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막연했을 때 '런던에서 공연하는 분들을 딱 10명만 만나보자'하고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발행된 인터뷰를 보신 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져 또 다른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원식 님도 그렇게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분입니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제가 잘 모르지만 동경하는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림이 있는 그의 목소리를 여러분께도 들려드리고 싶어 인터뷰 마지막에 영상을 링크해 두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오원식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후 Royal Academy of Music(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석사, 그리고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현재 프리랜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력들이 있지만, 최근에 저의 하이라이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감사한 일은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협업하여 영국 Rubicon Classics에서 발매된 저의 첫 데뷔 앨범 ‘Homelands’가 영국 클래식 오피셜 차트 TOP10에 올랐습니다.
✓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있나요?
저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침착함’인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연주자로서 활동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일들을 많이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얼른 일들을 해결하려고 급하게 대하는 것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 그 일을 어떻게 준비하고 해결할지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편입니다.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악가들에게 정말 주옥같은 명언이 있는데요,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입니다. 노래를 할 때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질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장점이자 키워드라고 설명드릴 수 있겠네요.
✓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제가 런던으로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학교 선배님과 선생님들께서 저에게 영국 유학을 권유하셨습니다. 독일 유학으로 마음을 굳혔던 때라 정중히 거절했지만, 여러 이유로 저에게 기회가 많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재차 권유하셨습니다. 계속된 권유 끝에 일주일만 영국을 경험해 보자!라고 여행을 결정하고 영국에 계신 선배님께 신세를 지겠다고 부탁드리고 영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이 3일 차쯤 지났을 때 선배님께서 도와주셔서 지금의 은사님께 노래 컨설테이션을 받게 되었고 저에게 한 달 뒤에 있을 오디션을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일주일의 여행이 한 달 반의 체류로 늘어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런던에서 연주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국에 오고 나서 제 음악은 180도 달라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국은 좋은 극장과 페스티벌이 많기에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영감을 주는 성악가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그 공연을 통해 제 음악에도 다채로운 변화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그리고 일터에서 친구 및 동료들과 음악 얘기를 나누며 저의 음악적 세계를 더 넓힐 수 있었고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개성’과 ‘장점’의 발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제가 처음 영국 은사님께 들었던 조언이 저만의 개성과 장점을 음악에 덧입히라는 것이었거든요. 테크닉을 중요시 여겼던 저는 늘 동료들의 공연을 볼 때마다 감상을 테크닉적인 면으로만 접근하였는데 동료들의 공연이 끝나갈 즈음엔 어느새 푹 빠져 감상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동료들의 어떤 음악이 나를 푹 빠져 감상하게 만드는 것일까?라고 고민하고 찾던 중에 결국은 각자만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최대한으로 음악에 구현할 때 비로소 관객들에게도 질 좋은 음악을 선사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영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아마 유럽에서 활동하고 계신 모든 음악가 분들께서 공감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팬데믹 시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기에 석사를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수업을 온라인을 통해 받았고, 아무래도 성악은 도제식 교육이기에 현장에서 보고 배우는 게 정말 중요한데 온라인으로 레슨을 받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모든 오페라 극장, 페스티벌, 콘서트가 멈췄고 이에 따라 학생 및 연주자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무대를 설 기회가 없었고 다른 어떤 음악가들은 그들의 Prime time을 통째로 날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모두에게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계신 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올 때 누군가 저에게 이 말을 해줬던 걸 기억합니다. ‘영국은 기회와 희망이 가득하지만 그만큼 희망 중독의 신기루를 맞이할 수 있다’고요. 그동안 활동을 돌아보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정말 많은 오디션에 도전했고 낙방하며 신기루를 맞이했던 적도 있고 포기를 생각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신기루도 내가 도전하고 부딪히며 경험해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며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기르게 되니깐요. 그래서 주저하지 말고 기회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곳의 문을 두드리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연주자들이 모이는 곳일 뿐만 아니라 무대, 프로덕션 모두 최고의 수준이기에 많은 영감을 받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영국에서 가장 큰 Song Festival인 Oxford International Song Festival의 폐막식에 Mozart Requiem Bass soloist를 맡게 되어 준비하고 있고, 또 HGO 프로덕션의 오페라 Eugene Onegin에서 그레민 공작 역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ugene Onegin은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로, 푸시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자만심 강한 귀족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사랑을 거절하고 친구와의 결투를 겪은 뒤 깊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이미 결혼한 타티아나는 이를 거절하며 작품은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그레민 공작(Prince Gremin)은 타티아나의 남편이자 존경받는 고귀한 인물로, 나이가 있는 귀족 캐릭터입니다. 그는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며, 오네긴과는 대비되는 따뜻하고 진실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레민은 타티아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녀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아리아 "사랑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타티아나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표현하며, 사랑의 고결함을 노래합니다. 이는 타티아나가 결국 오네긴을 거절하는 결심을 강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그레민은 이상적인 남편이자 진정한 사랑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요?
노래를 시작했을 때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늘 같았습니다. 재능 기부와 성악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곳에서 제 목소리가 쓰이는 일입니다. 코로나 기간에도 온라인을 통해 영국 현지의 호스피스 병동 및 치매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했었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보람차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제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이 귀중한 일들을 가수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많이 할 수 있게 성대가 늘 건강했으면 좋겠는 것이 제 꿈이네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해외 각지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를 존경하고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영국에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