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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Feb 12. 2024

친구親舊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친구가 찾아왔다.

암투병한 지 십여 년이 넘은 친구.

완치판정받은 지 6년째에 전이되어 재발된 암으로 말기를 선고받은 친구.

미국 땅으로 공부하러 와서 처음 사귀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으며 비슷한 삶의 곡선을 지나온 친구.

차로 5시간 넘는 거리를 , 혼자 운전하지 못하니 남편까지 대동하고서.

대학시절부터 함께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와 비슷하게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된 친구.

전화 통화를 하다가 죽고 싶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남편을 앞세워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시댁식구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과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최대한 덤덤하고 싱겁게. 사실들만.

추측이나 과장도 필요 없고, 설명에 덧붙일 부사들도 필요 없이.

나의 살아온 과정을 낱낱이 아는 친구에게, 내가 말도 안되는 일을 이해시키고자 열심을 내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냥 그 앞에서 엎어져 울었다.

내 등을 말없이 오랜동안 그 아이가 쓸어주었다.

그 마르고 하얀 다리 위에 엎어져 나는 한참을 울었다.


어떻게 하고 싶니?

말없이 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죽고 싶어. 광미야., 나는 죽고 싶어. 난 더 이상 못 견딜 거 같아.


광미는... 엎어져있던 나에게  잠시 부스럭거리더니 말했다.


나 좀 봐바.


나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친구를 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친구가 천천히 가발과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앞섶을 풀어헤쳤다.

하얗고 마른 그 아이의 몸에 , 수술 자국과 항암약을 넣기 위한 포트, 그리고 맹숭한 머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죽는 건 언제든 죽을 수 있어.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다 죽어.

나는 뇌에도, 간에도, 뼈에도, 폐에도 암이 있대.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난 애들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절실해.

내 생명이 한 달밖에 안 남았대도, 애들에게 도시락 싸 보내는 아침을 하루라도 연장할 수 있다면 난 치료받을 거야.

생명은 하나님께 달린 일 같아.

정말 죽고 싶다면, 네 마음부터 죽여.


천천히 그리고 나보다 더 담담하게,  친구는 말했다.

  



그 아이는 학교 때부터 새침스러웠다.

하얗고 마른 몸에 유난히 빨갛고 작은 입술을 가졌던 그 아이는 사과를 좋아했고, 야자대추를 좋아했다.

작고 빨간 입술에 사과를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참 이뻤던 아이였다.

나만큼 힘든 결혼 생활을 하다 미국에 돌아와 둘째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유방암판정을 받고 투병을 해왔다.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 내성적이지만 강인한 아이,

그 아이는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 투병 중에도 단 한 번도 내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징징거린 적이 없었다.

늘 나에게 먼저 찾아와 주었고, 들어주었다.

가끔 그의 수술 후 흔적이나 투병 후 모습들이 궁금했지만 그 깔끔한 새침데기는 찾아오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상처와 흉터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 쿨하게 이야기했다.


죽고 싶은 거 이해해.

하지만 너 살아있는 것처럼  한 번도 못 살아봤잖아.

나처럼 죽는 날 받아놓았다 생각하고 한번 살아봐.

하루라도 더 살아보려고 항암을 하는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고.

마음을 버리고 비우면, 다른 게 눈에 들어와....


하.....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잊었다.

눈물도 멎었다.


우리는 다른 몸으로 다른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누어가졌고,  나는 그 아이의 말이 언어가 아닌 내 영혼을 깨우는 울림으로 느껴졌다.


멈춘 것 같은 그 짧은 시간 속에 생사를 넘나들던 그 친구가 한 말이 그렇게

나의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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