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가의 극장

로열 코트 극장 Royal Court Theatre

by 정재은

Thought-provoking.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유를 자극하는 작품들을 주로 올리는 극장. 이들은 '작가의 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하는 극장이다.

웨스트엔드와는 조금 떨어진, 런던 슬론 스퀘어에 위치한 로열 코트 극장은 외형만 보면 고풍스럽고 단정하다. 그러나 이 극장이 품고 있는 연극의 심장은 그 누구보다 급진적이고 날카롭다. 로열 코트는 영국 동시대 연극을 이끌어 온 작가 중심의 극장으로, 수십 년간 사회와 권력을 해부해 온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496923552_1104826078347135_2638423101402445327_n.jpg 로열코트 전경 (출처: 극장 홈페이지)

지금의 극장 건물은 1888년 세워진 건물을 1996년 개조한 것이다. 380석 규모의 저우드 시어터 다운스테어스와 85석 규모의 스튜디오인 저우드 시어터 업스테어스로 재건했다. 로열 코트 극장이 연극 개발 및 제작에 중점을 둔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라고 한다.


나는 2018년 알리스테어 맥다월(Alistair Mcdowall)의 X라는 작품 한국 프로덕션에 참여하면서 이 극장을 알게 됐다. 엑스라는 작품은 2016년 로열 코트에서 초연됐고, 엑스의 한국 프로덕션에 작가를 초청함으로써 극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 등에 영국 극작가를 파견해 함께 작품을 써보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알고 한국에서도 진행해보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영국 뉴 라이팅의 산실

로열 코트는 1956년, 존 오스번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ack in Anger로 현대 영국 연극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New Writing’, 즉 새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작가들은 이후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무대를 뒤흔들었다. 현대 희곡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 이곳을 거쳤다.

JTD-1000x600-e1684505948154.jpg


로열 코트의 정치적 감각

이 극장이 특별한 이유는 작품이 늘 동시대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Enron은 자본주의의 탐욕을, Seven Jewish Childre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The Ferryman은 북아일랜드의 과거를, ear for eye”*는 흑인 공동체의 저항을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Giant자이언트라는 작품으로 인기 작가 로알드 달을 소재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웨스트엔드로 보냈다. 특정 이슈에 대한 편향된 주장보다, 작품을 통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관객을 사유하게 만든다. 사회문제를 꺼리는 주류 극장과는 달리, 로열 코트는 언제나 불편한 질문을 택한다.


2025 시즌 이미지


이 극장의 정체성은 ‘작가 개발’에 있다.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워크숍, 세계 각지에서 초청한 극작가들과 함께하는 국제 프로그램 등은 극장의 장기적 실험정신을 지탱해 준다. 실제로 로열 코트는 70여 개국 이상과 연계된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비서구권 작가의 목소리를 런던 무대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또한 이 극장은 청소년과 젊은 작가를 위한 창작 실험실이기도 하다. 만 25세 이하를 위한 저가 티켓, 작가 지망생을 위한 대본 워크숍,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 등은 이 극장이 단순히 무대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터전임을 보여준다.

로열코트는 2025년 7월 10일부터 12일, 젊은 극작가상(Young Playwrights Award) 수상작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두 개의 연령 카테고리로 나눴다. 13-15세, 16-18세 수상작 중 세 편을 볼 수 있었는데, 나이에 맞는 톡톡 튀는 발상에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Artboard-2-4-500x500.jpg


로열 코트 극장은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극장이자, 가장 깊이 멈춰 서서 묻는 극장이다. 연출가도, 배우도 아닌 ‘작가’가 주인공인 이 공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상의 균열에 귀를 기울이며, 관객과 함께 연극의 미래를 써 내려갈 것이다.

keyword
이전 07화작은 극장이 만드는 거대한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