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음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눈앞의 한명이 내게 등을 돌리거나, 혹은 내가 내뱉은 한 마디 말, 또는 저지른 한 번의 행동으로 돌아서는 사람이 그 순간에는 내가 가진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따름입니다. 그 순간 순간이 모여 삶이 되고, 우리는 그 삶을 사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머릿 속으로는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누군가 나를 미워하거나, 혹은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는 먼저 제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따져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게 된 계기와 근거를 먼저 파악해서, 내가 잘못한 것이 있고 그것이 명백한지, 혹은 그 사람과 화해를 할 여지가 있는지. 그 이후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속 시원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도 나를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첫째로,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회피라는 단어에 맞서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어 많이들 언급을 자제합니다만, 실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회피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 길에서 담배를 필 때, 혹은 전도를 하거나 시비를 걸 때,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 섣부른 대응이나 어설프게 뿌리를 뽑으려는 행동이 외려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가 실제로 많습니다. 그렇듯 내 잘못이 없는데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굳이 나는 좋은 사람이라며 설득하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둘째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지를 떠올립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챙기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기도 합니다. 아끼는 사람을 챙기기도 벅찬 인생일진대, 어찌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생각하고, 떠올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굳이 그 사람을 신경쓰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가 없이 미워하는 것이니까. 그 사람도 자신이 나를 왜 미워하는지 근거를 찾지 못하거나, 찾아도 내가 고칠 수 없는 부분일테니까요.
셋째로, 관계에 대해 정립한 수많은 옛 현인의 문구를 곱씹어봅니다. 이를테면, '신조차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라든지, 리처드 파인만이 했던 '남이야 뭐라하건'이라든지요. 짧고 쉬운 것 같은 속 시원한 문구 안에 그들의 인생과 철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굳이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무게를 두고 움직이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남이야 뭐라하건' 자신이 옳다 믿는 신념을 우직하게 믿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길면서도 짧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때로 많은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건 결국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 날 미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바꿔나가고 고쳐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고쳐나감에도 불구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는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눈 앞의 관계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삶의 방식을 믿고 그대로 행한다면, 오히려 가치관이 맞지 않아도 그 고고한 자세를 보고 더 끈끈한 관계들이 생기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