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작 Oct 31. 2024

최고의 경험을 위해, 살아 있는_홍우영

우영 님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도슨트와 관람객으로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노련하게 명작들 사이로 사람들을 이끌며 관람을 연출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미술가들의 생애와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에 더해 자신의 이야기까지 녹여낸 그날의 설명은 큰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우영 님이 연출한 공연도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살아 있음’을 공연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는 연출가 홍우영입니다.

한국에서 서울예술대학교 연극 연출을 전공하고 크고 작은 작품들로 활동을 하다, 2022년도에 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에 MA Theatre Directing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지금은 극장 일 뿐만 아니라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전반적인 예술을 소개하고 공부하는 문화 도슨트로서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공연으로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음’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꾸준히 활동을 해왔고요, 언제나 우리 사회의 ‘현상’과 그들의 아름다운 ‘이상’을 공연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려 합니다.


✓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있나요?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살아있는 사람인데 제가 살아있다는 말이 참 웃기죠? 근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저는 참 ‘살아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살아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이력들이나 공연 경험들을 살펴보면 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공연을 해왔던 것 같아요. 언제나 냉철하지만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현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그 일련의 탐구들을 무대라는 텅 빈 공간 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어 있던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만의 이상을 살아있는 관객들 앞에 마주하는 것, 이것을 증명하고 확인하기 위해 달려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나아가고 있고요.


✓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스스로 참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버지가 저 군대 갔을 때,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편지를 써 주셨는데 그때 첫 문장이 “엄마를 닮은 낙천성과 아빠를 닮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우영”이었어요. 맞아,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저는 참 낙천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거 같아요. 그 편지의 첫 문장이 사실 아직도 힘들 때 저를 위로해 주는 말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공연과 연출 스타일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우리 배우들이 항상 말해줍니다.


✓ 런던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왜 하필 영국 런던이었을까요?

2022년 7월에 런던을 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영국여행 3년 차가 되었네요.

저는 어려서부터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어요. 항상 뭐든지 최고에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항상 연극만 고집했었던 제가 2018년 무렵에 뮤지컬 <빨래>의 연출님이시자 저희 교수님이셨던 추민주 선생님과 Stephen Joshua Sondheim의 뮤지컬 <Merrily We Roll Along>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뮤지컬 연출가를 꿈꾸게 되었던 것 같아요.

Merrily We Roll Along 장면


작품이 끝나고 바로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중심에서 다시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EMK 뮤지컬 컴퍼니에서 <팬텀>이라는 작품의 조연출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저의 연출님 Robert Johanson이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꿈꿨던 것 같아요. ‘아 세계 공연산업의 중심에서 공부를 해야겠다.’ 라고요.

하지만 제 분야를 오로지 ‘뮤지컬’에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거 예술의 전통성과 현재의 진보적인 변화가 함께 공존하는 영국 런던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 같아요. 게다가 2013년 겨울,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했던 Katie Mitchell의 <The Yellow Wallpaper>를 보고 공연 연출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마침 RHUL의 MA Theatre Directing 코스가 연극의 거장 Katie Mitchell이 주교수로서, 함께 공연을 고민하고 또 만들어가는 코스더라고요. 아직도 그녀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녀는 모든 연극 학도들에게 책으로만 보던, 정말 바이블과 같은 존재거든요.

이건 인터뷰어인 정작가가 만들었던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극장과 나'의 표지에 나온 케이티 미첼입니다


✓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공연뿐만 아니라 세상 자체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어요. 이렇게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 언어 그리고 성 정체성이 어우러지면서 이 도시를 살아가는 모습이 매일매일 너무 새롭고, 그동안 수많은 경험들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런던에서의 삶은 자체로 큰 의미를 갖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이곳에서 경험하고 공부했던 수많은 공연들은 저의 틀에 박혔던 모든 생각과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작년에 코스가 끝나고 Theatre Director’s Craft Audition에 선발이 되어서 웨스트엔드에 제 이름을 건 공연을 올리게 되었을 때, 정말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조연출로도 활동했었던 영국의 유명한 현대 극작가 David Greig의 <The Monster in the Hall>을 The Bush Theatre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때 오디션을 거친 영국인 배우들과 영국 디자이너들, 스텝들을 이끌고 연출을 하면서 정말 꿈만 같더라고요. 그때 정말 생각했어요. ‘나 영국에 오길 진짜 잘했다..!’

The Bush Theatre에서 공연했던 The Monster in the Hall


✓ 분명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영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석사 공부를 하던 1년의 시간들이 저에겐 인고의 시간이었어요. 특히 저희 수업 중에 Contemporary British Theatre라는 일명 ‘동시대 영국 연극’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매주 현재 사회적 이슈를 담은 한 편의 영국 현대 희곡들을 읽고 수업에서 4시간 동안 교수님과 8명의 동료들이 함께 토론을 벌이는 수업이었어요. 첫 수업이 끝나고 울면서 집에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사실 펑펑 울었어요. 어딜 가서 의견 표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던 저였는데, 그날은 정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평생을 한국에서만 나고 자랐던 저에겐 영국의 사회 정치 경제를 희곡으로 논하기엔 너무 난해한 문제였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모든 하루하루는 그 수업만을 위해 시간을 쏟아야 했습니다. 매주 100페이지가 넘는 양의 희곡들을 읽어가야 했기 때문에, 유일한 비영어권 국가의 아시아인이었던 저는 읽고 또 읽고 최소 3번 정독을 하고 다음 주 수업에서 어떤 내용을 말할지 미리 공부해서 외워갔습니다. 사실 토론이란 게 어떤 이야기가 나오고 의견이 나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하지만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이 없으려고 모든 예상 질문들과 주제들을 유추해서 공부해 갔어요. 수업에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다시는 못할 거 같아요.


✓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단언컨대, 영국에서의 삶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일 겁니다. 전통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 도시는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혁신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예요. 특히 영국인들이 모두 마음속에 장착하고 있는 ‘Let it be’ 정신은 영국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줘’의 마음가짐이 모든 분들께 정신적 안녕과 심적 평온함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다만,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요,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낭만적이진 않을 수 있어요. 제가 요즘 느끼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영국, 그중에서도 특히 이곳 공연계는 낭만에 감춰진 철저한 보수성과 아이러니한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개방성을 앞세우며 무대 위에선 다양성의 선구자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이 역시 관객들이 보는 시선일 뿐, 사실 무대 뒤의 구성진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미국은 Boiling Culture로 한 데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내는 문화라면, 어쩌면 영국은 Salad Culture로 각자만의 다양성이 다른 맛을 내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의 기득권들의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가 더욱 견고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요즘 제가 느끼는 영국에 대한 감정은 어쩌면 Love and Hate for London, 애증의 런던입니다. 하하


✓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저의 인생 공연은 일본 배우이자 극작가, 연출가인 노다 히데키 Hideki Noda의 <The Bee>라는 작품입니다. 2013년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그 공연은 제가 공연예술에 열정을 가지게 한 일종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었어요. 종이와 스크린으로 채워진 빈 무대에서 간소한 소품들과 성(性)이 바뀐 두 명의 배우가 수많은 끈을 형상화한 밧줄과 마이크 선들이 한데 얽혀 가족과 인간관계(Relationship)에 대한 이야기를 해학적이면서 비판적으로 직조해 낸 블랙코미디 공연이었어요.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살아있는 공연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이렇게나 멋있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출처 국립극단


이후부터 저는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연출가가 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5월 23일>을 시작으로 상계동 올림픽 사건을 소재로 각색한 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 사회적 소외자를 다룬 <밀림의 왕>과 뮤지컬 <연탄길> 그리고 <Clown Bar>, 저에게 있어서 이념과도 같은 위대한 극작가 Bertolt Brecht가 전쟁 문제와 이로 인한 인간 군상을 다룬 <사천의 선인>, 그리고 극단 ‘놀음’의 창단 공연인 <불구자들>은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 Martin McDonagh의 <The Cripple of Inishmaan>의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후에 제작한 <핵릿>이라는 작품은 ‘북한에도 햄릿이 산다’라는 콘셉트로 남북 이념에 대한 문제를 역시 블랙코미디로 다루곤 했었죠. 최근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는, 나비>라는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 시어터 장르에 도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다 가깝게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시도했습니다. 작년 웨스트엔드에서 했던 공연 <The Monster in the Hall>은 소년소녀 가장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날카롭게 꼬집는 블랙코미디였으며, 그리고 지금은 <탈: 만세를 외쳐라>라는 일제강점기의 억압에 대항하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대한민국 연극제에 이어 이후 무대를 준비 중입니다.

<나는, 나비> 공연 이미지


✓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여기서 본 공연들은 대부분 좋았다거나?

저는 National Theatre를 추천합니다. 사실 NT에서 하는 모든 공연은 일종의 보증 수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제가 이 극장을 추천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봤던 하나의 공연 때문이기도 해요. 2023년 Simon Stone의 <Phaedra>라는 공연이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를 펼쳤습니다. 회전형으로 거대한 온실을 무대에 올려다 놓고 단 몇 초 만에 집, 갈대밭, 사막 등으로 전환을 하더라고요. 무대에서 불가능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해당 무대를 보고 National Theatre는 모든 지 꿈꿀 수 있는 공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원래 무대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공간’이긴 하지만 해당 공연은 정말로 눈앞에서 ‘마법’을 부렸다니까요?

이미지 출처 내셔널 시어터. 가운데 사진 Johan Persson 촬영


✓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현재 내셔널 갤러리, 대영 박물관, 테이트 모던에서 도슨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원래 갤러리와 박물관을 좋아해 전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다녔었는데, 런던에서 제가 예술을 공부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도슨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가끔은 믿기지 않아요. 수많은 전 세계의 명화들과 유물들을 사람들에게 도슨트 할 때면 정말 기분이 짜릿하거든요. 어쩌면 이것들 역시 제가 추구하는 ‘살아있음’의 연장 같습니다. 나름대로 저만의 도슨트 테마를 연출하고, 그곳에서 오는 감동과 울림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저는 매일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한 편의 공연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저는 나중에 정말 나다운 작품을 공연으로 올리고 싶어요. 그것이 연극일지, 뮤지컬일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떠한 형태의 공연예술일지는 잘 모르겠으나, 누가 봐도 연출가 ‘홍우영스러운’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근데 아직 그 ‘홍우영스러운’ 게 뭔지 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3년째 영국 여행을 하며 세상을 배우고, 아름다운 것들을 좇으며, 무엇보다도 내 삶에 후회가 없는 경험들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허튼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결국 피와 살이 될 거라고요. 모든 것에 불안하고 여유가 없는 요즘인 것 같은데, 이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한번 더 되새깁니다. Enjoy the moments.


✓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어떤 작업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더 용감하고 과감해질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공부한 게 그런 거였거든요.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임이 어쩌면 저만이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닐까 해요. 더 용감한 이야기를 연출할 것이고요, 더 과감한 시도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이곳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들과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언젠가는 뜻을 같이 했었던 8명의 RHUL 연출 동료들과 다시 만나 더욱 멋진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인터뷰를 제가 이어함이 맞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어쩌면 저는 다른 분들처럼 무언가를 이룬 사람도, 그만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읽고 계신 분들께 감히 한 말씀을 올리자면,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씩 쌓아 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한 의미를 우리 모두가 확실히 하나로 정의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이 모든 것들이 예술가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대영박물관 도슨트에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페디먼트 동상을 보며 사람들에게 하는 마지막 한마디 올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가슴 뛰는 일이 있다면 전진하세요.
언젠가 찬란한 가치가 되어 돌아오는 날이
분명 올 겁니다.
저에게도, 그리고
여러분에게도요.


https://uyoung114.wixsite.com/mysi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