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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pr 13. 2024

어느 작가 호소인에 대하여.


“여러분,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라구요!!”

“제가 작가,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이거든요!”          


저기, 선생님? 그거 누가 물어봤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요즘 저러고 있습니다.

물론 밖에 나가서 저러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저러고 다니면 그냥 미친 사람이죠.      

사실 저만큼 임기응변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지지리 복도 없다고 하면서, 지지리 운도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잔머리가 좋았는지 자잘한 위기돌파 능력이 남달랐습니다. 6살 즈음 친구들하고 놀다 보니 해가 졌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엄청 혼날 판이에요. 일단 집으로 오긴 왔는데, 이거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집 앞 골목부터 우는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모아 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진짜로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혼내려고 몽둥이를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있던 엄마는 애가 울면서 들어오니까 일단 당황합니다.   

   

“왜 울어?”

“오다가 (꺼이꺼이) 길을 잃었는데 (꺼이꺼이) 터미널이 보였는데 (꺼이꺼이) 영미언니네 집 앞 까지 갔는데(엄마친구네 집입니다.) 거기서 또 골목으로 갔는데 동산이 나와서 (꺼이꺼이).....으아아앙!!”  

   

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저는 해질 때 까지 놀다가 한방에 집을 찾아왔고 영미언니네 집 근처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에 디테일을 확보하고 신빙성을 더하고자 엄마 친구 딸 이름까지 팔았습니다. 터미널이 보이는 곳에서 영미언니네 집까지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두 지점을 거론한 것은 일단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거기서 반대방향으로 가면 동산이 나온다는 것도 영악한 계산이었습니다. 그 정도 헤매야만 이 시간에 들어온 것이 납득이 될테니까요.     

누가 어린이들이 순수하다고 하던가요? 40년 전 어린이도 저렇게 영악합니다. 


아, 엄마가 알면서 속아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희 모친은 불과 얼마전까지도 저 이야기를 진짜로 알고 있었습니다. ‘애가 얼마나 뒤뚱맞으면(저희 엄마만의 표현으로 모자라고 덤벙거리고 야무진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보같이 길을 잃어서 울면서 집에 들어오더라’ 며. 

쏘리. 마덜.      


수학이 싫어서 상업고등학교를 갔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과 몸이 불편한 동생 핑계를 댔구요. 막상 가보니 더더욱 적성에 안 맞아서 대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독서실 다니면서 독학해서 대학을 갔습니다만, 사실은 같이 학원 가기로 한 친구가 바람을 맞춰서 빡쳐서 독서실로 간거에요.      


그리고 대학 입시  예비소집일에 학교를 갔는데, 장소가 바뀐 겁니다.

저는 그때 “ 아, 몰라 그냥 갈래.” 라고 했지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불참하면 불밥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가겠다니.;;;

매사에 이렇게 간절함이 없어요. (사실 떨어질 줄 알았거든요.)

그때 같이 간 친구가 닦달해서 바뀐 장소를 찾아 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넉넉한 점수로 합격했더군요.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 끊겼는데, 그 시절의 귀인이었나 봅니다. 운도 좋지.


그 외 에도 제 삶의 대부분은 나의 간절함이나 치열함 대신 적당한 임기응변과 때맞춰 찾아온 적당한 행운이 맞물려 이만큼 흘러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알아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2월에 수술한 이후로 몸 상태가 내내 좋지 않았고, 한 동안 잠잠하던 허리 통증도 슬금슬금 올라오는 중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좀 걸어봤어요. 어느덧 완전 봄입니다.     

요즘 생계문제로 걱정이 많습니다. 이제 더이상 가난을 버티고 싶지 않거든요. 남는 건 역시 돈뿐이더라구요. 

이 나이에 사랑을 찾겠습니까. 낭만을 찾겠습니까. 이상을 좇겠습니까. 아주 맍지는 않아도 어지간히 통통한 통장이야 말로 가장 든든한 친구일텐데.. 이 친구가 제 곁에 없군요.


안되면 어디가서 김밥이라도 말자 라고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김밥은 뭐 아무나 맙니까?

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발만 네 개인 사람인데요. (손이 없어요. 손으로 하는 일은 다 못해요.)

그리고 어디 감히 다른이의 직업을 ‘안되면 ~ 라도’ 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토닥토닥 자판만 두드리는일이 세상 쉬워 보일텐데요.


그리고 저는 정작 저는 작가도 아니고 이제 그냥 호소인인데요.      




이런저런 감정과 생각이 복잡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정도의 운발과 쥐똥만한 행운과 임기응변으로 돌파해도 어찌어찌 돌아가던 삶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다만,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힘을 다 써보고 난 후에 호소인을 그만하든가, 호소인에서 벗어나든가 하려고 합니다.     

많이 외로워서 이곳에 종종 글을 올리곤 했었는데요.

책으로 묶어내기도 애매한 잡담으로 <작가> 코스프레 하기도 부끄러워지는 중입니다.     



어제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조금 걷고 싶어서 걸었습니다.

벚꽃이 눈처럼 쏟아지더군요.

너무 예뻐서 한참을 꽃비를 맞고 서 있었습니다.     

이제 곧 뜨거워 지겠지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서늘해서 이 봄에 얼어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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