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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25. 2023

그래서 또 오늘을 산다.

아침, 알람 소리는 없다. 그저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는다. 천천히 차도 한 잔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집안을 걸어 다닌다. 어제 엄마가 세탁해서 널어둔 빨래가 말랐나 확인하고, 다 마른빨래를 개어서 엄마와 나, 동생에게 할당된 각자의 공간에 채워 넣고 청소기를 돌린다. 이 정도하고 나면 얼추 ‘전국노래자랑’ 이 시작할 시간이 된다. 이 시간 전에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전국노래자랑’ 애청자이자 까다로우신 동생님(상황의 쉬운 납득을 위해 이 친구는 지적, 육체적 장애를 가졌음을 밝힌다.)이 매우 노여워하시므로 시청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12시 전에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     

일요일의 일상이다.


일요일만큼은 작업실에 나가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집에 머무는 편이다. 

보통은 하루종일 넷플릭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제도 그랬다. 누워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통증이 있는 허리를 탕탕 주먹으로 두드렸다. 아, 이 몸동작만 보면 팔순 노인이라고 해도 믿겠다. 라디오처럼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어느 유튜버가 책 소개를 하고 있다.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그는 어떤 문장이 좋았다면서 읽어주고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덧붙이는 중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말이 그 말이고, 이 말이 저 말인 자기 계발서들과 그들이 목 놓아 외치는 온갖 ‘이렇게 해라’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튜버가 읽어주는 그 문장이 괜히 마음에 박혔다. 

그 책을 당장 읽어보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가벼운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빗었다. 참고로 나는 화장한 내 얼굴을 좋아한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 갈 때도 알록달록 얼굴에 그리고 간다. 걸어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춥다. 이 동네의 겨울은 아플 정도로 춥다. 게다가 커피 한잔이 간절했다. 요즘 커피는 거의 마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간혹 정말 마시고 싶을 때는 디카페인 커피를 한잔 마신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작업실에 잠시 들러 커피를 챙겨갈까 생각했다. 디카페인 캡슐이 있으니까. 그러나 마음이 변했다. 어제의 나는 그 순간에 작은 대접을 받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누군가가 내린 커피를 손에 받아 들고 카페를 나서는 그런 것.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런 순간을 갖고 싶었다.      


근처 카페에 가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고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루돌프 뿔을 머리에 꽂은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저기, 고객님.’ 하고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아르바이트생은 수줍은 목소리로 ‘텀블러가 조금 작아서 그러는데 물을 조금 적게 담아도 될까요?’ 하고 미안한 듯 물었다. 정량보다 적게 주는 셈이라 마음이 쓰였나 보다.      

당연히 괜찮다고 했고, 잠시 후 커피와 함께 작은 과자를 내밀었다. 원래 주는 건지 커피를 적게 준 게 미안해서 주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소소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 순간의 삶이 즐겁다.

    



도서관에 도착해 책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튜버가 얘기한 문장을 찾아내어, 노트에 옮겨 적었다.           


“우리의 주 임무는 저 멀리 막연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이다.”     

(Our main business is not to see what lies dimly at a distance, but to do what lies clearly at hand.)


번역이 조금 애매한데, 내가 번역자보다 매끄럽게 번역할 재주는 없으므로 그 뜻만 헤아리기로 했다.  

    

오늘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과거는 흘러갔고, 오지도 않은 미래는 생각한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사람은 과거를 놓지 못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곤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과거의 내가 모여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니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리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지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나는 과거를 아파하느라,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지속적으로 오늘을 망치는 것이 문제였다.  그날들이 쌓여 또 다른 좌절의 <오늘>이 되었다.



꽤나 세속적인 나의 성향상 운명이니, 시크릿이니, 끌어당김이니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지만, 절대적으로 추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운명이야 있겠지. 팔자도 있겠지. 부르는 대로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사람의 생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운명론도, ‘확언’을 하고 끌어당기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시크릿류의 개척론도 좀 재미가 없다.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이지만, 또 어느 순간 내 뜻대로 되기도 하니 뭐라고 규정하기 애매하다. 우주처럼 아득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알아서 뭐 할까 싶다. 알아낸들.     


다만 어느 일요일에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틀어놓은 유튜버의 한마디에 침대에서 벗어나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고 있었다면, 그런 것이 운명의 끌림이라면 뭐, 괜찮다.    




도서관 화장실에서 손을 다쳤다. 휴지를 잡아당겼는데 뚜껑이 같이 떨어지면서 손을 찍어버렸다. 피는 솔솔 나는데 밴드도 없고, 휴지로 지혈을 하자니 책 읽는데 방해가 되고.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밴드가 있는지 없다면 스카치 테잎이라도 좀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하면서 <화장실 휴지 케이스>가 떨어져서 손을 다쳤다는 말을 굳이 보태어 도서관 측의 일정 부분 책임소재를 어필했다. (안 그러면 안 도와줄 테니까.)   

열람실에는 밴드가 없었지만 신입직원인 것 같은 청년은 호다닥 사무실로 뛰어가서 밴드를 가져왔다. 역시 이만큼 살아낸 노련함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직원이 밴드를 가지러 간 사이, 데스크 앞에 서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보물 찾기처럼 숨겨놓은 빨간 봉투를 찾으면 선물을 준단다. 응?? 그냥 넘기려다가 호기심이 동해 서가 몇 곳을 설렁설렁 기웃거렸는데 단박에 빨간 봉투가 보였다. ‘뭐야? 이렇게 허술하게 숨겨놓은 거야?’ 생각하며 봉투를 들고 데스크에 갔더니 인적 사항을 적고 선물을 준다. 덤으로 큼직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인증샷도 찍어야 했다.  **시립도서관 sns 어딘가에 내 사진이 올라가 있을지도. 아, 부끄러워.       

         

침대에 누워 허리를 두드리던 나는, 유튜브를 듣다가 불쑥 도서관에 가고 싶어 졌고, 그날따라 화장이 잘 받았다며 내심 뿌듯하게 집을 나섰다. 카페에서 만난 친절하고 귀여운 직원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화장실에서 손을 다쳤지만, 도서관에서 밴드를 얻어 붙일 수 있었으니 됐고, 얼떨결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요즘 우리 동네 도서관 일 잘한다. 




삶이 뜻대로 행복하지도 않지만, 걱정만큼 지랄 맞은 것도 아님을 번번이 잊었지만, 번번이 깨닫는다. 

그래서 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작업실에 앉아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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