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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ug 05. 2019

복숭아

옛날 옛날, 굿판의 추억

나 어릴 적 우리 집 입구에 있던 채마밭 뒤쪽으로는 이사 와서 할아버지가 심어 가꾸신 복숭아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그리고 집 안쪽 깊숙이 산과 맞닿은 쪽으로는 각시 복숭아라고 불리는 개복숭아 나무가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수형이 그리 예쁘지 않은 데다 가지에 찐득한 수액이 맺히고 풍뎅이 같은 벌레가 들끓었지만 복숭아 맛으로는 으뜸이었다. 그 복숭아는 스미또(? 아마도 '수밀도'가 변형된 말이 아닐까 싶다.)라고 불리던 것으로 맛은 지금의 황도와 비슷했다. 잘 익은 후에는 겉껍질이 손으로 벗겨도 훌훌 벗겨졌고 한 입 베어 물면 다디단 과즙을 머금은 부드러운 과육 맛이 일품이었다. 단지 두 그루의 나무였지만 할아버지가 어찌나 잘 가꾸셨던지 가지가 찢어지게 매년 열매를 열어 우리 식구의 입을 충분히 즐겁게 했다. 반면 집 안쪽 구석에 있던 커다란 붉은 가지의 각시 복숭아나무는 불그레한 작은 열매를 맺는 것은 봤지만 먹지도 못하는 데다 과실 때깔도 시원찮아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울안에 있으면 잡귀를 막아준다고 했다. 한데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가끔씩 굿판이 열렸다. 집안에 시름시름 앓는 중환자가 생기거나 병원에서도 병명이 잘 나오지 않는 질환은 다들 잡귀가 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굿을 해서 한이 있어 들러붙은 조상신이나 잡귀를 어르고 달래서 멀리 보내야 병이나 재앙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누구누구네 큰 굿을 한다네.’ 하는 소식은 며칠 전부터 동네를 돌았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굿은 꽹과리 소리와 함께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까지 이어졌다. 간간이 그치기는 했지만 꽹과리 소리와 사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굿의 특징이었다. 큰 굿은 미리부터 준비하는 품새도 달랐고 동네 사람들은 기다렸다가 구경을 가기도 했다. 어른들의 단속이 있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오래 구경해본 적은 없지만 얼핏 엿본 굿은 참 화려했다. 휘황한 불빛 아래 북을 치는 박수와 예쁜 화장에 화려한 옷을 입고 칼을 든 무당이 한조가 되어 있었다. 흰 종이를 오려서 온갖 모양을 만들고 떡에다 과일, 그리고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뭐라 사설에 주문을 끊임없이 외워댔다. 주욱 둘러서서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과 마당까지 밝힌 밝은 전등불로 인해 큰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굿이 절정에 이르면 설움이 받혀서 꺼이꺼이 우는 사람이 있고 애달픈 사설과 함께 곡진한 당부가 이어지곤 했다.


한데 문제는 그 굿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밤늦게 오는 굿하는 사람들이었다.

큰 굿은 미리미리 며칠 전부터 준비가 대단했다. 하지만 작게 하는 굿은 주로 소소하니 집에서 무당을 불러하는 것으로 '푸닥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꽹과리 소리가 먼 데서 나면 어느 집 푸닥거리를 하나보다 했다. 한데 푸닥거리나 굿 도중에 필요한 것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아님 미리  준비하라 했는데 깜빡 빠뜨렸다가 그제야 생각이 났던지. 설풋 잠이 든 밤중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자다가 놀라 잠옷 바람으로 나가보면 "송구스럽지만 동쪽으로 뻗은 각시 복숭아 가지를 몇 개 끊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집 안쪽의 으슥한 산 밑, 그래도 묵은 나무라 가지가 낮은 것도 아니고 복숭아나무는 튼실하지도 않아 올라갈 수도 없는데 오밤중에 와서는 잠자던 사람에게 동쪽 가지를 끊어 달라니. 아무 준비성도 없고 염치마저 없는 그 사람들이 난 참 싫었다. 잠자리에서 방문 너머 두런두런 어른들이 하는 바깥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잡귀가 우리 집까지 따라왔을 거 같아 꺼림칙하고 싫었다. 군소리 없이 사다리를 내오고 애써서 그 가지를 들려 보내는 어른들의 수고가 아까워 난 속이 상했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개복숭아 나무는 벌레만 끓고 귀찮으니 베어내자고 졸랐었는데 그 이후는 당최 기억이 없다.


굿하던 일이 거의 일상이던 때에서, 미신 추방 등등 온갖 개화(?) 물결이 일면서 아마도 우리 집 개복숭아 보다 굿판이 더 먼저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무슨 재앙이 생기면 먼저 주위를 살펴 납작 엎디어 잘못한 일을 참회하고 그도 안 되면 보이지 않는 조상이나 떠돌이 원귀까지 챙겨서 해원 상생하던 그 굿판이 생각난다. 하늘 두려운 것을 알고, 일이 안 풀리면 그것이 자기 행실의 잘못이나 말 못 하는 자의 원한에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비해 지금은 신조차도 돈으로 조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두려운 것 없는 사람들이 참 많아 보인다. 둘 다 터무니없기는 도긴개긴 아닌가 싶다.


"저 죄를 어찌 다 받으려고 저러나. 하늘이 두렵지도 않나."

따위의 촌스러운 말에 눈도 끔쩍하지 않는 간 큰 사람들.

그 속까지 아무렇지도 않은지, 하늘의 섭리도 이들을 제외시키는지는 내 모르겠지만. 그까짓 '동쪽으로 뻗은 개복숭아 가지' 따위로 귀신을 막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때, 순박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다.

지금은 그보다 더한 짓을 하고도 세상을 덮은 권력과 금력이 그 개복숭아 가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때 무당이 불러내던 그 많던 원귀들은 죄다 어디로 가고, 지금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들 동티도 못 내는 것인지 궁금하다.

시장을 둘러보다 한창 나오기 시작한 노점상의 복숭아를 보며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해묵은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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