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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욕망

사랑?  그 까짓게 무엇이 신비롭다 말인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돌며 온갖 신비로운 것들을 보아온 유명한 모험가였다. 그러나 어떠한 신비로운 광경도 그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 했다. 하늘에 떠다니는 섬의 절벽에 앉아 낚시를 하던 늙은이가 그를 향해 말했다.


"사랑만큼 영원한 것도 신비로운 것도 없지."


남자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사랑? 그까짓무엇 신비롭단 말이오. 이때까지 자신이 영원한 사랑이라고 외치던 여자들은 나의 돈과 명예를 훔쳐 어둠을 틈타 달아나곤 했소."


늙은이는 낚싯줄에 걸려 끌려오는 구름을 보며 대답했다.


"하늘치는 영원하지. 세상 끝에 당신이 찾는 게 있을지도."


늙은이는 걷어들인 구름에 올라타고는 절벽을 넘어 하늘의 별이 되어 사라졌다.


남자는 늙은이의 말대로 영원한 사랑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점차 잊어 갈 즈음. 마침내 그는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알록달록 빛나는 드넓은 모래사장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이 검게 물결치는 광활한 바다까지 길게 이어져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발자국을 쫓으며 소리쳤다.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가 세상의 끝에서 메아리쳤다. 그러나 해안 어느 곳에도 그가 찾는 것은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참을 수없는 고요함 속에 간간이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는 늙은이에게 속았다고 느낀 순간,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슬픔에 오열하며 해안을 가로지르는 발자국을 따라 검은 바닷속으로 스며들 듯 빠져들었다. 그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청명하게 투명한 파란 물방울이 하늘에서 쏟아지며 그의 온몸을 젖혔다.


ㅡ하늘치는 영원하지.


남자의 머릿속에서 늙은이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그는 물결 하나 내지 않고 솟아오르는 고래를 보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고래의 그림자가 그를 뒤덮으며 헤엄쳤다


ㅡ세상의 끝. 하늘치가 가는 곳으로.


고래의 꼬리가 허공을 박차자 구름이 흩어지며  태양의 빛이 그의 앞에 쏟아졌다. 남자는 고고하게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고래를 보며 지평선 넘어  또다른 세상의 끝으로 이어진 빛의 길을 따라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였다.


남자가 빗살사막에 당도했을 무렵, 모래구름이 그 일대를 뒤덮고 검은 알갱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여전히 길을 비추고 있었고 남자는 터번으로 얼굴을 가린채 힘겹게 사막을 걷고 있을 때였다.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쏟아지는 검은 모랫 속에서 한 여자가 주저앉은 채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길을 잃었소?"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나는 사진작가에요. 일생의 한 장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남자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빗살 사막에서? 이곳은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오. 잘못 찾아온 게 아니오?"


여자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곳부터 벗어나고 말합시다."


남자는 자신이 쓰고 있던 터번을 벗어 여자에게 시어주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몸을 부축하며 푹푹 꺼지는 모래를 밟고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여자는 자신의 얼굴 위로 느껴지는 남자의 쉭ㅡ쉭 거리는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얼마 안 가자 빛의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검은 모래성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신기루같이 일렁거리며 누구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듯이 그 장험함를 뽐내는 모습에 여자가 말했다


"검은 성의 신기루.. 이젠 끝이에요. 사막이 우리를 집어삼킬 거라고요"


남자는 포기하듯 쓰러지는 여자를 부여잡으며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수 없이 많은 신기루를 보아왔소. 이것이 또한 가질 수 없는 거라 알면서도 쫓아다녔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비웃더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요. 검은 성도 나에겐 아이들이 만들어 노는 한낱 작은 모래성일 뿐이오."


그는 검은 성을 향해 소리쳤다.


"빛을 가로막는 사막의 주인. 그대는 보지 못하였소? 아니면 듣지 못하였소? 모래 구름 넘어

하늘치가 나를 부르고 있소. 길을 내주시오!"


남자의 경고에도 검은 성은 더욱 많은 모래비를 받아내며 그들을 비웃는 듯 하늘 높이 쌓여갔다.

그때, 모랫 비각 그들 멀리 비껴가며 하늘을 울리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옴


여자는 깜짝 놀라 남자의 팔을 부여잡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을 파헤치며 거대한 고래가 그 모습을 나타났다. 검은 성을 향해 울부짖으며 그들의 위로 천천히 유영하며 사라지는 모습에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자에게 말했다.


"하늘 치.. 저 고래 하늘치죠?"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모래성은 사라져 있었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한줄기의 빛만이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 키만 한 야자수 나무를 한 발자국 벗어나자 모래비는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대지와 하늘은 온통 핑크빛 꽃잎들로 가득했고 바람을 타고 살랑이는 이파리들이 그들의 옷깃에 붙으며 달콤한 향을 뿌렸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아 꽃잎을 받으며 꺄르르 거렸다. 남자는 무관심하게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옷에 가득한 검은 모래들을 터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있어보시오."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나풀 되는 꽃잎들을 하나씩 건드렸다. 그러자 그것들은 나비가 되어 그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남자와 여자는 노랗게 빛나는 나비떼에 휩쌓여버리자 몸을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곧 그것들이 떠났음에도 한동안 그들은 크게 웃었고, 몸 어느 곳에도 모래는 붙어있지 않았다.


"정말 예쁜 곳이어요.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쏟아지는 꽃잎들을 보며 대답했다.


"같이 이겨낸 것이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거라고요?"


그녀가 남자를 보며 웃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여자를 외면하며 빛을 따라 다시 걸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그를 쫓으며 소리쳤다.


"같이 가요! 뭐예요. 정말. 생긴 거는 곰 같으면서"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며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에 거 말했다.


"여기서 이만 헤어집시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찾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함께 가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그녀가 따라온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등 뒤로 그녀의 사방거리는 발걸음이 들려왔다.


"하늘치는 영원하죠."


남자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여자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 큰 눈망울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달콤하게 그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저는 영원한 것을 찾고 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늘치의 눈물을 마신 자들은 영원한 것을 얻는다고 해요. 저도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걱정 마시오. 얻을 수 있을 거요 ."


여자는 그의 품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자신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들고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같이 찍어요."


"좋소."


카메라의 앵글에 가득 담긴 그들의 얼굴은 영원한 사랑을 이룬듯 행복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바람을 타고 바다 내음이 나기 시작했을 때. 길을 비추는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구름에 걸려있는 무지개를 넘으며 하늘치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세상의 끝에 도착한 것이다.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서 우수에 찬 눈빛을 보이며 광활한 바다를 보는 그녀가 바로 그의 영원한 사랑이었다. 남자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서로의 입술이 포개졌다.


우오 오오 오


긴 입맞춤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인간의 눈을 닮은 검은 눈동자가 자신들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들은 투명하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고 양감에 몸을 떨었다. 고래의 눈이 여자를 향했다. 그녀는 겁을 먹으며 남자의 뒤로 숨어들었다. 남자는 겁을 먹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엄숙하고도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고래를 향해 말했다


"찾았습니다."


ㅡ원하는 것을?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것도 이보다 신비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래의 눈이 조용히 닫히는가 싶더니 눈물을 허공에 뿌리며 조용히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마침내 안식이라도 얻은 것처럼 긴 울음소리를 내고는 검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바다는 순식간에 파랗게 변해갔다. 파도가 튀며 남자의 입을 젖였다. 소금같이 짠맛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그는 허공에서 방울이 되어 두둥실 떠있는 고래의 눈물을 마시며 여자에게 말했다.


"어서 당신도. 영원한 사랑. 당신과 함께 얻을 것이오."


여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영원한 사랑은 없어요."


남자의 몸이 변해갔다.


"미안해요"


여자는 카메라를 들고 남자를 찍기 시작했다.


"어째서? 영원한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었소?"


고래의 꼬리와 같이 변해가는 자신의 다리를 보며 남자는 절규했다. 여자는 변해가는 그를 앵글 너머로 바라보며 답했다.


"하늘치는 영원하죠."


그녀가 셔터를 멈추고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는

한 마리의 고래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신기루같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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