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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n 26. 2019

나잇값

유쾌하게 나이 들기


어려서 어른들을 따라 초상집에 갔을 때 어린 마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곡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자 상주들은 상청 앞에서 상객을 맞거나 예를 올릴 때 "에고~에고~" 하고 형식적으로 울었다. 물론 아저씨들도 진짜 슬픔이 복받칠 때는 한두 차례 흑흑거리며 눈물 콧물을 흘리지만. 한데 곡하는 여자들은 상청 앞에서 "아이고오 아이고오" 하며 진짜 복부에서 우러나는 서럽고 애잔한 울음을 울어서 듣기만 하는 나도 덩달아 같이 슬퍼졌다. 한데 놀라운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곡이 끝나자마자 이내 ‘끝!’ 하듯이 상복 자락으로 얼굴을 훔치거나 코를 한 번 팽 풀어 버리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잊고는 일상으로 돌아와 손님들께 낼 음식상에 참견을 하고 이거 저거 부엌일을 지시를 하는가 하면 음식 간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엌에서 이러저러 이야기도 즐겨하니 아까 상청에서 구슬피 울던 그 사람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분은 전혀 슬프지 않은데 가짜 눈물을 보였단 말인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한데 또다시 그렇게 한 소끔씩 울어 젖히면서 이내 부엌에 와서 기민하게 그 많은 상객들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을 부리며 초상을 치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는 헷갈리고 혼란스러웠다. 한데 어디 특별히 의뭉스러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내가 어려서 본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이 그랬다. 곡을 하다가 잠시 기암을 하는 경우는 봤어도, 안주인이 슬픔으로 음울하거나, 한쪽 방에 자리보전하고 누운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집안의 아주머니들은 애통해하면서도 집안 대소사 일을 죄다 씩씩하게 치러내며 꿋꿋이 사는 모습이 어린 내게는 참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겨 감정이 한쪽으로 고이면 그 일 외에는 만사가 귀찮아 다 포기하고 싶고, 그 일을 피해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어 진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일의 여파가 다른 곳에까지 미친다. 생활의 일부 힘든 일로 나머지 모든 것이 침체되고 스스로를 자폐 시키는 경우가 잦다. 옛 아주머니들처럼 상청에서 서럽게 슬픔을 터트리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는 내공 같은 것은 내게는 엄감생심이다. 감정의 용량이 도토리 깍지 정도밖에 안 되거나 영 탄력성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울다가도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이내 다른 것에 빠져서 웃는다. 감정의 찌꺼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 감정의 순간 연소가 정확하다. 눈길이 쏠리는 현재의 순간에 100% 몰입한다.

깨달은 선사와 땡추 차이는 지금의 순간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의 차이라던가.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똥 눌 때는 똥만 누는 선사”와 “밥 먹으면서도 똥 눌 생각”을 하는 땡추의 차이라니. 생각을 맘대로 다스릴 수 있는 그들의 감성 바탕은 깨끗한 투명 수채화 같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함께 올 때조차 의연하니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본분을 다했던 예전의 어른들이 요즘 자주 생각난다. 깊이 슬퍼할 여유조차도 없었지만 의연했던 그 시대의 어머니, 며느리들을 생각하면 요즘 내 우울은 엄한 엄살, 나잇값을 못하는 투정 같이 여겨져서 스스로 못마땅하다. 마음을 쓸 때는 쓰더라도 몸을 부려 일 할 때는 열심히 일하며 일상을 살아내는 의연함을 기르지 못하면 늘 징징대는 노인으로 늙어갈 것 같아 겁이 난다. 항상 누군가의 주의를 고갈시켜 피곤하게 만드는 늙은이라니... 나이 먹기는 저절로 되지만 제대로 나이 듦은 생각해볼수록 어려워서 나는 두렵다.


언제나 나도 역경 속에서도 모든 것을 포용해서 너그러운 백제의 미소를 지닌 사람이 될지, 생각할수록 까마득하다. 이것은 여간한 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할 일이다. “세상에 ‘내 것’이란 게 없고 아예 ‘나’라는 자체가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진리를 한눈에 꿰뚫은 부처님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흔쾌히 감내하는 경지는 범인의 경지가 아니니까. 그저 다만, 내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때그때 열심히 감당할 용기를 가지고 싶고 그 감정에 빠져서 휘둘리는 일 만이라도 면해보고 싶다.

상청 앞에서 “아이고아이고” 서럽게 울다가도 이내 주의를 돌려 일상에 담담히 복귀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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