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어요 1/2

하루 한 편 단편소설

by 봄단풍

그 카페에 자주 갔던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음악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서였다. 귀에는 들리지만 흘려보낼 수 있는 소리, 또 그런 음악들. 가사도 없고 선율도 기억나지 않지만, 옆자리 커플의 대화마냥 잠잠히 공간의 여백을 채워주는 조용한 음악들. 그런 연유로 이 카페에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의자가 두 개 딸린 자그마한 탁자에 앉아 허공을 마주본 채 내가 할 말을 되뇌어봤다. 인사, 안부,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 아무리 늘려봐도 할 말은 채 세 문장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꼭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짜내도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선배?』

『어, 야! 오랜만이다.』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학교 선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고, 무심히 건넨 밥 먹자는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전에 가지고 있던 번호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는 서로 멋쩍게 웃어보이곤 제 갈 길을 갔다. 그게 전부다. 단지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었던 짧은 마주침에 손이 멋대로 올라가 인사를 건넨 것, 그 뿐이었다.


“주문하신 핫초코 한 잔 드릴게요.”


그 한 번의 인사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저 그 마주침만으로는 아쉬워서 보냈던 한 번의 연락이 ‘만나서 이야기하자’라는 흐름으로 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거다. 물론 누군가가 내게 이 만남을 원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겠지.


왜냐하면, 나도 만나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으니까.


어느덧 도시는 물에 찬 듯 푸른빛에 가라앉아 있었다. 주말 오후, 아직 해가 지기는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한겨울은 역시 다른 모양이었다. 얼마 전 길에 소복이 쌓였던 눈은 지저분한 얼룩이 되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지만, 날씨에 얼어붙은 탓인지 도무지 녹아 없어지질 않았다.


『너랑 얘기하면……. 벽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 아니라 좋아.』

『어……. 그것 참 다행이네요. 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아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뭐랄까,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느낌? 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왠지 잘 통하는 느낌.』


핫초코는 달달했고, 텁텁했다. 흑맥주마냥 묵직한 초콜렛의 식감이 혀 뒤쪽 목구멍을 귀찮게 잡아당겼다. 침을 삼켜봐도 까슬한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안했다. 차라리 선배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걸, 아니면 시간을 맞춰올걸. 여전히 다음 할 말을 머릿속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내게 초콜렛의 텁텁함은 꽤나 번거로운 장애물이었다.


벌써 오년도 더 된 옛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던 마음을 묵힌 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말을 전할 용기가 생겼다. 왜냐하면 시간도 많이 지났고, 그만큼 선배도 나도 성장했으니까. 지금은 부끄럽게 여길만한 말들, 또 서투르게 느낄만한 행동들을 지금은 하지 않을테니까. 그 때보다 훨씬 멋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래, 그래야 하는데…….


『꿈이 그거야?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네. 제가 워낙 말을 잘 못하니까……. 웃기죠?』

『아냐. 정말 순수한 것 같아.』

『에이. 바보같은 거죠 뭐.』

『아니야, 정말. 순수해. 그래서 좋아.』


다만, 오랜 시간 묻어둔다고 해서 꼭 할 말이 많아지는 건 아닌가보다. 아무리 쥐어짜내도 그 때 하지 못했던 한 마디만 떠올랐다. 조금 더 멋있는 표현, 비유,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미사여구들, 그게 아니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 당시 내 행동과 말들에 대한 변명……. 덧붙일 말들이 많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텁텁함을 알면서도 핫초코를 한 번 더 홀짝였다.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주홍빛 가로등이 금방이라도 켜질 듯 거리의 푸른빛은 짙어져 있었다. 그리고 소복이 쌓인 눈 너머로, 카페의 창문을 따라 익숙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추위에 팔짱을 끼고 목을 잔뜩 움츠렸는데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딸랑,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왜 덧붙일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그 때와 다름없는 환한 미소, 그 때와 다름없는 보조개, 그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 발걸음. 첫 만남과 다름없는 여전한 아름다움으로, 선배는 몇 년의 시간을 뚫고 내게 걸어왔다.


할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우대권 단편소설 『할 말이 있어요』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