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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12. 2024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난 2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명문 이슬람아자드 대학교 안에서 신원불명의 여대생이 속옷 차림으로 교정을 활보하다 바시즈 민병대 회원들에게 끌려가 정신병원에 구금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체포되는 과정에서 자행된 성폭력 등과 한 개인의 인권이 처참하게 말살된 일이 영국의 가디언지를 통해 보도 되었고, 국제 엠네스티에서는 이란 정부에 그녀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바람대로 정말로 그녀가 풀려났는지에 대한 후속 보도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자신들의 누이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히잡을 반대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굳어져 온 관습에 대항하는 작은 개미들은 더 큰 폭력 아래 짓이겨지거나 조용히 사라질 뿐이죠. 흔적없이요. 체제는 견고한 성채고 균열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일테니까요.







장노아 작가 ㅡ 도도와 상하이 타워






 역사는 개인의 삶에 불쑥 찾아드는 이방인이죠. 신의 의도를 가장한 채, 개개인의 삶에 불쑥 고개를 내민 역사는 냉정한 정산 아래 개인의 행복을 자신들의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거주비로 받아갑니다. 이를 위반하는 행위의 경중은 계산에 없죠.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이분의 잣대만 갖고있을 뿐이죠. 이란의 히잡부터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아래 불가촉 천민으로 분류된 이들까지. 어릴 적에는 저들은 왜 체제에 대항하지 않는가? 부당하다 생각되고, 맞서 싸우되 바꿀 수 없다면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꿀 수는 없는걸까란 아주 천진한 의문을 품었더랬죠.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제가 한 천진무구한 생각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드리운 굴레는 한두번의 고갯짓으로 떨쳐낼 수 없는 무게의 것들임을 마음의 무게로 감히 엿보게 되었어요. 1997년 단 한 권의 책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18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처녀작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 그녀의 책을 전 20년 뒤에 발표한 두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로 먼저 만났습니다. 그리고 처녀작을 찾아 읽었죠.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앞장 서서 인도 사회 내의 다양한 인식 변화에 앞장 서 온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관록이 묻어나는 아룬다티 로이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빗물에 불어 난 강물이 훑고 간 자리마다 피어오르는 강렬한 물내음과 소리들이 들려오는 아예메넴의 우기 속 주인공들을 마주합니다. 아예메넴이라는 인도 케랄라의 소도시의 잿빛 5월을 묘사하며 소설은 시작됩니다. 오랜 시간 도시에서 방황하다 자신들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 온 라헬과 말을 잃어버린 채 유령처럼 고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스타. 이 둘의 조우와 함께요.



그들의 삶은 이제 크기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에스타에겐 그의 삶이, 라헬에겐 그녀의 삶이 있었다. '가장자리', '경계', '경계선', '끄트머리', 그리고 '한계'같은 것들이 마치 한 무리의 트롤처럼 각자의 지평선에 나타났다. 키 작은 요정들이 기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흐릿한 접경'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제 온화한 반달 같은 주름이 눈 아래 자리잡았고 그들은 암무가 죽었을 때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 서른하나.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 p.14


 

 작은 사건들, 평범한 것들은 부서지고 재구성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갑자기 그것들은 한 이야기의 빛바랜 뼈대가 된다.   - p.53




 다양한 종교가 혼재하는 아예메넴. 그 곳의 유지에 속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암무는 신부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아름답고 총명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 18살을 넘기게 됩니다. 캘커타의 먼 친척 아주머니에게 갔던 그녀는 그곳에서 바바라는 남자를 만나 우아한 캘커타식 결혼식을 올리죠. 암무의 부모님의 축복은 없는 반쪽짜리 결혼이었지만요. 1962년 중국과의 전쟁이 한창일 때 암무의 쌍둥이들이 태어납니다. 라헬과 에스타펜. 영혼의 교감이 가능한 불가해한 천진으로 가득한 작은 생명들이 있어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 남편의 폭력과 그가 권하는 상관에 대한 성매매 압박을 피해 친정으로 돌아올 결심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빛 바랜 역사 속 장면들을 이어가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죠.



 옥스포드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으로 갔던 암무의 오빠 차코. 그의 전처 마거릿이 차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소피를 데리고 아예메넴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러 오죠. 쌍둥이들보다 2살 더 많은 9살의 소피는 호기심 많고 호불호가 강한 아이죠. 누구나 잘 보이려 노력하는 집안의 권력자 마마치가 자신에게 베푸는 특권도 과감하게 거부하며 새롭게 만난 세상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요. 이렇게 순수한 7살 쌍둥이와 9살 영국소녀가 같이 보낸 여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쌍둥이들은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고, 아름답던 암무는 세상을 떠났고, 그리고 소피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영원한 상실과 애정의 표상으로 남아버린 걸까요? 그들을 찾아오는 아무도 알 수 없었으나 반드시 존재하고 있던 "공포의 날"을 향해 갑니다. 소설 속 각 장의 제목으로 이야기의 잎맥을 따라 오르는 자벌레가 되어 책장을 넘깁니다. 그리고 책의 제목 <작은 것들의 신>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소설 속 금기어로 속삭임처럼 전해지는 이름, 벨루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요.










 더 나중에도, 이날 이후 이어진 열세 번의 밤 동안에도,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중략)

 며칠 동안 거미는 심술궂게 옷을 입지 않고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냈다. 거부한 쓰레기 껍질은, 유행이 지난 세계관처럼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한물간 철학처럼, 그리고 부스러졌다. 조금씩 차푸 탐부란(쓰레기의 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그들이 붙여 준 거미의 이름)은 새로운 앙상블을 갖춰 입었다.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 미래(그들의 ;사랑', 그들의 '광기', 그들의 '희망', 그들의 '무하아한 기쁨')를 거미와 결부시켰다. 매일 밤 (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을 안고) 거미가 그날을 견뎌냈는지 살폈다. 그들은 거미의 유약함에 애가 탔다. 거미의 작음에. 위장술의 적절성에. 자기파괴적으로 보이는 자만심에. 그들은 거미의 다양한 취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거머의 어기적대는 위엄도.

 그들은 덧없는 것을 믿어야만 함을 알았기에 거미를 선택했다. '작음'에 집착해야만 함을. 헤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단 하나의 작은 약속을 얻어낼 뿐이었다.

"내일?"
"내일"

그들은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 점에서는 그들이 옳았다. -p. 463






 불가촉천민인 벨루타와 가촉민인 암무. 그들의 경계를 넘어선 사랑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름답게 묘사된 사랑의 장면들로 인도 내에서 외설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카스트 제도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이 만나 나눌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사랑의 순간들의 묘사는 저들의 사랑이 갖고 있는 비극적 결말을 더욱 강조하고 있을 뿐이죠.



 벨루타와 암무. 그들이 달 그림자 아래 함께 있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퍼져가고, 공산당의 폭력적인 시위들이 횡행하고 있던 당시 그 속에 끼어들어 비밀스러운 활동을 하고 있던 벨루타는 지배계층의 위험분자가 되어 반드시 처단당해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죠. 초록빛 통바지, 풀 먹인 제복을 입고 진흙탕을 건너오느라 그들이 신은 장화로 짓이겨진 노래기들의 사체를 덤으로 달고 온 police들에게 벨루타는 신께 드리는 속죄물이 되고 맙니다.



 에스타펜과 라헬이 그날 아침 목격한 것은, 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지배권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통제된 조건(어쨌든 전쟁도, 집단 학살도 아니었다)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이었다. 구조, 질서, 완전한 독점을 추구하는 본성, '신의 의도'로 가장한 채 어린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역사였다.

 그날 아침 일어난 일에 우연은 없었다. 우발적인 것도 없었다. 노상 강도도 개인적인 보복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이었다.

실연實演중인 역사.

그들이 의도했던 것보다 벨루타를 더 때렸다면, 그것은 연대감, 그들과 벨루타 사이의 어떠한 연결고리, 그러니까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마저 오래전에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 p. 422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에서 신이 창조한 신의 나라 케랄라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바라보게 됩니다. 한 사람의 삶과 사랑, 그에게 주어진 알 수 없는 내일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서두에 언급한 불시의 이방인 같은 평상시에는 있는지도 몰랐다 고개를 들이미는 역사적 사건들일까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지만, 시작부터 다르게 구별이 된 누구와 누구라면... 그래서 바꾸거나 벗어던질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하고 자신 앞에 놓여있는 작은 것들을 더욱 절실하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누구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큰 것을 볼수록 끌어안고 있던 서로의 온기에도 서늘함과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던 연인들의 이야기에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작은 것들의 신> 인터뷰 현장에서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라는 작가의 말에 전세계 수백개의 출판사에서 담당 에이전트 데이비드 고드윈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작을 담당하는 사람을 물었다더군요. 한편의 소설로 전세계 600만이 넘는 독자를 사로잡은 마력적인 작가의 목소리 만나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은 벨루타와 암무, 에스타펜과 라헬과 어떤 표정으로 만나게 될 지 궁금합니다.



 <작은 것들의 신>, 여러분의 신은 무엇인가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Anoushka Shankar - Laysa


https://youtu.be/wLAXfkK-DPg?si=A4dRG7uIIVNWtNw7










#작은것들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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