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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25. 2024

필리핀에서 배워온 네 가지 교훈

국제개발/국제보건 분야에서 리더십이란? 

KOICA (코이카) 컨설팅 프로젝트로 필리핀 방사모로 무슬림 자치지구와 마닐라를 다녀왔습니다. 


KOICA가 1300만 불, USAID가 1300만 불 투입해서 필리핀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방사모로 지역의 보건시스템을 개선하는 5년짜리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자문하는 일. KOICA가 USAID랑 협력해서 동등하게 하는 파트너십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운이 좋게 방학에 딱 맞아서 2주간 다녀왔네요. 무엇보다 필리핀 방사모로 무슬림 지역은 말레이시아 있을 때부터 관심이 있던 지역이라 보건 시스템을 배워본다는 마음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미션을 통해 느낀 네 가지 교훈들을 나눠봅니다. 


1)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일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번 미션에는 연대에 계시는 이태화 교수님, 예전 보스턴 때부터 알던 한동대 송진수 교수님, 같이 하버드에 계신 김세인 선생님, 그리고 연대 제중원에서 상철샘의 사사를 받은 지연샘까지 5명이 전문가 팀으로 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 분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서 조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설친다고 느껴지지는 않을까. 질문 많이 한다고 안 좋아하는 건 아닐지. 혹은 건방지게 느껴지는 건 아닐지. 몇 가지의 필터를 끼고 첫 만남에 임했다. 

애초의 우려와는 다르게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존중하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서로 부담 주지 않으면서, 각자의 역할을 잘해내는 하나의 프로팀이었다. 내가 공격 나갈 때는 수비를 봐주시고, 또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공격 나갈 때 나는 수비를 보고. ENFP인 나는 현장에 가면 사람들하고 친해지기 바쁘고, 호기심이 넘쳐 질문이 가득하고, 큰 그림만 그리고, 웃기는데 여념이 없을 때, 그런 모습도 존중해 주시고 내가 잘하는 걸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T와 J를 가진 다른 팀원분들은 우리 프로젝트가 산으로 안 가게 꼼꼼하게 점검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방향 잡이가 되어주셨다. 


일정 내내 서로의 장단점을 웃으며 얘기하고, 잘하는 건 잘한다 해주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려고 노력하며, 존중을 바탕으로 일할 때 나이와 경력이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팀워크가 살아났다. 그래서 다시 깨닫는다. 나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나의 일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팀은 정말 따뜻했고, 똑 뿌려졌고, 노 스트레스 팀워크였다. 


2) 정답은 현장에 있다. 


이번 방문 기간 동안 방사모로자치구역 보건부 장관부터 보건지소의 조산사까지, 보건 서비스의 모든 레벨의 기관과 사람들을 만나며 짧은 시간 안에 필리핀 보건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가기 전에 수행기관인 IOM (국제이주기구)의 제안서를 보며 공부를 해갔지만 현장에 가서 보니 문제점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필리핀의 빈부격차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방문한 방사모로 무슬림 자치지역은 내가 지금까지 일했던 가나나 네팔의 지방 보건 시스템보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더 많아 보였다. 평균의 오류가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평균적으로 잘 사는 필리핀에 대한 인상은 평균 이하의 서비스 환경을 가진 방사모로 지역을 보면서 아세안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필리핀의 통계의 이면을 보았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다양한 이론과 케이스들이 무색하게 현장은,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게다. 그래서 역시나 정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에 있다고, 논문에 담겼다고, 파워포인트 속 숫자로 그들의 삶을 이해했다고 하는 오만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3) Go beyond technical! 


현장에 가면 technical (기술적) 전문성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때로는 협상도 해야 하고, 타협도 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우리는 대부분 technical expert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내가 쌓은 기술 전문성 이상의 스킬들이 필요한 곳이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내가 원하는 아젠다를 최대한 세련되게 내어놓고, 모두가 만족하고 떠나갈 수 있는 안을 만들어내고 테이블을 일어나는 것. 이것은 사실 기술 전문성 + 외교 + 협상의 영역이라 생각이 된다. 내가 일하는 국제 개발/국제 보건에서 technical 전문성은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특히나 개발도상국으로 갈수록 내가 (대부분) 선진국에서 쌓아온 technical 전문성을 너무 들이대면 오히려 비호감이 되어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리소스가 부족한 곳에서는 더욱이나 book smart가 아니라 street smart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쌓아야 할 리더십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4) 한국, 더 잘할 수 있다!


난 한국이 국제 개발/국제 보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한국은 가진 것에 비해 70% 정도만 활용하고, 그 정도만 인정을 받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국제 개발/국제 보건에서의 행보들을 볼 때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미션이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내가 한국 기관을 등에 업고 가서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협상해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 기관들도 USAID를 만날 때, 유엔 기관을 만날 때, 수원 기관을 만날 때 더 당당하고, 전문적이고, 영향력 있는 모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아마도 리더십이 아닐까. 우리가 2% 부족한 그것. 


2주간 다양한 기관을 만나면서 내가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한국 국기 달고 국제 개발이란 경기장에서 뛴 느낌이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런 기회를 꿈꾸어본다. 해외리그에서 뛰는 축구 선수들이 국대 경기에 들어와서 뛰는 느낌이 이럴까 싶다. 국제 개발에도 국대가 있다면 꼭 들어가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2주를 시간 내서 코이카 프로젝트에 자문을 언제 다시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배우고 싶던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온 것 같아서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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