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
그들의 삶은 이제 크기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에스타에겐 그의 삶이, 라헬에겐 그녀의 삶이 있었다. '가장자리', '경계', '경계선', '끄트머리', 그리고 '한계'같은 것들이 마치 한 무리의 트롤처럼 각자의 지평선에 나타났다. 키 작은 요정들이 기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흐릿한 접경'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제 온화한 반달 같은 주름이 눈 아래 자리잡았고 그들은 암무가 죽었을 때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 서른하나.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 p.14
작은 사건들, 평범한 것들은 부서지고 재구성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갑자기 그것들은 한 이야기의 빛바랜 뼈대가 된다. - p.53
더 나중에도, 이날 이후 이어진 열세 번의 밤 동안에도,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중략)
며칠 동안 거미는 심술궂게 옷을 입지 않고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냈다. 거부한 쓰레기 껍질은, 유행이 지난 세계관처럼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한물간 철학처럼, 그리고 부스러졌다. 조금씩 차푸 탐부란(쓰레기의 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그들이 붙여 준 거미의 이름)은 새로운 앙상블을 갖춰 입었다.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 미래(그들의 ;사랑', 그들의 '광기', 그들의 '희망', 그들의 '무하아한 기쁨')를 거미와 결부시켰다. 매일 밤 (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을 안고) 거미가 그날을 견뎌냈는지 살폈다. 그들은 거미의 유약함에 애가 탔다. 거미의 작음에. 위장술의 적절성에. 자기파괴적으로 보이는 자만심에. 그들은 거미의 다양한 취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거머의 어기적대는 위엄도.
그들은 덧없는 것을 믿어야만 함을 알았기에 거미를 선택했다. '작음'에 집착해야만 함을. 헤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단 하나의 작은 약속을 얻어낼 뿐이었다.
"내일?"
"내일"
그들은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 점에서는 그들이 옳았다. -p. 463
에스타펜과 라헬이 그날 아침 목격한 것은, 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지배권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통제된 조건(어쨌든 전쟁도, 집단 학살도 아니었다)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이었다. 구조, 질서, 완전한 독점을 추구하는 본성, '신의 의도'로 가장한 채 어린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역사였다.
그날 아침 일어난 일에 우연은 없었다. 우발적인 것도 없었다. 노상 강도도 개인적인 보복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것이었다.
실연實演중인 역사.
그들이 의도했던 것보다 벨루타를 더 때렸다면, 그것은 연대감, 그들과 벨루타 사이의 어떠한 연결고리, 그러니까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마저 오래전에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 p.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