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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ug 01. 2020

단골 장수

그땐 그랬어

지금은 주거 환경이 주로 아파트 중심으로 돌아가니 누구네 집에 대문을 밀고 들어간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초대되지 않은 집에 불쑥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나 대부분 골목에 연이은 주택에 살고 낮에는 늘 대문을 열어두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들도 많아 "계세요?" 하며 남의 집 대문을 밀며 들어서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옛날 방물장수는 못 봤어도 옷을 보따리에 싸서 이고 다니며 파는 보따리장수, 꿀이나 체장수는 흔했다. 


이들 중에 일주일에 몇 번 단골로 방문하는 꽝아리 장수는 주로 다라이로 생선을 떼어와 파는 생선 장수들이었다. 이들은 계절에 맞춰 명태, 조기, 간 갈치, 꽁치, 등속을 팔러 다녔다. 이들은 "오늘은 간 갈치가 좋은데 한 뭇 들여놓을까요?"라고 말해서 확답을 받으면 주인이 일로 바빠서 겨를이 없을 때는 집에 들어가 밖의 수돗가에서 호박잎으로 쓱쓱 갈치 비늘을 벗기고 씻고 토막을 내어 채반에 널어두고 가기도 했다. 조기나 새우가 나는 철에는 아예 젓갈까지 담아주기도 하고 집안 큰일이 있을 때는 생선을 주문받아 사다 주기도 했다. 늘 다니는 단골이다 보니 점심때에 오면 얼른 먹던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놓으며 와서 먹으라며 권하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미 동네의 누구 누구네서 먹고 왔다고 할 때가 더 많았다. 채소를 이고 다니며 파는 장사도 있었는데 한 골목에 이런 단골 꽝아리 장수가 두엇은 드나들었다.


그 훨씬 전에는 내 기억에 멀리 경상도나 강원도 등의 타지에서 왔다는 체 장수나 꿀, 또는 삼베 장수가 있었다. 이들은 거의가 중년의 아주머니들로 자신의 이력을 말하며 물건을 팔았는데 일 년에 한두 번, 또는 그보다 더 간격을 두고 오기도 했다. 마을에 들어와 해거름 녘까지 장사를 하다가 저물면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곤 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딱히 여기고 청을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저녁은 먹었느냐 물었는데 이들은 늘 점심을 늦게 먹어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두말없이 밥상을 챙겨 내왔다. 

우리 집은 할머니와 우리가 자는 이간장방의 미닫이 위쪽 방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나곤 했는데 "객지 장사에 얼마나 남겠느냐"며 극구 말려도 가고 난 후에 보면 마루나 방 한쪽에 꿀병 또는 허드레로 쓰라며 어레미 체 하나를 남기고 갔다.


명절이 다가올 때 가끔씩 들르는 옷 보따리장수는 늘 반가웠다. 생판 남은 아니고 누구네 친척이랄지 누구네 엄마랄지 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미리 형성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 옷 보따리를 푸는 집에는 이미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기 일쑤였다. 옷 사러 남부시장이나 중앙 시장까지 나갈 수고를 덜어주고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바꿔주는 애프터서비스가 있어서 조금 싸게 품질은 괜찮은 것으로 준비하려는 동네 사람들은 알음알음으로 모여들곤 했다. 게다가 시장과는 다르게 외상 거래가 가능했던 것도 단골이 많았던 이유였을 것이다. 누구 누구네는 옷은 수시로 가져가 놓고 돈은 질기게도 잘 안 준다 거나 누구네는 셈이 깨끗하다고 소문이 나기도 하는 자리였다. 이뿐만 아니라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는 멋쟁이 미제 아줌마도 그 한 축에 속하는 장수였다. 쌍마 표 청바지에 미제 버터, 가루 주스, 화장품, 바셀린 등등 현대판 방물장수라 부를 만큼 미제라면 없는 게 없었고 못 구하는 게 없었다. 그 이후 방문 판매하는 아모레나 쥬단학 화장품 아주머니들이 생겨나서 마을의 단골 장수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의 가방에는 두툼한 외상 장부가 있었다.


다른 장수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대학 졸업 후까지도 미제 아줌마는 자주 볼 수 있었다. 졸업 후 근무하던 병원의 약국까지 미제 아줌마가 드나들었다. 죄다 아가씨들이다 보니 커피나 로션, 스타킹, 코티분 같은 미제 화장품이 주를 이루었다. 월급날 즈음에 각 병동의 간호사실을 거쳐서 기본 코스로 약국을 방문하는 듯했고 선배들도 애용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휴게실에 와서는 여기저기 소식까지 전해주며 예쁜 물건들을 내놓아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아마도 마지막 현대판 방물장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쉬는데 누가 찾아와 보니 종교단체의 선교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어 문은 열어주지 않고 인터폰으로 거절하고 말았지만 문전박대를 한듯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예전에 가가호호 골목을 다니며 방문 판매를 했던 우리네 단골 장수들이 생각났다. 

손님도 객도 아닌 그 중간에 자리했던 이들과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우여곡절이 지난 시간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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