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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ug 11. 2019

깍두기

나 어릴 적에는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라 어느 집단이건 영리하고 재빠른 녀석이 있는가 하면 좀 모자라고 굼뜬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자랄 때 역시나 한 동네에서 똘똘하다고 소문난 아이도 있지만 집에서조차 구박덩이에다가 좀 모자라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도 어울려 놀 때는 애들끼리 차등을 두거나 지금처럼 왕따를 시키거나 하진 않았다. 한 집에 보통 서넛 이상의 형제가 자라던 때라 골목에 애들이 모이면 중학생에서부터 언니 오빠를 따라 나온 코흘리개까지 그 나이 차가 심했다. 그런데도 다들 소외되지 않고 어울렸다. 물론 놀이에 따라서 여자애들만 하는 놀이가 있고 남자애들만 하는 놀이가 따로 있기는 했지만 전부가 어울릴 수 있는" 숨바꼭질"이나 "나이 먹기" "개구리밥" 같은 놀이에서는 죄다 어울려 판이 클수록 재미가 진진했다.


그런 놀이를 할 때도 여늬 때처럼 편을 갈랐다. 먼저 제일 잘하고 리더십 있는 우두머리 둘이 나와 편을 나누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씩 자기편으로 들였다. 차례로 하나하나 다 빼가고 나면 나머지가 처졌다. 좀 유난히 굼뜬 애, 좀 모자란 애, 그리고 형이나 언니를 따라나선 어린 동생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잘못하면 각 팀에 승리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어영부영하다가 술래에게 잡혀서 민폐를 끼치기도 했으므로 그 누구도 뽑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머릿수로 승부가 가능한 경우도 있어서 카드의 조커 노릇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놀이 자체가 전원을 어우를  수 있는 참 지혜로운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윷놀이에서 때론 제일 꼬맹이가 던질 때도 모나 윷이 나오듯 실력 차이가 특별한 게 아닌 확률 게임이듯이. 

일단 서로 편을 가른 다음에는 대충 나머지 쳐지는 애와 꼬맹이들을 대충 서로서로 갈라서 한몫으로 나눈다. 즉 있으나 없으나 그저 그런 애들도 배려해서 끼워줬는데 그런 애들은 선수의 숫자에 넣지 않고 여분으로 쳤다. 그리고 이런 애들을 '깍두기'라고 불렀다. 아무리 떼어놓으려고 해도  따라붙는 동생을 마지못해 데리고 놀러 나온 애들에게 "괜찮아 네 동생을 그냥 깍두기로 우리 편에 넣어주자."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놀다 보면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다들 소중한 우리 편이라서 서로 돌보고 챙겨주었다. 놀이에서 죽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상대편 진영으로 달려가 구해주면서 모두가 동등한 일원이 되는 것이다. 가끔 형들에게 지청구도 듣고 군밤을 맞기도 하지만 노느라 바빠서 누구 하나를 의도적으로 왕따 시키거나 제외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가끔 소 뒷걸음 하다 쥐 잡듯이 승리에 뜻밖의 기여를 하기도 하니 재미가 배가되고. 이러면서 어린애들은 형들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저절로 말도 따르게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동네 형이나 누나들에 대한 충성도가 함께 놀다 보면 쑥쑥 자랐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없던 '왕따'란 말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온 지가 제법 된다. 그들은 '이지메'라고 하던가. 독 안의 쥐처럼 학과 공부에만 획일적으로 내몰린 애들이 만만한 약자인 제 또래를 무는 방식이거니 생각을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 섬뜩하고 무서운 일이다. 


예전의 그 '깍두기'들은 지금은 죄다 어디에 있을까. 늘 누런 코를 흘리며 놀이에 시켜주기를 바라고 양지바른 벽에 기대서서 기다리던 동네의 아무개, 항상 지청구를 먹으면서도 기어이 따라 나오던 그 많던 골목골목의 동생들. 귀찮아도 동생 돌보라는 엄마의 말에 마지못해 어린 동생 손을 잡고 나오던 친구들, 포대기 대고 동생을 업고 나와서도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도 거뜬히 하던 동무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다시 우리 아이들 세대어서 '깍두기'들의 부활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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