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그 땅에 닿다
하루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은 아침이었다.
실낱같은 해가 힘을 발휘하며 어둠을 열어젖히는 그 어김없는 순환이 나는 참을 수 없도록 괴로웠다.
새로운 날, 새로운 일이 터질 것 같다는 불안.
어제까지는 어찌어찌 견뎌왔지만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그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나는 냉정한 재판관도 되었다가, 자비로운 변호인이 되기도 하였다.
떠오르는 해를 피해 부엌바닥에 주저앉았다가도 나는 불에 덴 듯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몸을 일으켜 도시락을 쌌다.
아이들이 나의 불안과 우울을 눈치챌 세라 짐짓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다시 못 볼 듯 아이들의 엉덩이를 정성스레 두드리곤 했다.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몸을 통해 느꼈던 아침의 위로였다.
그 폭풍 전의 고요함 같았던 3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 나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다 망하게 생겼다,
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시어머니의 정신을 반쯤 잃은 듯한 격앙된 목소리에 나는 이미 내용을 듣지 않아도 몸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터져 나갈 것 같은 느낌.
내용 인즉은 그랬다.
애들 아빠가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다며 투자하라고 한 곳에 어머니와 아버님은 아주버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 노른자위의 건물 두 채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빼 그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4개월 정도만 그를 통해 이자가 들어왔고, 이후로는 애들 아빠와의 소식도 두절되었으며 , 은행에서의 독촉은 담보물 집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가족들의 연락이 간헐적으로 그와 연결될 때마다 곧 해결될 거라는 말만 남기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 그의 행적도 오리무중이라 했다.
탐정을 붙여 그를 쫒았는데도 매번 놓쳐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시댁으로는 그의 이름으로 각종 채무관계 서류들과 아버님 이름으로 연대보증이 된 알 수 없는 명품 차에 대한 차압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곳에서 각종 서류들과 고소장들이 송달되고 있으며, 가진 것 모두를 잃기 전에 극단의 방법을 써서라도 건물 한 채는 살려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무렵 즈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시고 집 앞에서조차 집을 찾아오지 못하시던 시아버지는 이 일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셨으므로 이 모든 일을 아주버님과 어머님이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어머님은 마른침을 삼키며 마지막으로 거칠게 한마디 뱉으시곤,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당장 다음 달부터도 우리는 너에게 돈을 못 보낸다.
당장 여기 있는 우리도 길바닥에 나 앉게 생겼어!!!
나는 그저 멍했다.
이게 도무지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그 돈 욕심 많으시고 계산이 칼날같이 정확하시던 시어머니가 ,
결혼 이래 평생 사고를 쳤던 애들 아빠에게 두 건물을 걸고 투자를 하셨다고???
왜? 뭘 믿고??
그 중대한 일에 나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분명 들었건만,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고함치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리건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 앞뒤를, 나는 이해하고 수긍하기 전에 받아들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머니의 부르짖는 목소리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그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들은 너무 큰 사건 앞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아주버님을 통해 들은 자세한 그 사건의 전말은 현실감 전혀 없는 삼류 사기영화 같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상식적이었다.
그리고 내 이해의 유무에 상관없이.. 나와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극한 생존의 상황에 놓였다.
지난 시간 동안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던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가 그렇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두움을 타고 파도처럼 매일 나를 덮쳐오던 공포는,
상상도 못한 저 아래의 또 다른 바닥으로의 수직하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