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에서 시를 읽다
이곳에는 산이 없어서 하늘이 더 광활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넓고 너른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추웠지만 꽃들이 봄이 왔다고 말해주었다. 꽃나무 앞에 멈춰 서서 넋을 놓고 바라볼 수 있음이 좋았다. 미세 먼지 없이 화창한 어느 날들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화장실 가는 것을 참으며 일을 하다가 뛰어서 화장실에 가고, 올 때도 그 시간이 아까워 종종걸음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던. 조금 더 잘하고 싶었던, 버거웠지만 해내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상사가 모욕적인 말로 괴롭혀도 그걸 참으며 꾸역꾸역 버텼던. 주변 사람들을 유난히 의식하고 신경 쓰며 살았던 나였다.
이곳에서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날이 많았다. 늘 입는 청바지에 어제 입었던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내가 좋아했던 똑 떨어지는 정장과 앞코가 뾰족하고 굽이 가느다란 구두는 입을 일도 신을 일도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신경 쓰지 않는 법을 알게 됐다.
어느 날은 길에 서서 봄을 이렇게 길게 느낀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와! 봄이다!' 하다가 비가 오고 꽃잎이 후드득 떨어져 버리다 더워졌던,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던 날들. 봄뿐이랴. 다른 날들도 그러했다. 아이가 걸을 때, 말을 배울 때 애달프게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그 순간들도 지나갔다.
부모님들의 도움 없이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오롯이 남편과 내가 돌보고 있다. 밥 하다가, 밥 먹다가, 재워주면서 쓰다듬고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대답 없는 두 아들에게 말을 하느라 목소리가 더 커져가는 엄마지만 그래도 너희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표현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아주 진지한 말투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열심히 설명하는 눈빛과 끝을 내리며 말을 맺는 버릇마저 사랑스럽다. 많은 것을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싶다.
브로콜리가 삶아지자마자 아이들을 부엌으로 부른다. 식기 전에 따끈한 것을 먹이고 싶어 손으로 집어 입에 쏙쏙 넣어준다. 받아먹으며 오물거리는 입도 예쁘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야 배가 부르지 무슨 소리야 하며 거부감이 들었달까. 그런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안다. 둘을 나란히 앉혀놓고 밥을 먹고 있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며 떠먹는 모습이 고맙다.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사랑한다고 몇 번이고 말해준다.
아이들 학교에서 나는 '다양하다'는 말을 비로소 체감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엄마와 그 집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엄마와 우연히 상점에서 만나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브라질에서 살다 온 엄마와는 프랑스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케냐 아저씨와는 점점 따뜻해지는 겨울 이야기로 시작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한국사람임을 새롭게 자각한다.
아이들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논다. 내가 늘 루마니아라고 헷갈려해서 아이들이 고쳐주는 불가리아 친구와 가깝게 지낸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 중에 프랑스어를 배운다. 방과 후에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영어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자연스럽게 조금씩 여러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던 아빠와 남아프리카 엄마 부부를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들과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사유, 노마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가면 전에 등록해 놓았던 와이파이가 자동으로 연결되며 나를 반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것을 만끽했다. 광대한 박물관을 다 볼 수 없더라도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공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 가방 검사를 하고 로비에 들어간다. 기념품 상점으로 가서 그날 볼 공연 희곡집과 프로그램북을 산다. 희곡집을 읽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미리 내용을 알면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도 모국어로 공연을 볼 때는 그랬지만 이곳에서는 한마디라도 더 알아듣기 위해 미리 희곡집을 읽는 것이 버릇이 됐다.
로비에서 술 한 잔을 곁들여 희곡을 읽는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객석으로 들어가 예매해 둔 자리에 앉는다.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된다. 지문으로 표시되어 있었던 무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글로 읽었던 문장들이 배우들의 입에서 말해진다. 무대를 보며 전율이 일었고 어느 배우의 연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처음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은 모험이었다. 어쩌면 런던에 온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었다. 매일 그렇게 탐험가처럼 지냈다. 보물지도를 보며 책을 찾아 헤맸던 도서관 안에서도 탐험은 계속됐다. 그 속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과 지식들에 마음이 벅찬 순간도 있었다. 임종령 통역사의 <베테랑의 공부>(콘택트, 2023)라는 책에서 일을 하면서 꾸준히 공부하고, 공부가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공부했지만 그 공부가 참 재미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전공과 관련된 여러 책들을 접하며 생소한 단어들을 이해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디지만 그것을 읽으면서 여러 번 감탄했다. 오랜 시간 일하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것들을 학자들은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해 두었다. 번역기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들은 시 구절처럼 느껴졌다. 몇 번이고 읽으면서 곱씹었다.
어느 날은 공부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이런 멋진 도시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도서관에만 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템즈강변을 따라 걸으며 여행자처럼 런던을 누볐다. 다리가 아프면 전철을 탔다. 노선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편안했다. 기차를 타고 워털루 역에 갈 때마다 빌딩 사이로 보이는 동그란 런던아이를 영상에 담았다. 통장 잔고는 줄어가고 내가 놓아버리고 온 것들을 다시 손에 쥘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떤 극장에서는 싼 티켓을 예매하는 바람에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게됐다. 무대보다 천장이 훨씬 가까운 그 자리에서 나는 현실을 마주했다. 공연장 꼭대기층에서 고개를 길게 빼도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수도 없이 실루엣만 보이는 거기가 내 자리였다. 2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힘겹게 모았던 것들, 서울에 두고온 것들이 잠깐 그리웠다. 극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항상 공연장에서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얼마든지 몇번이고 볼 수 있던 공연들. 나를 직함으로 불러주었던 많은 사람들. 일하면서 받은 대우들. 월급 외에 혜택들. 전부 다 놓아버리고 떠나온 나는 여기서 아무도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나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일정 기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고 그 때마다 긴장해야 할 것이며 언제까지 머물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돌아갈지 간다면 언제 갈지 가서 아이들은 다시 적응할 수 있을지도 어느 하나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파란 하늘과 집앞에서 지저귀는 새들, 포물선을 그리며 뛰는 청설모가 보였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뒷마당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낮잠을 자는 여우가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눈물 나게 좋았다.
몇 년 전 런던에 살다가 서울로 돌아간 친구에게 뭐가 제일 그립냐고 물었다. "천국 같았던 여름 날씨. 세 달."
밤 9시가 되어야 해가 넘어가는 환하디 환한 시간. 나는 바로 그 계절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