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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Apr 25. 2016

까술레의 추억

한 번의 식사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좀 주눅이 들어있었고, 이상하게 항상 허기가 졌다. 유학 생활 3년이 넘어가 프랑스어가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지만, 성급한 스무 살 초반 친구들과의 대화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커다란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며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땅을 딛고 단단하게 서서, 저 멀리 밀려가고 다시 바람에 밀려오는 나를 형식적인 미소로 맞아주고 있는 그런 그림이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른다.


그런 시절의 어느 하루였다. 저녁 시간에 학교 친구들 한 무리와 알랭 레네의 영화 « 내 미국 삼촌 »을 보았었다. 그 날 함께 몰려갔던 친구들이 누구누구였는지, 어떤 계기로 다니던 학교에서도 멀리 떨어진 그 작은 극장에 그런 옛날 영화를 보러 갔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안개 낀 항구와 바닷가 외딴 저택 앞으로 제라르 드빠르듀와 다른 남녀 배우 두 명이 앞 뒤로 서 있는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고 미국삼촌이 프랑스의 바닷가 저택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스릴러인가 보다 짐작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건 나의 철저한 오해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 팡테옹 근처의 초겨울 밤거리를 우리는 무리 지어 걸었을 것이다. 거리의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겨울밤 작은 골목의 맥주 집들을 밝혔을 것이고, 맥주 집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커다란 소음과 음악소리가 함께 고개를 내밀었다 멀어졌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우리는 영화에 대한 각자의 분석을 왁자지껄 떠들어대다가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의 감상을 진지하게 듣고 동의하는 척 추임새를 넣었겠지만, 속으로는 저런 어려운 영화를 보고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다니 부러워하며, 다시 한번 풍선이 되어 지상에서 둥둥 떠올라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을 것이다.


또렷한 기억은 지금부터다. 몇 분 후 나는, 그 날까지 별다른 얘기를 나눠본 적 없던 잘 모르는 남학생과 극장 주변  프랑스 식당에 마주 보고 앉아있다. 친구의 친구로 그날 우연히 그 영화를 같이 보게 되었고, 우연히 모두가 흩어진 후 같은 길을 걷게 된 것뿐인데, 어쩌다 그 식당까지 들어가 앉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 그 식당의 공기와 조명과 먹었던 음식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그 밤, 나의 감각은 얼마나 예민하게 살아있던 걸까. 심지어 그날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던 서버의 인상과 옆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던 미국인 관광객 부부의 얼굴까지도 다 기억해 낼 것 같은 기분이다.


어두운 길에서 나란히 걷기만 하다가 막상 환한 불빛 아래에서 마주 앉아 있으려니 이상한 불편함이 감돌았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인 듯한 기분도 든다. 우리는 방금 본 영화 « 내 미국삼촌 »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눈다. 그는 알랭 레네 감독의 오랜 팬이었다. 감독의 가장 유명한 영화 « 히로시마 내 사랑 »은 나도 본 적이 있다. 히로시마 원폭 이후 도시를 방문한 한 프랑스 여자와 그곳에 사는 일본 남자의 사랑 이야기. 하지만 그 영화 또한 단순한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원폭 피해자들의 사진과 음울한 내레이션이 시도 때도 없이 감정 이입을 방해하고 나타나는 복잡한 작품이었다. 나는 레네 감독에 대한 그의 애정고백을 들으며, 영화 속 남녀가 밤바다 옆의 카페에 앉아 손을 잡고 마주 보던 장면을 떠올린다. 

Hiroshima mon amour/ Alain Resnais/1959


주문을 받기 위해 서버가 다가왔다. 결정했느냐는 서버의 질문, 앞자리의 그는 내 얼굴을 본다. 맥주 한잔 하자며 들어온 식당이므로 나는 맥주라고 말한다. 서버는 어떤 맥주요? 물으며 피로한 얼굴로 나를 본다. 메뉴판도 없이 뭘 골라야 하나, 식당에 잘 다녀보지 않았던 나는 망설이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서버의 신경질적인 한숨을 듣고 내 표정을 살피던 그는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서버가 멀어지자 민망해하는 내게 그는 한마디를 붙인다. « 저 사람 참 못됐다. 관광지라 그런가 봐. 파리의 식당들이 워낙에 불친절해 ». 잘못한 것도 없이 그는 미안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급격한 중력을 느끼고 땅 위에 발을 딛는다.


그는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다가, « 어? 여기 까술레가 있네? » 하며 갑자기 « 너 까술레 알아? » 묻는다. 내가 알 턱이 있나. 맥주 이름도 다 몰라서 메뉴판을 살펴야 하는 상황인데.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가 묻는다. « 혹시 저녁 먹지 않을래? 이거 파는 식당이 흔치 않거든. 난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 

늘 배고프고, 늘 뭘 해 먹을지를 걱정하고, 먹을 기회가 있다면 절대 놓치지 않던 시절이었다. 늘 통장 잔고를 소수점까지 계산하고 다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당장 내일 거리에 나앉는대도 우선은 저지르고 마는 것이 식탐의 위력이다. 나는, 그게 그렇게 자주 먹기 힘든 음식이라면 먹어봐야지, 새침하게 대답한다.

까술레 Cassoulet 


요리는 커다란 접시로 받친 작은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갈색 소시지와 오랫동안 푹 익혀져 형체가 흐물어진오리의 넓적다리가 흰색 작두콩으로 가득한 뜨끈뜨끈한 스튜 속에 묻혀있다. 모르는 내가 봐도 그것은 바쁜 도시의 요리라기보다는 큰 솥에 오랫동안 끓여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눠 먹음직한 시골 프랑스의 겨울 요리였다. 오랫동안 익혀진 오리고기는 나이프를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뼈에서 저절로 떨어져 결대로 흩어졌다. 툴루즈 지방의 특산품이라는 소시지는 거칠지만 돼지고기 그대로의 맛을 냈고, 적당히 간을 맞추며 담백했다. 무엇보다 특이했던 것은 요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흰색 작두콩 스튜였다. 오랜 시간의 조리로 온갖 기름기와 육수가 한껏 배어든 커다란 흰색 콩들은 입안에서 씹기도 전에 부드럽게 부서졌고 그렇게 차곡차곡 몸속에 스며들었다. 그동안 잊고 지내 차가워진, 방치된 내장들이 그 오랜만의 온기에  깨어났다.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열심히 먹는다. 문득 내 앞의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릇을 이미 반 이상 비우고, 바게트 빵을 뜯어 뚝배기 속 스튜에 적셔 먹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 흥건하게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 이거 내가 어렸을 때 먹고 몇 년 만에 먹어보는지 몰라. 아주 좋아했는데… 이게 쉽게 집에서 하게 되는 요리는 아니거든. 기대 안 했는데 이 집이 제대로다. 할머니 댁에서 먹던 딱 그 맛이야» 하며 웃는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이 정성 어린 맛을, 이 오랜만의 다정한 느낌을 그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며 나는 그냥 미소 짓고 만다.


« 영화에 나온 그 브르타뉴 섬 말이야. 남자 주인공이 태어나고 자란 그 섬, 우리 할아버지 댁이 그 근방에 있어. 나도 바캉스는 거기에서 많이 보냈거든. 파리로 학교를 온 이후로는 일 년에 한번 가기도 힘들지만. 그 영화 때문에 안 그래도 집 생각이 많이 났었어. »

나는 영화 속 외딴섬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게를 구워 먹던 귀여운 주인공 아이를 떠올린다. 문득, 그가 지냈다는 그 섬이 궁금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각자가 떠나온 도시에 대해,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고등학교 시절부터 혼자서 영화를 보러 극장에 다니는, 어두운 굴 속의 신기루에 대한 비밀스러운 취향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방식으로 한 시기를 견뎌내고 스스로를 보호했던 두 사람의 연대감은 그렇게 순식간에 형성된다.  


나는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그 미국삼촌은 대체 누구야? 영화 중간에도 각자 인물들이 한 번씩 « 내 미국삼촌 » 을 이야기하잖아? 모든 삼촌들이 다 미국에 간 건 아닐 테고 »

그는 무슨 얘기냐는 듯 가만히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 미국에서 온 삼촌은 프랑스어에서 쓰는 표현인데, 현실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줄 희망을 말해. 미국에 갔던 삼촌이 거부가 되어 돌아와 나를 도와줄 거라는 식의 허황된 꿈을 가리키는 말이지. »


한 번의 식사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전혀 끌림이 없던 두 사람이 한 번의 식사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일이 가능한가? 식사의 장소와 분위기, 메뉴의 선택, 음식의 맛과 각자 느낀 은밀한 식감, 그리고 함께 마신 술 한잔이 내는 연금술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날 밤, 우리 각자가 숨기고 있던 마음의 헛헛함을 처음 만난 상대에게 기꺼이 들키고 만 것은 까술레와 랑그독 와인의 연금술이었을까.


우리는 서로를 각자의 외딴섬에 찾아온 "미국 삼촌"이라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꿈은 잠시나마 인생을 달콤하게 해준다. 


그로부터 7년 후, 우리는 결혼서약서에 나란히 서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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