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Feb 28. 2024

쓸개 빠진 X.


새해인가? 했었는데 어느새 2월 이었고, 어물쩍 2월 말이었다. 

마음은 먹었으되, 이런저런 사정으로 담낭절제술을 미루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명치가 조이는 증세가 반복되고 있어서 결국 ‘쓸개빠진’ 삶을 살기로 했다.     


원래 집에서 가까운 2차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려고 보니 담당 선생님이 휴가였다. 그때가 2월 19일이었고, 선생님은 딱 그날부터 일주일 간 휴가였다. 지난번 진료 때 수술 일주일 전에 미리 검사를 받고, 수술은 그 다음주에 진행한다고 했었으니 선생님이 휴가를 마치고 온 뒤에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려면 3월로 넘어갈 판이었다.    

       

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속된 말로 <삔또> 가 상한다고 하지. 

무언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으면,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어데로 가고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 위해뻘짓을 하는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집에서 1시간 거리의 타 지역 병원 <외과> 진료실에 앉았다.

다시 초음파를 찍었고, 담낭에 돌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의사가 말하길 내 경우는 일반적인 형태의 돌덩이 담석이 아니라 진흙 같은 양상의 담석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말을 기억해 두자.) 현재 통증이 없으니 급하게 수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니 여건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 할 수 있어요?”

“내일이라도 할 수는 있어요.”     


내일.....이라?

내심 다음주쯤? 이라고 말할줄 알았는데... 내일이라니. 번개인가?


초음파 진료를 위해서 금식을 한 터였다. 오늘 검사를 안 받고, 돌아가서 고민하면 나는 또 한 번 금식을 해야 한다. 너무 끔찍하잖아. 결국 나는 모든 검사를 다 받고 다음날로 수술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5분 거리의 병원을 두고, 1시간 거리의 다른 지역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일을 저질러 놓고 보니 골이 딱딱 아팠다.  다른것도 아니고 보호자 때문에. 

사실 집 근처 2차 병원에서 말하기는 <보호자없이> 와도 된다고 했다. 워낙 간단한 수술이니 그냥 혼자 와서 하고 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병원은 이야기가 달랐다. 반드시 친족관계인 보호자가 와서 수술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 나 보호자 없는데?


물론 엄마가 있다. 그런데 노약자인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의사가 하는 말의 태반을 못 알아 들을 것이다. 결국 내가 다시 설명해야 할 형국이다. 게다가 노인네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것은 덤이고. 

(이때처럼 남편이 간절한 적이 없었다. 아플 줄 알았으면 결혼을 할 걸 그랬어.ㅎㅎ)     


사실 그보다는 빤히 보이는 엄마의 감정의 흐름을 내가 견디기가 힘들었다. 안타까움과 설움이 뒤섞인 그 진득한 파동을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실 앞에 옹크리고 앉아있을 ‘작은 노인네’가 나는 힘들었다.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가 집 근처에서 할걸.     


그때부터 수술이고 나발이고, ‘엄마’ 때문에 어질어질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니까 그 속사정을 아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불대고 징징대고 한탄하고 자책했다. (이 글을 읽을 리 없겠으나 그들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나는, 왜 내가 환자인데 오롯이 아프지도 못하고 이런 것 까지 신경써야 돼!!!!”      


결국 징징 울고 말았다. 


결국, 조금 멀리 사는 친구 하나가 자기가 갈 테니 어머님은 집에 계시라고 하라고 했다. 엄마한테 잘 설명해서 집에 계시라고 하라고. 원래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제안이지만, 이번에는 물리지 못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나는 환자인데 의사말 듣고 엄마한테 다시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버스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니 그렇게 하라고. 엄마는 처음엔 내키지 않아하다가 결국 동의했다. 


병원에 전화해서 보호자가 엄마인데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동행하기 어려우니 친구가 대신 갈 것이라고 했더니 원칙상 친족이어야 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전화로 설명하는 것으로 하고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산 하나를 넘었....

을 리가.     


우리 엄마 한여사의 <삔또>도 만만치 않았다. 난데없이 사촌 언니를 호출한 것이다. 나랑 통화할 때, ‘그러마’ 한 건 어디로 가고 2시간 거리에 사는 사촌 언니를 호출해서 다음날 새벽에 언니가 와서 다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한 것이다. 1시간 짜리 복강경 수술에 이 무슨 난리인가!!!      


    



다음 날 아침, 나, 우리 모친 한 여사 그리고 난데없이 호출당해 새벽같이 달려온 사촌언니가 집을 나섰다. 아침 9시쯤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에게 수술 설명을 들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모조리 설명한 의사는 겁에 질린 표정의 사촌언니를 보고 ‘물론 이런 일은 흔치 않아요.’ 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정작 환자인 나는 세상 해맑았다.      

다만 <혹시라도 복강경을 하지 못한다면 배를 갈라야 할 수도 있다.> 는 말이 유독 머리에 남았다.           

11시 30분쯤, 수술실로 이동했고, 잠시 대기했다가 11시 50분쯤 마취에 들어갔다. 


왼쪽 팔에 무슨 주사인가를 놓았고, <좀 졸리실 거에요> 라는 말과 함께 black out.          

신나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제 그만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쩍 눈을 떴더니 <일어나셨어요?> 하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침대에 실린 채로 달달달 이동하는데, 한여사와 사촌언니가 보인다.      


“나 복강경 했어? 배 안 쨌어?”     


그렇다. 나는 배를 쨀까봐 겁났던 것이다.           

생각보다 통증도 심하지 않은 편이었고, 마취도 얌전하게 깬 편이다. 몇 해 전, 엄마가 허리를 수술했을 때 <내 허리가 없어졌다!> 며 소리 지르던 것에 비하면 너무 얌전하다. 스스로 기특하기까지 해서, 주사 놓으러 온 간호사선생님에게 ‘저 너무 얌전하지 않아요?’ 하며 한껏 주접을 떨었다. (아마도 그때까지는 마취 기운에 헛소리를 하신 모양이다.)   

  

몇 시간 후, 엄마는 혼자 집으로 돌아갔고, 사촌언니는 수술 당일 내 옆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갔다. 이 역시도 한 여사의 무언의 조종이었다.     


“이모가 나를 왜 불렀겠니? 그 속마음 내가 다 알지.”

언니가 배시시 웃는다.     


아, 미안하고 불편해.

                



내 담석은 특이하게도 초음파에도, CT에도 그 모양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CT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었고, 의사는 진흙 형태일 것이라 이야기 했다. 그런데 막상 나온 나의 ‘담석이’는 자잘한 돌덩이들이었다. 한 40개쯤?    

안녕? 나는 담석이라고 해.  요기조기 다니면서 말썽을 부리지.  (실제 내 배에 있던 것)


저걸 엄마가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이 들었으니 아프지.’ 라고 했는데 정작 나는 ‘에게? 몇 개 안 되잖아? 하며 실망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많은 게 맞다.           


수술일 포함 3박 4일을 입원했고, 티원당일은 혼자 시외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취가 덜 깬건가. 1시간을 기댜려야 하는 걸 알았으면서 왜 따뜻한 병원 로비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느긋하게 출발할 생각을 못했을까. 터미널에서 얼마나 힘들던지...)


담당 의사 선생님은 좀 ’무심‘ 한 분이었다. 회진 때도 별 말 안 하고 긴말도 안한다.

심지어 ’음, 얼굴 좋아 보이시네.‘ 하고 사라지셨다. 나 환잔데요?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 실밥을 풀러 병원에 한번 더 다녀온 참이다. 역시나 의사 선생님은 별 말 안했다. 아주 드문 확률로 떼어낸 담낭에서 암이 발견된다고도 하는데, ’아프지는 않죠?‘ 하더니 조직검사 결과도 별도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저 이제 괜찮은 건가요?”

“네.”     


캐릭터 명확하시다.    


       


이제 나는 쓸개없는X이 되었다.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닌 일이다. 그러나 약간은 어지러운 일이었다.                

어느새 봄이 성큼이다. 잘 살고 싶다. 




*오랜만에 들러 쓸개빠진 소식을 전합니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 해도 수술은 수술이라 몸상태가 좋지는 않아요.

게다가 감기까지 지독하게 걸려서 지금 너무 힘듭니다.

병원가는 날이라 어쩔수 없이 움직였던 참에 여기저기 볼일도 보고 작업실에 잠깐 나왔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뻘소식 전하고 사라집니다. 


누가 뭐래도 봄이 다가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봄날의 햇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의 삶, 이유를 묻지 않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