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마음에 남아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뭔가 나름의 의미가 있거나 느낌이 특별하다거나 후회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그중에 지금도 부끄러움이 생생하니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엿장수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다.
초등학교 일, 이학년 때나 되었을까, 제법 먼 길을 오가는 통학길에서였다. 아마도 무슨 특별한 연습이 있었거나 또는 당번이거나 했던지 혼자서 터덜터덜 걸어서 가던 늦은 하굣길이었다. 신작로를 벗어나 동네로 향하는 길목이 있는 작은 공터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여름날 늦은 오후였다. 다가가 보니 늘 고물을 가져가면 엿을 바꿔주던 낯익은 엿장수 아저씨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아저씨는 얼굴이 불콰하니 만취 상태였는데 제법 머리 큰 애들이랑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뭐라 이야기를 하면 머리 크고 되바라진 머슴애들이 옆에서 추임새도 넣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 그 아저씨는 애들에게 놀림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술을 먹은 아저씨가 불쌍하면서도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도 모르는 것이 바보 같아 밉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결혼해서 아이들이 고물고물 할 나이였을 것이다. 그때 생각해도 젊은 아저씨였다. 그런 아저씨가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바보처럼 굴고 있는 것이 잠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그 애들이 그러듯 무시해도 마땅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아저씨, 나 저 엿 먹어도 돼? 가져간다~."
그중 제일 큰 녀석이 아저씨랑 대거리하다가는 건들거리며 물었다. 숫제 반말이었다. 아저씨는 불콰한 얼굴로 윗옷도 다 풀어헤쳐진 채 히죽거리며 다 귀찮다는 듯이 연신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아예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았다. 옷은 여기저기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 녀석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리어카 위의 목판에서 큰 엿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모여 있던 아이들은 슬금슬금 그 큰 녀석 뒤를 이어 엿목판에서 엿가락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다투어 가져 갔는데 이내 목판은 거의가 비고 말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보던 나도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나가서 엿 한가락을 가져왔다.
그 며칠 후 그 엿장수 아저씨를 길가에서 다시 봤다. 성실하게 예전과 다름없이 리어카를 끌며 고물로 엿도 바꿔주고 엿을 팔기도 하며 커다란 가위를 쨍강거리기도 했다. 술로 흐트러졌을 때와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 난 그 아저씨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가슴이 뜨끔하고 지은 죄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왠지 그 아저씨 아이들이(당연히 여러 명의 어린아이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날 굶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날 들었던 엿 한가락의 무게가 나를 내내 짓눌렀다. 얼마나 그날 일을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어 외롭고 답답했다.
그 후로도 그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내 통학로를 오가며 열심히 엿장사를 했고 나는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날까 봐 심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런 탈 없이 평소대로 사는 그 아저씨의 모습에 한편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의 엿 값을 치를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 일은 두고두고 나를 가위눌리게 했다.
내가 엿 한가락을 가져가는 것이 상대의 어린아이들 식사 한 끼를 훔치는 것이고(왠지 그렇게 각인이 되었다) 양심을 파는 괴로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떼 지어한 일 이래도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지고 핑계 댈 수 없는 엄중한 일이라는 것도.
요즘도 가끔 생각나는 그 엿장수 아저씨의 엿 한가락 훔친 이야기를 수십 년이 넘어서야 꺼내어본다. 지금이라도 갚을 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참 더운 여름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