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견새 한 마리를 울게 하는 법으로 세 영웅의 성격을 논한 이야기가 있다. 새가 울지 않으면 죽인다던 오다 노부나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울게 해 보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새가 울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던 도쿠가와 이에야쓰. 고등학교 시절 대망이라는 역사소설에 한창 빠져있었다.
『대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중심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이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말엽에 걸친 일본의 전국 난세를 평정하고 통일을 이루어낸 인물들의 생애에서 소재를 가져온,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의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총 26권을 번역한 책이다.
일본 역사소설에 심취해 731부대 이야기를 다룬 마루타부터 대망까지 다양한 책들을 책장에 쌓아두고 있던 외삼촌 방은 내게는 꿈과 모험의 창고였다. 선데이 서울도 여러 권 있었는데 이중의 보호막 같은 책과 책 사이에 거꾸로 꽂혀있던 헐벗은 언니들이 손짓하던 사진들이 가득한 이 책은 잘못 건드리게 되면 내가 삼촌 책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 티가 날까 봐 얌전히 두고 소설류만 한 권씩 빼와 읽고 갖다 두면 날다람쥐처럼 움직였다. 어리다고 읽지 못하게 하시니 별 수 있는가? 목마른 내가 꼴짝꼴짝 몰래 마실 수밖에.
내게는 삼국지보다 흥미롭게 읽히던 소설이었다. 삼국지는 책사들과 장수들, 그들 아래 움직이던 다양한 말들이 이미 완성형이라 빈틈없이 짜여진 각본 같았다면 이 책은 일본이란 나라의 혼란기에 진창 같은 전장에서 싹튼 문명의 꽃이 어떻게 피어나고 만개한 뒤 열매를 맺는지를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예측 못한 변수들이 인물을 흔들고 그들의 생사를 결정짓고 그로 인해 흥망이 갈리는 가문들의 이야기가 안타까웠다. 저들의 한없이 비장한 사무라이 문화 속 할복장면이 나올 때면 내 배를 꼭 붙들고 문질러댔다. 어떤 마음으로 칼 위로 엎드릴 수 있는지,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에 긴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 책 속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성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만나는 곳곳의 풍경이 흥미롭다. 마침 아침조깅을 즐기는 이들의 힘찬 몸짓을 보니 나도 같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괜히 따라 달리다 발목이 시큰거려 금방 한쪽으로 비켜서서 먼 산 보며 뒷짐 지고 걸었지만. 도톤보리란 지명이 도톤 야쓰이라는 백제 후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건축할 때 막부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해 물적ㆍ인적 자원을 바치도록 요구했다는데 그때 도톤 야쓰이가 큰 공헌을 해 업적비까지 세워주었단다. 위대한 도래인 도톤 야쓰이의 얼과 돈이 엄청나게 들어간 성을 만난다. 기모노 소매를 닮았다는 입구의 108톤짜리 거대 바위부터 성 아래 파놓은 엄청난 깊이의 해자에 놀란다. 뱃놀이까지 인공수로에서 즐길 정도였다니 규모는 대충 예상했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기에 까마득하게 높아 보이는 위에서 그들의 전투 장면을 상상해 본다. 오카야마에 있는 섬들이나 롯코산에서 돌을 채석해 왔다는데, 최소 40톤인 11개의 거석에 각각 이름도 붙어있고 채석한 위치와 다이묘 이름도 새겨져 있다. 다만 일본어를 몰라 눈 뜬 장님이 된 나는 그 앞에서 심오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끄덕. 대체 이 거석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옮겨 왔을까? 목조배로, 육로로... 당시의 풍경을 가늠해 보며 돌을 다시 눈으로 더듬어 본다.
우리에겐 임진왜란의 원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존경받는 위인 10인에 들어간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엄이 오사카성에 제대로 담겨있다. 실제로 지금의 성은 히데요시 아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쓰와의 싸움에서 지고 성에 불을 질러 전소되어 버려 도쿠가와 가문에서 다시 지은 거라 한다. 1583년에 짓기 시작해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겪은 이 성은 면면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본다. 오래된 고목과 증축되어 위풍당당히 금박입은 기와를 자랑하는 오사카성 천수각 앞에서 마침 여행 온 한국 고등학생들을 보았다. 심심찮게 만나는 한국인들이지만 사내 녀석들 4명이 그 앞에서 살갑게 비비대며 단체사진도 찍고 신나게 웃으며 장난도 치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는 싱그러움으로 다가온다. 저 천진함이 좋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더니 천수각을 향해 던지는 흉내를 낸다.
옆 친구 왈,
"뭐 하는데?"
"와이파이 도시락 던져서 윤봉길 의사 후손 되련다!"
이 말에 내가 그만 빵 터져서 웃으니 뻘쭘해하며 얌전히 도시락 와이파이 챙겨 전망대로 간다. 녀석들 패기를 높이 사줘야겠다. 다만 계속 그러면 잡혀갈까 봐 걱정했는데 적당한 장난과 함께 다시 또 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세대와 세대 사이, 역사를 통해 이어지는 조상들에 대한 기억과 그들의 마음들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어떤 이들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고 헌신했는지 그 이름자도 기억 못 하는 이들이 많아져가는 요즘이다. 김훈작가님의 "하얼빈"을 통해 만났던 인간 안중근을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었다. 같이 기억하자며 말이다.
오사카성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3 부자의 위패를 모셨다는 신사는 입구의 꽃들만 보고 돌아섰다. 저기 어디에 귀의 묘가 있다는데 안에 들어가기 꺼림칙하다. 나를 부르는 이름 모를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라 살짝 소름도 돋았다.
대신 정원 한 자락에 자리한 나무들 앞에서 올해 처음 피어난 꽃들만 벗 삼아 인사하고 나오니 잎이 다 진 나무들이 가득한 오사카 성의 정원에서 호젓하게 앉아있는 노부부가 보였다. 직접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드시고 내가 서 있는 곳까지 스며드는 향긋한 커피를 나눠드시는 두 분의 평온이 참 좋다. 일본 도착 후 내가 처음 만난 마음의 평온이랄까? 바다 건너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얼굴로 보통의 일상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 사는 동네란 생각을 하며 벤치에 앉는다.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새겨진 기억들은 다른 온도인 두 나라, 앞으로는 어떤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