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친구 하나가 시내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근처 산골에 집을 마련했다. 건축 일을 하는 조카가 직접 지어준 집은 간소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울안의 너른 마당과 채소밭, 통풍과 채광이 잘 되는 집에다 친구의 감각 있는 솜씨까지 어우러진 집은 물론 보기 좋았지만 정작 우리를 즐겁게 한 것은 바로 따끈한 온돌방이었다. 집은 죄다 보일러를 놓았지만 방 하나는 군불을 땔 수 있게 구들을 놓은 것이다. 잡다한 것을 불로 태울 수도 있고 허드레 나무를 땔 수도 있게 한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재래식 구들을 놓고 시멘트가 아니라 황토로 방을 마감한 것은 더더욱 반가운 것이었다.
우리는 그 친구 집에 가면 먼저 그 방을 탐한다. 예전처럼 노란 종이 장판으로 마감하고 콩기름으로 마감을 한 방바닥에는 아랫목 이불이 깔려있고 맨 아래쪽은 노릇노릇 보기 좋게 타 있다. 친구네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 방에 들어가 따끈한 아랫목 이불 아래 쭉 다리를 뻗고 있자면 마치 고향집에 온 듯 평안한 느낌이 든다. 그대로 드러눕기도 하고 뒹굴 거리기도 하며 몸도 맘도 노곤하니 풀리는 맛에서인지 그 친구의 집은 각지의 객들이 끊일 새가 없다.
20여 년 전 LA에 갔을 때 항상 봄이라는 그곳 겨울이 내게는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곳 사람들은 다들 반팔에 겉옷 하나씩만 걸치고 다니는데 나는 한기가 느껴졌다. 침대에도 소파에도 앉기 어설퍼서 집에서도 의지가지없는 사람처럼 서성거렸다. 전기 히터라는 것을 작동하면 더운 공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왠지 그 따듯함이라는 게 내가 원하는 온기와는 달랐다.
결국 '베드 워머'라는 전기담요를 강하게 켜고 그 위에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야 내 온기에 대한 허기가 좀 가셨다. 이곳에 우리나라의 온돌을 놓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몇 년 후 실제로 한국 보일러를 들여와서 방 하나를 온돌로 시공해주는 사업을 한 사람은 대박이 났다고 했다.
사실 그 어디를 가도 이 온돌을 따를만한 난방 기구를 난 본 적이 없다. 누군가의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길래 설마 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전통 난방기구래야 가옥 한가운데 화덕을 놓아 불을 피우는 것이 유일하고 현대에 들어서 코타즈라는 부분 난방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목욕으로 덥힌 몸으로 온기가 식기 전에 잠을 잔다고 한다. 온돌 문화에 익숙한 한국의 유학생들이 겪는 일본 추위는 참 매섭다고 들었다. '유담뽀'라고 불리는 온수 통으로 이불속의 한기를 물리칠 뿐.
자료를 찾아보면 유럽의 난방기는 주로 벽난로였다. 그것도 부유층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는데 앞은 구워지고 등은 시린 불완전한 형태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포도주 잔이 얼어서 터질 정도였다고 하니 서민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유럽의 경우 겨우 18세기에 들어서야 난로가 보편화되어 추위를 가실 수 있었고 그나마 조리용 화덕은 19세기에야 여유 있는 집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경우 '하이포코스트'라는 우리 비슷한 난방 시스템이 있는데 가정 난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듯하다. 런던 서쪽의 '바스' 같은 로마 온천 유적지에 가보면 우리의 온돌 같은 것을 만들어 뜨거운 온천수를 흘려보냄으로 따듯하게 한 흔적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온천장을 덥히는데 주로 쓰였을 거 같다.
중국도 동북부 만주 쪽과 몽고 지역에 우리의 구들 같이 집안의 일부분에 만든 것으로 '칸'이나 '나한'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아마도, 현재 온돌의 시조를 고구려로 잡는데 이 지역은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힘들게 일하고 나서 누구나 뜨뜻한 구들에서 몸을 풀 수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돋보인다. 현대에 들어 서구의 건축가들이 이 구들 난방 시스템의 탁월함을 말하고 자신의 건축물에 응용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전에 학생 때 한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온돌 때문에 게으르다고 했다. 서구처럼 공기를 따듯하게 해야 움직이면서 일을 하는데 누워만 있어서 국민성이 게으르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우리 주위에 이런 식의 잘못 전달되는 이야기가 참 많다는 것을 커서야 느낀다. 서구의 것이면 무조건 대단한 듯 생각하는. 그들이 지금처럼 살만하게 된 것이 역사적으로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문명이란 게 지속 가능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뭐가 어쨌건 난 지금도 구들이 가끔 그립다. 지금의 아파트 같은 온수 보일러가 아닌 내 친구 집처럼 장판 깔린 온돌방 말이다. 어려서 불을 땔 때 그랬듯, 불 앞에 앉아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을 바라볼 때의 그 아름다움, 적막함, 온전한 충만감 같은 느낌도 그립다. 아랫목 이불 안에 늦게 들어오는 식구를 위한 밥주발이 놓이고 오손도손 아랫목 이불에 발을 묻고 모여 함께 나눌 시간이 많았던 그 시절이 새삼 오늘 같이 눈 오는 날은 더욱더 생각난다. 몸도 맘도 춥고 허기에 지쳤을 때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달게 한 잠 푹 자고 나면 다시금 내 안의 밑바닥으로부터 든든한 온기가 솟아나는 그런 아랫목을 난 그리워한다. 아무래도 난 여전히 꿈을 꾸고 있거나 그런 정서에 길들여진 토종 한국인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