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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Jun 02.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08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아무한테도 연락 못할 정도로 깊은 밤혼자 어떤 생각까지 해봤는지에 대해서요.. !"



     

누우면 생각이 많아진다. 방구석 한켠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에서 뒤척거려본다. 몇 번의 뒤척임 후에 곧 지겨운 자기혐오의 늪에 빠진다. 여지껏 기회가 되면 그렇게 숱하게 떠들고 끄적거리던 자기연민 속에 또, 다시 빠진다. 



     

옆으로 고쳐 누우며 어제 꾼 꿈을 떠올린다. 네 꿈을 꿨다. 네가 나 아닌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너는 여전히 나를 그리워한다. 소름이 돋는다. 그런 꿈을 꾸어버린 내가 너무 싫다. 한 쪽 구석에 음흉하게 구겨져 깔깔거리고 있는 내가 연출가처럼 서 있다.      




다들 나를 평생 그리워하게 될 거야.      




나는, 사실은 그런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 버릴 만 하지. 내가 뭐라고.’ 그들이 버리고 간 나를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 후회하게 될 거야.’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번도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내가 감독한 꿈속에서 영화처럼 펼쳐낸다. 꿈에서 깨고 나면 그런 내가 치가 떨리게 창피하다. 아직도 초연해지지 못한 내가,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가.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꿈인지. 황망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를 살았다. 꿈은 까마득히 잊은 채. 고단한 하루의 끝에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오늘 아침 그 꿈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이불을 덮고 혐오와 방어를 반복한다. 치가 떨리게 싫다가도, 다시 그런 내가 불쌍하다. 늪에서 빠져나가야해. 충전기 케이블에 꽂아둔 핸드폰을 다시 건져 올려 기어코 SNS 앱을 켜고 친구들의 목록을 훑는다. 새벽 두시가 훌쩍 넘은 시간. 누군가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시간에 알림을 울리게 하는 일. 그치. 다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니까. 게다가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트위터를 켜고 혼잣말을 지웠다 썼다 문장을 완성해보지만, 결국 올리지 못하고 임시보관함 행이다. 영원히 이 세상에 활자화되긴 글러버린 마음.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      




안간힘을 쓰며 끙끙거리는 나.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나. 남의 말에 휘청거리는 나. 찐득찐득. 덜컥덜컥.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나. 좋은 말을 좋은 말로 듣지 못하는 상태의 나. 옳지 못한 말을 쏟아내는 나.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다시 정정하지 않고 지나쳐 버리고 마는 나. 지쳐서 멈춰있는 나. 내가 사랑해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거대한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마는 밤.      




아침에 말리고 빗느라 방 여기저기 흩어진 머리카락들과 함께, 채 다 털어내지 못한 세탁물의 먼지들과 함께. 잠들지 못하고 그런 긴 강에서 어둠을 향해 노를 저어간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자기애 충만한 걸크러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런척 묻어가는 게 아닐까.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을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재빨리 가면을 바꿔 쓴 건 아닐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더욱 더 극적으로 써나간다. 아주 쉽고, 아주 빠르고, 순식간에 밀도가 높아진다. 뭔지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그런 검고 무서운 것이 계속 나를 향해 매섭게 달려온다. 가위에 눌려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쉽게 잠들 수 없는 밤들은 많이 지새워보았다. 나도 내가 싫다고 나를 떠밀며 울고 만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내가 좋지 않다.                




다만, 예전보다 더 참는다. 나를 싫어하는 말과 마음을. 적어도 어두운 밤에 혼자 누워서 생각하려고 한다. 아침이 되면 바로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한다. 누워서 다시 이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잊고 살려 한다. 그만큼 나아지느라고 정말 많이 고민 하고, 적당히 떠들고, 조금의 글을 써왔다. 그러다 지쳐, 나에 대한 시선 자체를 거두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세상의 일을 생각한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캣맘들을 떠올리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휴일 없이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들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사람이 줄어든 해안가로 놀러온 돌고래도 떠올리고, 빈 맥도날드 지점을 점령한 양들도 생각한다. 내가 나를 싫어하느라 들인 에너지가 사소하게 느껴질 때까지.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은 그래도 가상하다. 입밖에 내지 못한 말을 꿈 속에서라도 하려고 원하는 장면을 찍고 있는 나도, 그렇게라도 푸니까 다행이다 싶다. 물론 다시 금세 싫어지지만. 그래도 이제는 오락가락 할 줄 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못하는 밤, 나는 나를 그래도 싫어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애를 쓰다 지쳐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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