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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Oct 05. 2024

빛과 아름다움, 연구와 창작_안효영

첫 번째로 소개드릴 분은 안효영 님입니다. 2023년 11월에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을 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런던에 계신 데다가 (꿈의 극장) 내셔널 시어터에서 일하고 있으시다는 거예요! 바로 그다음 주에 예매해 놓은 공연이 있어서 공연 전에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지요. 그 후로도 내셔널 시어터에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희곡집이나 프로그램북을 살 때 직원할인 찬스를 쓰기도 했습니다. 

효영 님은 'KAIB 영국 문화예술 네트워크' 오픈 채팅방 방장이기도 한데요, 그곳에서 155명이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거나 함께 작업할 동료를 찾는 등 네트워킹을 하고 있어요. 이 방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그날 모임에 나오신 분들을 보다가, '런던 브리지'라고 이름 정한 이 인터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각자의 꿈을 위해 도전하고 헤쳐나가는 이들이 정말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조명 디자인부터 기술 통역, 신경미학 연구와 출판 준비까지 밝은 기운으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는 야심 찬 청년 안효영 님과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빛과 아름다움을 연구하며 글을 쓰는 조명디자이너 안효영입니다. 사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또 하고 싶기 때문에 단순히 조명디자이너라고 소개하기보다 저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을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제가 하는 일들은 빛, 아름다움, 그리고 창작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겠네요. 신경미학, 광학, 눈에 대해 연구하는 일도 모두 여기서 파생된 것들이고, 이에 대한 생각을 글로 담아내며 글을 쓰기도 하고, 이 모든 키워드에 해당하는 일이 조명디자인이 되겠네요. 


•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매사에 궁금해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경험하는 공간이나 사물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보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사람들은 왜 좋아하거나 싫어할까? 이렇게 밖에 만들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항상 달고 살아요. 그러다 보면 배우는 게 참 많거든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다니면 무언가 얻어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더라고요.







•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왜 하필 영국 런던이었을까요?

21년도 가을에 왔으니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어릴 때부터 막연히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2009년에 개봉한 영화 "This Is It"을 봤을 때 그런 마음을 먹었었어요.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리허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거기서 나온 조명디자이너 Patrick Woodroffe 선생님을 보고 "나도 저런 세상에서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Patrick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니 영국 분이었어요. 그래서 영국을 생각하게 되었고, 몇 년 뒤에 독일에서 열린 Patrick 선생님의 특강자리에서 마침내 만나 조언을 들었어요.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유학을 오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싶다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다음 해에 영국에 있는 대학원 추천서를 써주셨고, 영국으로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외적으로는 예술적인 가치관에서 미국보다 더 많이 끌린 것 같아요. 자연주의와 쇼 엔터테인먼트적인 연출을 더 선호하는 미국보다 표현주의와 예술적인 가치를 더 추구하는 영국이 제 마음에 더 들었던 것이 또 하나의 이유네요.



•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사고하는 과정이 달라진 것 같아요. 무언가 좋은 것을 보면, 이전에는 "어떤 방법을 써서 좋은 걸까? 어떤 테크닉을 써야 하는 걸까?"처럼 피상적인 것에 집중했었어요. 하지만 영국에서 지내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처럼 콘텐츠에 대한 질문을 하며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어요.


•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영국이 많은 것들의 근본인지라, 어디든 걷다 보면 현대 문명이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하던 그에 대한 단서를 얻거나 레퍼런스를 직접 보거나 경험하기 쉽고, 고민에 대한 답을 조금 더 명쾌하게 얻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아요.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다 보러 가기에는 비싼 게 흠이지만요 하하. 특히나 한국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에요.

•   분명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영국에 와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아무래도 외로움인 것 같아요. 이방인으로서 항상 깔려있는 외로움은 단순히 이성을 만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나눌 사람이 현저히 제한된다는 것 같아요. 현지의 친구들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사적으로 시간을 보내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거나 공감할 수 있는 토픽이 많이 적다고 느껴지거든요. 아무래도 성인이 된 이후에 외국으로 넘어가셨다면 비슷하게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


•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후배에게 하는 조언도 좋고요. 올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말해주고 싶으세요? 

제가 한국에서 지낼 때, 막연하게 상상한 외국의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외국은 페이도 좋고 스케줄도 넉넉하게 주니까 당연히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거고, 우리는 어렵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직접 와서 경험해 보니, 영국도 페이나 스케줄이 만만하지 않은 건 비슷했어요. 오히려 같은 페이인데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많이 만나면서 결과물의 질을 높이는 것을 보면서 워라밸 (Working-Life-Balance) 같은 것은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놀라웠어요. '레미제라블', '워호스' 등 수많은 작품에서 조명디자인을 한 영국 대표 조명디자이너 폴리 콘스타블(Paule Constable)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분의 작품은 다른 조명디자이너들에 비해 모든 장면의 빛 계획이 완벽하고 치밀하게 계산되었다고 느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계획을 하고 디자인을 하는 편인지, 극장에 들어와서 즉흥적으로 하는 편인지 물어봤었는데, 항상 준비를 상당히 많이 하는 편이라고 답해줬어요. 모든 큐에 대한 계획이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세워져 있으면, 극장 안에서의 빛은 완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장에 들어가서 보자는 식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작업하는데, 이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는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영역을 두고 막연히 상상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기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냥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작업하면서도 집에서 모든 장면에 대한 계획을 세워놨던 공연과 준비가 부족했던 공연은 사진만 봐도 그 차이가 확연하게 나거든요.


 

•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요?

저는 제이미 로이드(Jamie Lloyd)가 연출한 뮤지컬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아쉬운 부분이 많은 공연임에도 제일 좋았던 이유는, 표현주의의 정점을 찍은 공연이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대의 많은 부분들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비워놓거나 조명과 의상의 색을 모두 무채색으로 하는 등 시각적인 부분에 상당한 제한을 걸어뒀음에도 충분히 볼만한 공연을 만들 수 있고, 배우와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연출가 제이미 로이드가 연출한 공연들은 전부 무채색을 기반으로 한 포맷으로 비슷한 공연을 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표현주의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꼭 제이미 로이드가 연출한 공연을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런던에서 공연 예정인 제이미 로이드 컴퍼니의 작품.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와 '헛소동'
뉴욕에서 공연 중인 '선셋 대로'와 공연 예정인 키아누 리브스의 '고도를 기다리며'!


•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여기서 본 공연들은 대부분 좋았다거나?

아무래도 내셔널 시어터 (National Theatre)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제가 근무했던 곳이라 애사심에서 뽑은 것도 조금 작용하지만.. 이곳에서 하는 공연들은 아쉬웠다고 평할 수는 있겠으나 별로였다는 평이 나오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셔널 시어터와 함께 작업하는 창작진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실력자들이기도 하고, 드물게 국가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극장이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냥 아무 작품이나 보셔도 기본 이상은 하는 좋은 극장입니다.




•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조명디자인을 신경미학적인 관점으로 정리한 책을 쓰고 있는데, 내년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신경미학이 신생 학문이기도 하고 레퍼런스가 없는 초학제적 (Interdisciplinary) 내용들이 많아서 여러 분야에서 그 단서를 찾고 연결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전으로 출판할 예정이라 일반적으로 책 한 권을 쓰는 시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걸렸어요. 작년 1월 1일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을 하면서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쪼개서 정말 열심히 썼어요. 곧 그 결실이 맺어질 차례가 다가오니 설레지만,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니 긴장도 되네요.


•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이유를 밝혀내고 싶고, 
그 이유를 바탕으로 더 감동적인 디자인을 만들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이론을 만드는 연구자이자 동시에 그것을 증명하는 실무자로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학술 서적 출판을 준비하면서 만든 이론들을, 조명디자인에서 적용해 보고, 수정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어요. 아름다움의 이유를 밝히는 과정을 신경미학으로 부르는데, 이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진화생물학, 심리학, 신경학 등 다양한 학문의 논문과 서적들을 공부하고 있어요. 더 깊게 알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는 박사 과정을 입학해서 깊게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조명디자이너로서 연극과 뮤지컬에서 꾸준히 작업을 하고 싶고, 대중에게 빛이 공연과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 소개하며 조명디자인에 대해 알리고 싶어요. 영국식 표현주의로 가득 채워진 공연을 해보고 싶어서, 영국의 연극과 표현주의를 제대로 깊게 이해하는 동료들을 만나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마스킹 (Masking) 없이 무대의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도, 공연 중간에 무대감독이 헤드셋을 착용한 채로 무대 위에 올라와도, 세트가 최소화된 빈 무대 일지라도,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싶네요.


어느 곳에서나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지만, 얼마큼 노력하는지에 따라 좋은 기회가 올 것이고,
운 또한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냉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냉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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