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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Oct 10. 2024

다다이즘의 재해석_김다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어느 날 저에게 다다 님을 소개해줬습니다. 화면 밖으로도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비슷한 시기에 에든버러에 다녀오면서 공연 이야기를 나눴고, 알고 보니 가까이에 살고 있어서 동네에서 만나 공연 이야기를 실컷 나눴답니다. 거침없는 열정과 젊음에 이 분을 꼭 런던브리지 코너에 소개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다섯 살 김다혜입니다. 영국에서는 DADA KIM이라는 이름으로 무대 디자이너 활동을 하고 있어요. 두 가지 자아를 가진 셈이죠. 사실 저는 이름에 저의 예술적 지향성을 담고 있어요. DADA라는 이름처럼 저는 다다이즘이라는 예술 사조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전부 부수고 현대적인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즐겨합니다.


영국에서 무대디자인을 공부하면서 항상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 있어요.


다다는 희곡의 Re-lensing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


그때 처음으로 Re-lensing이라는 영단어를 접했어요. 빛의 굴절성을 이용하여 사물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렌즈처럼 저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시 굴절시키는 사람. 제가 디자이너로서 들었던 칭찬 중 가장 멋지고 저에게 잘 맞다고 생각되는 칭찬이에요. 그래서 전 디자이너 DADA KIM은 Re-lensing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싶어요!


개인의 김다혜로서는 어떤 키워드가 가장 나에게 맞는 키워드일까 생각하던 중에 최근에 친구한테 들었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떠올랐어요. “언니는 일상이 다이어리 꾸미기(다꾸) 같아.”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어요. 그 말만큼 제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말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전 제 인생을 다양한 반짝이와 스티커 같은 경험들로 덕지덕지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그만큼 제 성격도, 제 인생도 그날에 따라 매일 다채롭게 꾸며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저를 이렇게 소개하고 싶네요.

안녕하세요, 인생을 다이어리 꾸미기 하듯 사는 사람, 디자이너 DADA KIM입니다.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모할 정도로 즉흥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 살면서 많은 실패(사실 실패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를 겪었었거든요. 무엇을 목표로 삼아도 항상 먼 길을 돌아왔고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보통 그 과정들을 제 자양분이라 생각하고 꿀꺽 삼켜요.

그간 겪었던 실패들을 잘 소화시키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배움을 얻으려고 노력하죠. 덕분에 전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게 되었어요.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할까 하면서요.


런던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벌써 영국에 온 지 꽉 찬 3년이 되었네요. 하지만 3년 내내 학교에 다니고 이제 갓 졸업한 병아리 사회인이라 사회인으로서 마주하는 영국의 새로운 인상에 아직도 열심히 적응 중입니다. 학생비자로 머물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 졸업비자가 승인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어요. 앞으로 2년 간은 더 영국에 있을 수 있게 되었네요. 야호!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왜 하필 영국 런던이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영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셰익스피어를 사랑했고 소위 말해 Posh 발음을 하는 영국 배우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곤 했었죠. 연극을 사랑하게 된 이후부터는 NT live를 빠짐없이 챙겨보며 꿈을 키웠어요. 주변사람들은 저를 사대주의자라며 나무랐지만 그럴 때마다 내 취향이 리버스 흥선대원군일 뿐이라며 대차게 받아 치곤 했었죠. 그럴 정도로 저에게 있어 영국 연극은 미래이자 꿈이었어요. NT live를 보고 달오름극장 앞 거리를 혼자 거닐며 공연에 대한 흥분을 곱씹던 기억은 저를 영국으로 이끌게 한 핵심 기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 이후 운명처럼 제 주변이 영국에 관련된 사람들로 채워졌어요. 연극 연출을 꿈꾸며 들어간 한국 대학의 연극영화과에서는 런던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신 교수님이 연기를 가르쳐 주셨고 UAL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무대디자인을 가르쳐 주셨어요. 특히 한국대학의 도제식 교육에 지쳐있던 저는 연출 전공에게는 교양 수업 중 하나일 뿐이었던 무대디자인 수업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수업 첫날 교수님이 ‘무대디자인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며 <앱스트랙트:디자인의 미학>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어요. 거기서 디자이너 에즈 데블린의 작업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운명처럼 이끌렸죠. 처음으로 “아, 나도 영국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계속 무대디자인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스스로 탐구하고 실험해서 디자인을 도출해 나가는 수업 과정이 저를 온전히 수업에 빠지게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교수님께 여쭤봤습니다. 이런 수업을 계속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교수님은 본인이 이 모든 것을 배운 영국의 한 학교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길로 저는 무턱대고 학교를 휴학하고 UAL Wimbledon College of Arts의 무대디자인 전공으로 다시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저는 교수님과 같은 학교로 입학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디자이너의 자격으로 에즈 데블린과 같은 콘퍼런스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제 꿈은 멀리 있지 않았던 거죠.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국에서 다양한 나라의 배경,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저의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저도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남들의 시선을 조금 더 신경 썼다면 지금은 ‘나 다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살고 있어요. 덕분에 외모도 조금 더 제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꾸밀 수 있게 되었고 행동도 더 거침없어졌어요.


이 중 유일하게 영국화(?)가 되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면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히려 영국에 살게 되면서 한식 요리실력이 더 늘었거든요.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한식이 최고 아니겠냐며~!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가끔은 일상에 치여 제가 영국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곤 해요. 그러다가도 매번 National Theatre에서 공연을 보고 벅찬 감정을 갈무리하며 극장을 나설 때, 눈앞에 보이는 런던 아이와 빅벤을 보면 ‘아, 내가 지금 영국이구나. 영국에 오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NT live를 보며 꿈을 키우던 어린애가 어느새 영국에서 무대디자인을 공부하고 두 눈으로 National Theatre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주체 못 할 정도로 행복감이 몰려와요. 그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이 모든 건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꿈이었으니까요.



분명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영국에 와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명절, 특히 크리스마스 때 종종 힘들었어요. 영국은 한국과 다르게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라 한 달 정도 크리스마스 휴일을 가지거든요. 같이 지내던 영국 친구들도 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본가로 돌아가고 가뜩이나 구린 영국 날씨가 겨울만 되면 해도 짧아지고 더 구리구리해지다 보니 아무런 가족 없이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마다 같은 유학생 친구들끼리 크리스마스 마켓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으며 우울감을 빨리 이겨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은 매년 명절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영국 친구들의 가족분들이 집에 초대해주시기도 해서 가족이 없다는 생각보다는 더 많은 가족이 생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의 전공과 관련

된 후배에게 하는 조언도 좋고요. 올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말해주고 싶으세요?

주저하지 말고 일단 오세요! 물론 물가도 높고 말도 안 통하는 영국이지만 그래도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마주하다 보면 분명 성장하실 거라 생각해요. 특히나 공연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영국은 정말 별천지입니다 호호호  그러니 제발 주저하지 말고 오세요. 생각보다도 더 따뜻하고 더 즐거운 곳이랍니다 영국은.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공연을 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요?

작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봤던 DARK NOON(Fix&Foxy production)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공연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어서 프린지 기간 동안 몇 번을 보러 갔었거든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해서 정복해 가는 과정을 영화 세트장을 세우는 작업에 빗대어 연출한 공연인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배우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흑인 배우들이었어요. 흑인 배우들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백인과 동양인, 그리고 흑인까지 다양한 인종을 연기하는데 특히 서부영화에 빗대어 사용한 총소리를 채찍소리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너무 놀라 소름이 돋았어요. 그들의 아픈 역사를 이런 식으로 빗대어 풍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이 공연에 넣고자 했던 다양한 의미의 레이어에 감탄했죠.


그들이 미디어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방법, 관객을 공연의 일부로 끌어드리는 방법, 역사의 과정을 현대의 시선으로 가져와 빗댄 이미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너무 좋아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봤었습니다. 지금은 동일 공연이 투어를 돌 예정이라니 주변에 꼭 이 프로덕션이 투어를 온다면 보시길 추천할게요.  

https://fixfoxy.com/en/home-2/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여기서 본 공연들은 대부분 좋았다거나?

저는 바비칸을 가장 좋아해요. 바비칸에서 하는 공연들은 상당히 실험적이면서도 규모가 크고 보통 다양한 나라의 지금 뜨고 있는 프로덕션들을 초청해 공연 프로그램을 짜거든요. 한국으로 따지자면 LG 아트센터 같은 느낌이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보고 싶을 때에는 꼭 바비칸을 찾습니다.


극장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바비칸 공간 자체가 너무 예쁘고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거나 상영하는 예술센터이기도 해서 공연이 없어도 예술적 영감이 간절할 때는 바비칸을 찾아 가만히 앉아있곤 해요.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The Trojan Women이라는 공연 작업에 몰입하고 있어요.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을 식량난에 허덕이는 현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각색한 연극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프로 디자이너로서 참여하게 된 프로덕션이라 기쁜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작업 중입니다. 다행히도 5회 차 공연이 벌써 SOLD OUT이 됐다고 해서 많은 관객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아요. Lyric Hammersmith 극장에서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공연을 하는데 이 인터뷰가 업로드되었을 시점에는 이미 공연이 끝났겠네요. 부디 인터뷰를 보고 있었을 때의 제가 이번 프로젝트를 만족스러워하고 한층 성장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순간의 영원함을 만들고 싶어요. 이건 제 디자이너로서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공연이라는 장르 자체가 현장성을 짙게 띄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기록될 수 없고 오직 그 공간에 존재했던 관객들만이 공연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잖아요. 그때 그 안에서 무대와 연출, 연기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맞아떨어져 순간이 영원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은 저를 공연계로 이끌었고 죽을 때까지 공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 순간을 디자이너로서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요. 기록될 수는 없지만 기억될 수는 있는 그 찰나의 영원한 순간을요.


이를 위해 저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러 다니고 많은 것을 디자인하며 살 예정이에요. 아직 저는 젊고 열정적이니 공연에 매여있지 않고 다양한 매체에서 디자인을 경험해 보고 저의 색을 확립시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저의 다음 스텝은 한국에서 큰 드라마 프로덕션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이제야 영국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첫 공연을 올렸는데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저는 무모할 정도로 다양한 스티커로 제 인생이란 다이어리를 꾸미는 사람이고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다시 공연계로 돌아온 저는 더 다양한 레이어를 가지고 더 극적인 순간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앞으로도 어디선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 이름을 마주하게 되신다면 응원해 주세요!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닥치는 대로 많은 작업을 하고 싶고 닥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아직은 제가 사회에 나온 지 3개월도 안 된 새내기 사회인이라 많은 것을 접해봐야 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아기처럼 그 어떤 것에도 편견이나 취향을 가지지 않고 많은 이들을 만나 많은 작업을 하다 보면 제가 몰랐던 저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 거고 디자이너로서도, 인간적으로서도 제가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저와 작업하고 싶으신 분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이렇게 자기 PR을 스리슬쩍..ㅋㅋ)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을 아카이빙 하면서 생각해요.
‘아 이건 나중에 내가 큰 사람이 되었을 때 세워질
김다혜 메모리얼 뮤지엄에 남겨질 소중한 자료가 되겠구나.’

 그러니 이 글을 보신 여러분들도
김다혜라는 역사의 첫 챕터를
먼저 미리 보기 하셨다고 생각해 주세요.
언젠가는 역사에 남을
멋진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때 “어? 나 예전에 이 사람
어렸을 때 인터뷰 봤었는데?” 하며
꼭 아는 체해주세요!
그날을 위해 저는 열심히,
즐겁게 성취하며 살고 있겠습니다:)

https://dadakim.cargo.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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