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작 Oct 07. 2024

관찰과 공감, 도전과 성장_임동현

임동현-라흐학생. 제가 전달받은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이었습니다. 오세혁 작가님 공연 때 공연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며 자신을 찾아왔던 학생에게, 런던에 가거든 저를 꼭 만나보라고 이야기하셨대요. 그렇게 한국에서 이어준 인연으로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인스타그램에 동물원에 갔던 사진을 올렸는데, 동현 님이 수업 중에 animal study 때문에 매일 그곳에 갔었다고 했어요. 펭귄 구역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철학자 같은 펭귄을 찾아보라고 말해주더군요. 동물원 광장 잔디밭에서 수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풀밭에 둥그렇게 앉아 수업을 듣던 저의 대학시절도 생각났습니다.

동현 님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로열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 드라마 Royal Central School of Speech & Drama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연기를 공부하고 있는 임동현입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끝까지 해보는 사람이고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겉으로 어떤 성질을 띄고 있는지 보는 것도 관찰에 속하지만 그 안에 본질적인 게 뭔지 깊게 생각하고 가공하는 과정도 관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내가 불편하게 했나?’라고 눈치를 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다 이 사람이 아무 말을 안 하고 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관찰하는 것 같습니다. 


•   런던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2021년 9월 즈음 대학 진학을 위한 현장 답사 겸 오디션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을 때 온 것 같아요. 햇수로 따지면 3년 차 정도 되었네요. 


•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왜 하필 영국 런던이었을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깊게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항상 있었어요. 예술고등학교에서 물론 연기를 배웠지만 근본적인 곳에서 배우면 어떤 느낌이고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영국으로 오게 만든 것 같아요. 나중에 짧게라도 방문해보고 싶은 학교는 미국에도 몇 군데 있습니다. Lee Strasberg, HB Studio, Stella Adler 등. 


•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개인적인 경험에만 비추어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아요. 서울도 그렇지만 런던은 이민자나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오늘 인사한 사람이 내일 떠나는 정도의. 외로움이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살다 보면 공동체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는 도시라고 느꼈어요. 런던은 영국 다른 도시나 지역에 비하면 굉장히 사람들이 차가운 편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작은 따뜻함을 느낀 적이 많았어요. 공원이 많아서 그런가. 한국에 오면 ‘아 내가 성격이 좀 예전보다 덜 날카롭고 유해진 것 같다.’라고 느낀 적이 많아요. 하지만 이게 단순히 런던에 살아서인지 제가 이렇게 될 팔자였던 건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1학년 수업 중에 Narrative Poetry (서사적 시)라는 과목이 있어요. 텍스트에 대한 이해, 전달 능력을 키우는 데에 좋은 밑바탕이 되어준 수업이었어요. 15분 내외의 긴 산문시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저는 그 학기에 대상포진에 걸려서 수업을 2주간 못 나갔고 시험은 도전해보지도 못한 채 떨어졌어요. 어쩔 수 없이 다음 학기에 시험을 봤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D.H. Lawrence라는 시인의 시를 연기해야 했어요.

이미 다 패스한 같은 반 친구들, 교수님들, 녹화용 카메라 앞에서 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모두가 긴장하며 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떨렸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방에 있던 친구들이 다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 느껴졌어요. 

시험이 끝나는 순간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이 제일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 같아요. 나를 과감하게 내던져서 시험하고 평가받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에 내가 그래도 잘 찾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분명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영국에 와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힘든 건 어디서나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일 힘들었을 때는 나를 힘들게 했던 연출이랑 학교에서 공연을 준비했을 때였어요. 인종차별적인 이슈도 있었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인신공격을 하는 게 기본적인 태도인 사람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연출이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사과했다고 들었는데 저한테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옆에서 채찍질을 하니까 연기가 늘긴 늘었는데 (언어적으로도) 그게 과연 옳았던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 분명 영국에 오기 전에 스스로 감안한 부분이지만 막상 당하니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작아지고... 다시 커지는 것은 순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후배에게 하는 조언도 좋고요. 

올까 말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외로움에 대한 해답은 각자 다른 것 같습니다. 저를 예로 들면 저는 한국에 있을 때도 항상 외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런던에서 외로움이 들 때 그 감정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결국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분명한 기준점이 필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야 내가 흔들려도 잡을 수 있는 기둥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각자의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전공에 관련된 조언은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놀 시간에 영어 공부하는 것 정도가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조언 같아요. 


•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요? 

2023년 겨울에 @Sohoplace에서 공연한 Medea입니다. Sophie Okonedo가 메데이아를, Ben Daniels가 이아손을 연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Ben Daniels의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를 보려고 갔는데 오히려 소피의 연기에 압도당해서 아직도 그 공연장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메데이아가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죽였는지 그 과정을 메데이아가 직접 경험했다면 저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관객 모두가 숨죽이며 집중했던 기억이 있어요. 연기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이 공연이 인생 공연이었습니다. 

이아손 역의 Ben Daniels, 메데이아 역의 Sophi Okonedo | 이미지 출처 nimaxtheatres


•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저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Shakespear Globe 극장을 제일 좋아합니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극 자체만 놓고 즐기기에는 진입장벽도 높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극장에 가서 즐기는 것' 자체를 문화로 만들었다는 것 같아요. 드라마 스쿨 학생은 초대권이나 할인권이 나와도 사실 비싸서 공연을 자주 보기 힘든데 그래도 글로브 극장은 최대한 모두가 볼 수 있게 스탠딩 석을 싼 가격에 유지하고 있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극장 안에서 보낸 기억들이 나중에 연기를 그만두더라도 진득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맥주나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주인공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공연이 끝나면 근처 벤치에 앉아 떠드는 등 그런 경험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 |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몰입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고르기 어렵네요. 요즘 Showreel (연기 영상)을 찍어야 해서 장면 파트너, 교수님, 감독님이랑 상의하고 연습하고 있고 동시에 졸업 이후에 사용할 프로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Mother Clap’s Molly House 마더 클랩의 몰리 하우스'라는 공연을 하는데 저에게 큰 도전인 연극이라서 멘털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인 부분도 항상 강박처럼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또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실 와인잔을 하나 깼습니다.) 짧게 말하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더 클랩의 몰리 하우스'는 2001년 마크 레이븐힐이 작곡하고 매튜 스콧이 음악을 맡은 연극입니다. 릭터 노턴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블랙 코미디로, 인간의 성에 대한 다양성을 탐구합니다. 부분적으로는 18세기 런던의 게이 하위문화를 수용하는 마더 클랩의 몰리 하우스를 배경으로 하고, 부분적으로는 2001년 게이 남성들이 주최한 파티를 배경으로 합니다. (위키피디아 발췌)

•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요? 

인종, 종교, 성별 등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성질과 상관없이 모두가 공감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작품에서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생각이 비단 영국에 있어서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국도 정말 많은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텐데. 경계가 많은 사회에서 배우가 꿈인 저로서는 그런 경계와 상관없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에 들어가서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제가 많이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확하게.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저부터 바뀌어야겠죠.


•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믿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 주변 사람들이 저보다 저를 더 믿어준 적이 많았어요. 저는 또 그 사람들의 말을 믿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그 사람들이 본 내 모습이 진짜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너무 잘 알게 되었어요. 그런 사람들과 리허설하고 공연을 만들어가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소설이나 시를 각색해서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1인극의 형태로. 


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걸 더 좋아해서
평소에 말을 잘하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신선했고
기억을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cssd.ac.uk/student-profiles/dong-hyun-li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