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미야, 힘내!!
우리가 처음 만났던 19살 이후 ,
시간으로 치면 우리는 몇시간을 같이 보냈을까?
내가 너를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가 몇번이나 만났을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었지?
너는... 다 기억하니?
우리는 서로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무슨과일을 제일 좋아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한번도 서로 물어본적도 없는것 같아. 그냥, 어느날 문득 너에 대해 알게 된것들은 질문이나 대답으로 알게 된게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으로 저절로 알게 된거였어.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 너는 명쾌하고 밝은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해를 등지고 서서 웃으며 내게 먼저 인사해주었어. 파란색 원피스에 빨갛고 도톰한 네 입술이 참 예뻤다고.. 내가 전에 말했었나 모르겠다.
영어도 어색했고, 모든게 힘들고 부자연스러웠던 내게 네가 먼저 다가와준 이후 나는 많이 안심했던거 같아.
몇년뒤 건축을 공부하던 네가 치대를 준비 하며 학교를 옮겼다가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우리는 둘다 지쳐있었지..
우리는 꿈에 지치고, 현실에 지쳐서 어디론가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가봐..그래서 우리둘다 도망치듯이 결혼을 서둘러하게 된건지도 몰라.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나와서 결혼한 너와 몇개월 차이 없이 바로 결혼한 나.
그동안 우리는 결정적인 큰 일들을 비슷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루어 가며 살아온거 같아..
우리의 큰애들이 우리처럼 서로 친구가 되고 그때의 우리보다 더 여물은 청년이 되었는데도 내 마음은 여전히 널 처음 만났던 그때와 지금의 너가 다른것 같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이야..
너를 만나면 날 속상하게 한 남편을 일러바치고 싶고, 그동안 참으며 억울해마지않던 사건들에 대해 서도 말하게 되고, 부끄러워 남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소심한 자랑도 하게 되고 그래..
너를 만나면 세상 다시 없는 내 편을 만난거 같아 숨쉴틈도 없이 바뻤지.. 항상.
내 인생의 참 큰 선물이 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친구는 같이 인생의 여행을 떠나며 서로에게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는거 같아. 너는 참 좋은 동무이고, 훌륭한 선생님 이란다. 나는 너에게 사고뭉치 친구역할 밖에는 한게 없지만 너는 나에게 가야갈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야.
많이 아프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너,
투병하는 동안 삶에 대해 더욱 성실해진 너.
삶의 하루하루를 정말 만개한 사과꽃처럼 ..풍성하고 향기롭게 가꾸어 가는 너를 보며 나는 어느날 부터는 네가 그냥 친구로 보이지 않고 인생선배로 느껴졌어.
삼년전 너와나의 중간지점인 피스모비치에서 만났던 날과 작년에 너네 둘째녀석 기숙사에 넣어주느라 라호야 비치에서 만났던 때는 정말 좋았어..
그 날 ,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던 너의 눈빛과 웃음을 나는 잊지 못할거야.
파도치며 부서지던 물방울들이 아름답다는걸 나는 네 표정을 보고 알았으니까!
나는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걸 너한테서 처음 느꼈어, 광미야. 사람이 숭고하게 아름다울수 있다는걸 너한테 처음 알아보았어.
너에게는, 가냘프지만 꺽어지지 않는 강인함이 있고, 강하다고 하기엔 너무 처연한 ,힘든 병이 함께 하지만..늘 그것들을 잘 다독이고, 다스려서 오늘까지 왔잖아...
언제나 나를 만나러 먼길 마다않고 와주던 너에게 내가 더 많이 너를 찾아가볼수 있게 기회를 주렴.
우리가 전에 꿈꾸었던 것처럼, 농사짓고 아이들 가르치며 선교사로 남은 시간 살아보자고 약속했던 그날이, 생각지도 못하게 또 우리에게 다가올거라고 나는 믿어.
그러니, 오늘도 힘내, 광미야!
우리가 같이 비행기 타고 떠날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