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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Feb 19. 2024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죽으라,

정말 살고 싶다면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었다.

진실의 반대말은 철저한 망각이었다.


공기와 공기사이의 간극조차 채우고 있는 그 무엇, 그 어떤 존재.

나를 알고 있다는 그 존재.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나에게 느껴지도록 다가온 어떤 존재.

나는 그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


아니, 손톱만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나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 믿고 있는 "이성"으로 꽉 채운 인간이고 싶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살아오면서 보아온 종교의 반목, 제정신 같아 보이지 않는 그 종교광신자들에게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나는 종교가 얼마나 비인격적이며 비상식적인지 놀랄 뿐 아니라 두려울 지경이었다.

종교라고 이름 붙인 권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호도되고 삶이 망가지는 사회적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의 주변에서, 이웃들에 의해, 아니.... 솔직히 말해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인생의 중요한 모퉁이마다 종교는 그야말로  숨어있다가 발길질을 해댔다.

내가 정말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과 헤어지게 됐던 이유도 종교 때문이었고, 급작스런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종교 때문이었다.

재능 없는 작가가 끄적거린 삼류영화 스토리처럼...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의 부모들도  과하다 싶을 만큼 열정 가득한 불교신자셨는데, 다름 아닌 내가 교회 다니는 집의 딸이라는 이유로  열렬한 반대를 하셨었다.

한집안에 종교가 두 개면 그 집안 망한다는 논리에, 내가 신자가 아니라 친가 집안만 그런 거라고  변명을 해도 언젠간 나이 들어 교회를 찾게 될 것이라며 예언을 하셨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내가 헛헛하게 웃으며 쉬이 사랑을 포기하고 그에게서 돌아설 수 있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 내가 보아온 지긋지긋한 종교전쟁 덕분이었고, 종교 따윈 신경 쓰지 않으신다며 너 하고픈대로 하라는, 신심 없는 거죽만 불교신자셨던 시어른들 또한 결혼을 결심하게 한 이유 중의 하나였었다.


자랄수록  신앙심 따위는 마음속 어느 한 곳에도 두지 않으리라 결심에 결심을 거듭한 나의 철저한 "이성“은 그런 개인적인 경험의 합리적 결과물이었다.



게다가 자비와 사랑과 구원을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교리로 인간을 침탈하는 뉴스를 볼때마다 나는 분한 마음으로 종교와 종교인들을 경멸하고 비난했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상처 주는 일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와 나와의 인연을 싹둑! 잘라냈었다.


나는 그저 세상에 충실한 인간다운 인간이고 싶었다.

세상안에서 배운 지식으로 똘똘하고도 총기 어린 눈으로 인생을 실패없이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었단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를 향해 강해지리라, 부지런해지리라, 그리고 세상에 넘치는 합리적인 지식과  경험들을  이성적으로 활용해서 잘 살아가리라... 하는 모종의 결심을 하게 한 것이었다.

그게 나를 살게 하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했던 가장 큰 결심이었다..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았다.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모든 것은 책에서 답을 얻으며,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이성적 결과들을 신뢰해왔다.

오차까지 감안하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면 차선이라도 가겠지 하는 너그러운 여유까지 부리면서 내 인생을 계획하고 결정하며  종교나 신앙이 끼어들틈 없는 신인류답게 살아왔다.



그런데 , 그런 내가 울부짖었다.

모든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나라는 존재가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잎같이 되었을 때.

세상의 흔하디 흔한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진공의 세상을 만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의 그 세상과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나를 지켜보던 그 존재를 향해.

살려달라고. 그저 나와 아이들을 살려 달라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나는 그때 나의 육신보다 먼저

나의 상식을 죽였다.

나의 옳고 그름의 판단을 죽였다.

내가 신뢰하던 나를 버렸다.

그것은 순차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계획한 일도 아니었다.


지난 40년간 나를 지탱해 오던 튼튼하고 굳게 서 있던 내 안의 꼿꼿한 심지 같은 그 무엇이,

죽기로 결심한 내 육신에서 분리되어 먼저 죽음의 벼랑으로 뛰어내린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 얇은 막을 찢고 내 인생을 향해 들어온 어떤 빛이,

내게 말하고 있는 낮은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 음성을 들었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진실과 진리를 찾았어도 찾지 못했던 이유는…

그분을 부인하고 잊고 있던 나의 망각 때문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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