까? 


점점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거식증의 주요 원인이 사회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몸의 이미지, 외모지상주의에 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뚱뚱하고 기름진 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재 지구상 대부분의 사회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종종 식탐이 없는 사람 앞에서 먹는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러웠던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는 과연 단순히 “살찐 여성” 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졌을까? 혹시 무언가를 더 욕망하고 욕심내는 것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삶에 대한 의지, 즐거움의 욕망, 쾌락의 순간을 위한 욕심은 특히 여성으로서 드러내기 추한 것이라는,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무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심한 거식증 환자들이 그렇듯이, 크리스텔은 남들 앞에서 식사하는 일을 철저히 거부했다. 부모님 앞에서조차 절대 무엇이든 먹지 않았고, 방 곳곳에 먹을 것을 숨겨두고 몰래 조금씩 먹었다.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음식은 아니었고, 사탕, 과자 등의 군것질 거리와 위스키, 럼주와 같은 독한 술들이 침대 밑, 베개 아래 등에서 발견되었다. 십대 후반 부터 시작된 식이장애는 서른 살이 다 될 때까지 점점 심해졌고,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이미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린 후였다. 


병세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날, 그녀는 한 달만이라도 독립적으로 생활해보고 싶다면서 집 가까운 곳에 살 곳을 얻어달라고, 유독 관계가 돈독했던 아버지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그곳에서는 잠만 잔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부모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에 경치 좋은 별장을 얻어주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차를 몰고 그녀를 데리러 가 주변에서 함께 하루를 보내고 저녁마다 다시 데려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그녀는 차에서 내리기 전 아버지를 가만히 안으며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작별 인사인 줄 그때 아버지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먹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듯이, 딸은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두는 일 또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임음을 그 아버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크리스텔을 생각할 때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을 차 안에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을 그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녀가 거식증에 걸리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깡마른 모델들을 이상화하며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패션잡지들 때문인지, 무언가를 향한 거부와 항의였는지,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어머니와의 정서적 불화였는지 그 답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먹는 일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는 이 병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토록 음식에 공공연히 탐닉하며 사는 나조차도, 먹는 일이 수치스러울 수 있는 그 기분을 가끔은 알 것 같으니 말이다. 






표지 : 풀밭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Edouard 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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