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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귀가 안 들려

응급 통화에 실패하다

by 정재은

겨울을 지나며 아이들이 아팠고 나도 호되게 감기를 앓았다. 생경한 통증과 무기력함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감기와 그 통증을 잊고 지내서였는지 유난히 더 아팠고 힘들었다.


나에게 둘째는 손이 덜 가는, 알아서 크는 아이이다. 첫째 때는 아무것도 몰라 벌벌 떨며 검색을 해가며 키웠지만, 둘째는 키우기 어렵지 않았다. 엎어 놓으면 잘 잤고 크게 보채지도 않았다. 조금 커서는 두 살 위인 형을 따라 숟가락질을 곧잘 했고 아무것이나 잘 먹었다. 형을 따라 어린이집도 씩씩하게 잘 다녔고, 어리다고 등록을 곤란해했던 피아노 학원에도 선생님을 놀라게 하며 잘 다녔다.


그런 둘째가 아팠다. 또 편도선이 부었거나 비염 혹은 부비동염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막힌 코를 세게 풀었던 탓인지 귀가 아프다고 했다. 내 귀가 안 좋기 때문에 더 예민해졌다. 급기야 아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잘 못 들었다. "뭐라고? 엄마, 귀가 안 들려." 아이의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한국에선 코가 조금만 막혀도 바로 이비인후과로 출동했었다.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항상 노련한 원장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원장 선생님은 첨단 장비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신속하게 진단을 내려주고 약을 처방해 줬다. 내시경으로 콧구멍 속을 들여다보며 빠르게 발을 탁탁 굴러 캡처하고 목 안까지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내시경 카메라는 환자나 보호자도 볼 수 있도록 화면에 송출되어 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항생제를 먹어야겠어요. 또 항생제구나.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데, 싶으면서도 그 약을 먹으면 바로 좋아지는 것을 알기에 반갑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약만 먹으면 바로 좋아질 텐데 이곳에서는 의사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했다.


진통제와 해열제를 번갈아 먹여가며 주말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가 네 시간마다 약발이 떨어지면 너무 아프다며 울었다. 약병이 들어있는 상자에는 24시간 안에 권장량을 넘지 않도록 하라고 쓰여있었다. 약을 먹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계속 저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뉴로펜이라는 약을 하루에 몇 번까지 먹여도 되는지가 궁금했다. 응급센터에 전화를 걸어 증상이 심할 경우 이 약을 더 먹여도 되냐? 된다, 안된다를 듣고 싶었다.


일요일 저녁 7:55분 NHS 영국 국가 의료보험 시스템에 온라인으로 상담 접수를 했다. 2시간 안에 전화를 할 것이라는 안내가 화면에 떴다. 안내문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렇게 바로 전화가 오다니 놀라워했는데 의사가 아닌 상담사였다. 상담량이 많아 2시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으니 그 사이 증상이 너무 심해지면 999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아이는 통증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이부프로펜을 한 번 더 먹고 잠이 들었다. 나는 전화를 기다리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취소하려고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취소는 안된다고 쓰여있었다. 만약 전화를 못 받으면 3번까지 전화를 건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세 번을 다 못 받으면 접수할 때 입력했던 주소로 앰뷸런스가 출동한다는 경고가 빨간 글씨로 쓰여있었다!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기다렸다. 졸음이 몰려왔던 나는 아이의 증상과 체온, 중이염 등을 영어로 써놓은 노트와 조그만 랜턴을 옆에 두고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인도 억양이 강한 영어를 쓰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도 제일 알아듣기 힘든 억양이 바로 이 억양이었다. 그냥 통역 서비스를 요청할 걸 그랬다. 비교적 간단한 상담일 것이라 예상했기에 도전했는데...


십 분 동안이나 통화를 했음에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한 번에 몇 밀리그램을 먹였느냐 물었고 나는 10밀리리터를 먹였다고 했다. 용량을 재는 단위, 밀리그램과 밀리리터로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가 오고 갔다. 결론은 계속 그러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정말 개운치 않게 전화를 끊었다.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이 처절하게 서러웠다.




아이는 어김없이 새벽에 깨 귀가 아프다며 울었다. 어젯밤에 온라인으로 메모를 남겨놓은 동네 병원에서 빨리 연락을 주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연락을 받았고 곧장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의사는 귀를 보더니 귀지 때문에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며 귀지 녹이는 오일을 처방해 줬다. 아이가 귀를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고 하고 열이 펄펄 나는데 귀지를 녹이고 다시 오라니 속이 터졌다. 런던 시내에 사설 이비인후과가 있다기에 검색을 해봤는데 보통 부담되는 비용이 아니어서 검색 창을 닫았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그리웠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mazon.co.uk/dp/B0BRX7ZJNM


아이가 열이 났고 코도 막혔기 때문에 항생제를 처방받기는 했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어도 귀 통증은 남아 있었고 떨어진 청력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쳐 불러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속이 탔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카페에 물어보니 휴대전화로 연결하여 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시경 기구가 있다고 했다. 아마존으로 배송을 받아 귀에 오일을 넣고 불린 다음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며 귀지를 빼줬다. 하지만 들여다봐도 귀지가 완전히 제거되었는지, 고막이 보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계속 너무 아파했다.


귀지가 빠졌는지, 병원에 다시 간다고 해도 귀 안이 보일는지, 청력이 돌아올는지 알 수 없었다. 결론은 예상치 못하게 지어졌다. 남편이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갔다가 귀에 넣는 약을 처방받아 왔던 것이다. 살펴보니 아이가 써도 되는 약이어서 그 약을 넣어줬고 곧 좋아졌다. 그 며칠이 참 길었다. 한국이었다면 금방 나았을 텐데, 아이를 고생시키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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