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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Feb 17. 2024

나의 기도

저를 아세요?

친구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아이가 남겨두고 간 두 가지 말만이 내 마음에 동그마니 떠올랐다.


죽고 싶거든 네 마음부터 죽여.

마음을 버리고 비우면 다른 게 눈에 들어와..


그 두 가지 말은 모르는 단어 없이 명료한데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단서 없는 암호 같았다.

도대체 마음은 어떻게 죽여야 하는건지 알수가 없었다.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와서 존재 하는것인지도 몰랐다.


그저 나는 숨만 끊어지면 생각도,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도 없어지리라 생각했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내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어떻게 해야 내 마음과 생각을 버리고 비울 수 있을까? 마음과 생각이라는 게 어디에서 생겨나 그 엄청난 힘으로 나의 몸을, 나의 인생을 휘몰고 살아왔는지!

한자리에 가만히 몸을 두어도 나의 생각과 마음은 왜 끝 간데없이 유영하며 과거로 , 또 미래로 나를 헤집으며  인생을 불행의 시나리오로 써대는 걸까.

내 안의 생각과 마음도 내 맘대로 못하면서 어찌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세상일이 내 원대로 되길 바랄 수 있을까.


그가 만났다는  하나님을 나도 만나고 싶었다.

죽음의 벼랑 끝에 서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세상을, 나도 한번 보고 싶었다.

내가 서 있는 곳도 바로 그곳, 삶의 제일 후미진곳, 땅끝이었으니까.



나는 기도를 할 줄 몰랐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구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내 소원을 중얼중얼 말하고 나면 내 귀에도 들리는 나의 기도는 내 신간만 편하도록 해달라는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요구로  들려서 그 염치없는 음성에  퍼뜩 정신이 들 때면 더욱더 나 자신을 향해 비아냥거리게 되곤 했었다.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면 이 세상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 있을까.

응답이 늘 그렇게 있었다면 세상에 불행은 왜 존재할까.  


아이들에게  남겨줄 눈에 보이는 유산은 이미 없지만, 부모라는 우리의 삶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꼭 제 엄마아빠처럼 살다가 인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 태어나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예정된 저주 아니겠는가!

애들에게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고작 개차반 같은 아비와 고통받다 자살한 어미의 인생을 유산으로 물려주겠구나 하는 생각은,  죽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나를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누군가는 이런 고통의 시간 없이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계획과 희망이 이렇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부서진 지금….인간으로서의 한낱 자존심 따위도 다 팽개치고  그저 살려만 주십사고 빌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그 불행을 손에 쥐고 나를 표적 삼아 달려드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피해 도망치게 해달라고,

나와 아이들을 살려만 주시면 무슨 짓이 든 하겠다고… 가장 비굴한 모양새로라도 나의 간절함을 말하고 싶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간절한 기도를 바칠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절실하게.. 나는 비명 같은 기도를 했다


간절했다.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들 때, 다 그만두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수치심과 모멸감이 올라올 때, 나 자신이 보잘것없어 미치겠을 때, 원망과 미움이 치솟아 몸이 떨릴 때마다..

나는 울부짖었다.

나를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그것은 절규에 가까운 고백이었다.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인질 같은 절박함이었다.

목젖이 찢어지도록 울고 싶은 처절한 절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만큼 울다 지쳐 눈물도 닦아낼 수 없었을 때..

나는 늘 나를 옥죄던 공포나 두려움조차 침묵한 어느 순간을 느꼈다.

내가 뱉은 말들 뒤로 무언가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 침묵의 가장 중심에 희미하게 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을 느꼈다.


그건 마치 공기와 공기가 빈틈없이 차 있어서 아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팽팽하던 줄에서 화살이 튕겨져 나간 것 같은,

태풍이 지나고 난 뒤의 고요해진 모든 것 같은,

살겠다고 버둥대며 안간힘으로 매달리던 동아줄에서 이제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이의 펼쳐진 손처럼,

실로 생애 처음으로 나는 완벽하고도 온전한 침묵을 느꼈다.


그 침묵 속에 무언가가 속삭이듯 내게 들렸다.


나는 , 너를 알아


저를 아세요?

제가 여기 있어요,

저를 보고 계세요?


나는 느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어떤 이의 시선을.

남루한 그 공간 속,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산산이 깨어진 거 같은 내 몸과 마음을 감싼 어느 이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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