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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l 14. 2019

밀가루 반죽을 하며

옛날 옛날 여름의 칼국수

내 밀가루에 관한 기억은 어릴 적, 가세가 기울어 시내에서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 온 이후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 집에 늘 있던 객 식구나 손님 없이 우리 식구만 단출하니 살던 때, 여름이면 별식으로 할머니께서는 칼국수를 만드셨다. 그때의 칼국수는 지금처럼 쉽게 간단히 한 끼 때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특히나 별식인 국수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온 식구들이 다 알았다. 오늘 칼국수 할 거라는 것을 알면 동네로 놀러 나갔다가도 일찍 돌아왔다.  


할머니는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고 오래오래 치댔다. 그 후 반죽을 몇 덩이로 나눠 암반에 놓고 밀가루를 뿌려가며 홍두깨로 얇게 밀었다. 밀전병처럼 밀어진 반죽을 접어 잘 드는 칼로 고르게 썰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잔 심부름도 하고 할머니의 음식 이야기도 들어가며 난 썰어놓은 국수를 쟁반에 정성스레 손으로 살살 펼쳐서 풀어놓았다.

그 사이 마당에는 솥을 따로 걸고 물을 설설 끓였다. 끓는 물에 칼국수 면을 넣어 퍼지지 않게 잘 삶아 찬물에 씻어서 건진 후, 대접에 담고 채쳐서 볶은 애호박, 황백 지단 등을 얹어서 뜨거운 육수를 부어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이것은 그냥 국수를 해 먹는다고 했던 거 같다. 기계로 눌러 만든 면이 아니라 손으로 밀어 만든 밀국수. 이 삶아 건진 밀국수를 그냥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기도 했는데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차졌다. 더러는 그냥 멸치 육수에 썰어놓은 생면을 직접 넣고 달걀도 지단 대신 그냥 풀어 넣고 호박채나 채소를 넉넉하니 넣었는데 그것을 칼국수라고 불렀던 거 같다. 겨울에 팥을 걸러 만들면 팥 칼국수, 여름에 삶은 콩을 맷돌에 갈아 국물을 내면 콩국수가 되었다.


커다란 양푼에 막 퍼 담은 뜨거운 칼국수를 쟁반에 바쳐 저녁 먹기 전, 앞집 뒷집 또 그 골목 누구누구네 집에 돌리는 것은 나와 내 동생 몫이었다. 칼국수하는 날이면 마당에는 평상이나 덕석이 펴지고 커다란 두레상이 놓였다. 그런 날은 할아버지도 우리랑 함께 한 상에서 식사를 하셨다. 더러는 동네 분들을 불러 상을 따로 펼쳐놓고 대접했다.


저녁나절 분꽃이 채 피기도 전에 준비를 일찍 시작한 저녁은 다 먹고 치우고 나면 어스레한 초저녁이 되어 있었다. 긴긴 여름 해는 뉘엿뉘엿 석양 너머로 넘어가고,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 나면 그대로 평상에서 늦게 까지 놀아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말린 쑥을 얹어 모깃불을 피우곤 하셨는데 그런 날 동생과 나는 엄마랑 아주까리 잎으로 싸매서 열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기도 했다. 장꽝 주위엔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어나고 하늘엔 하얗게 은하수가 흘렀다. 할아버지가 걸쳐놓은 줄을 감고 박, 수세미 넝쿨이 위로 올랐는데 지붕 위에는 보름달을 닮은 박이 몇 덩이, 달보다 더 흰 박꽃이 뽀얗게 피어있곤 했다.  

동생과 둘이 누워서 고슬고슬한 삼베 홑이불을 덥고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도 듣고 별똥별도 보다가 살풋 잠이 들기가 일쑤였다. 밤이 깊어가면 이슬 내린다고 안으로 들어가 자라고 깨우거나 곤하면 그대로 나를 뽈깡 안고 들어갔는데 그때 안긴 품에서 느끼는 비몽사몽 간의 달콤한 안온함과 혼곤함이라니..... 크면서 다시는 맛보지 못하는 느낌이 되어버렸다.  


나도 내 아이들 어려서는 함께 쿠키 반죽도 해서 뭘 만들기도 하고 추석이면 온 가족이 둘러 않아 송편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서 언제부턴가 적당히 지내고 있다. 전처럼 쌀을 담그고 방앗간에 들러 쌀을 빻고 하는 일을 더 이상은 안 한다. 어머니는 연로하시고 집안 아이들은 다 자라서 송편은 잘 먹지도 않는다. 다들 바쁜 데다가 둘러앉아 뭔가를 함께 하며 즐길 짬이 없다.  엄마는 말씀은 안 하셔도 몹시 서운해하신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음식 장만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아시는데 이 시대는 그럴 여유도 낭만도 없이 자꾸만 바뀌어간다. 


밀가루 한 됫박도 귀하던 시절, 사람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려도 모두가 그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참여해서 즐겼던 넉넉한 그때가 새삼 그립다. 모든 게 편리하고 풍부한 지금 난 그 혜택으로 생긴 여분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그만큼 더 누리며 그만큼 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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