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에그타르트요!
나는 너에게 작고 사소한 행복을 많이 배웠어.
팟캐스트에서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말들은 너한테 들은 이야기가 많아. 에그타르트가 그랬어. 나는 사실 에그타르트에 아무 감흥이 없었어. 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어디서 찾냐는 질문에 '에그타르트'라고 대답했지. 예전에 너와 함께 서촌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 앞을 지날 때 네가 말했어. 나는 사실 여기 타르트보다 KFC에서 파는 타르트를 더 좋아한다고. KFC에서 에그타르트를 파는 줄도 몰랐던 나는, 네 그 말에 ‘에그타르트’에 진심이 되었어. 나 역시 베이크 부분이 단단해서 포크로 힘을 줘야 겨우 조각낼 수 있는 에그타르트보다는, 한 입에 베어 물 수 있는 KFC의 페스추리 에그타르트를 좋아하게 되었지.
네 덕분에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책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책도 읽었어. 네가 같이 공연에 가자고 해서 알게 된 음악은 얼마나 많은지.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공연도, 본 이베어의 공연도 네 덕분에 가보았어. 하는 줄도 몰랐던 콜드플레이 공연도 네 티켓팅을 도와주다 함께 가게 되었었잖아. 잠실야구장 보도블럭에 털썩 주저 앉아 체력보충을 해야 한다며 햄버거랑 콜라를 먹고 주경기장으로 향했지. 네 덕분에 해 본 것이 참 많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에그타르트에도, 콜드플레이에도 무지한 사람이 되었겠지. 그런 고마운 선물들을 마치 내가 혼자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팟캐스트에서 무지막지하게 떠들어댈 때가 있어. 네가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녹음 후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늘 재밌게 들었다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먼저 얘기해주는 널보면 참 더 많이 부끄러워져.
같이 본 영화들은 말해 뭐할까.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대흥분해서 떠들며 겐로쿠 우동을 먹고, <우리도 사랑일까>가 재개봉할때는 포스터를 받으러 동대문에 있는 영화관까지 가고.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나선 영화관에서 대흥역까지 걸어오며 내내, 우리는 왜 좋은걸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걸까 결핍론을 펼치며 이게 다 부모탓이다 한탄을 하고- <최악의 하루>에서 여주인공이 걷던 남산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좋아하고.
음악이나 영화뿐일까. 너희 집에 놀러가면 네가 아침으로 늘 해주던 팬케이크. 가끔씩 초대해 요리해주던 가지볶음밥, 태국식커리. 제철 재료 들어간 파스타. 어느 겨울날엔 생강청을 직접 만들었다면서 내밀던 너. 네가 먹인 것들도 참 많아. 살림의 흔적이 남은 작은 유리병들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여행가서 사온 원두라며 커피가루를 소분해서 챙겨주던 모습도 잊히지 않아. 같이 사 먹은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지. 기타도 배웠어. 내 생일날 늘어진 티를 입고 권진원의 노래를 직접 기타치며 불러서 영상으로 보내주기도 했었지. 너는 내 첫 기타선생님이었어. F코드에서 멈춘 내 진도는 더 나가질 못했네.
밤을 새서 우리가 함께 나눈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혹시 다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 내가 ‘응답하라2012’ 같은 것을 찍을 수 있다면, 그 서사의 가장 큰 축은 아마 너일거야. 그 때 내가 관심 갖던 모든 것. 좋아하던 모든 것. 싫어하던 모든 것. 너와 이야기하며 어떤 것들은 흐려지고, 또 어떤 것들은 선명해졌어.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그 몇 년간, 나는 너를 통해서 세계를 열심히 확장시켰어. 만약 그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상당히 다른 사람이었겠지. 네가 없는 날들은 겪어보지 못했다해도 알 수 있어. 시시콜콜 무엇이든 너와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저번에 너희 집에서 자고, 네가 만들어준 샐러드와 팬케이크를 먹고 나오던 날. 여름 장마가 세차게 시작되었어. 정말 무기력하고 피곤했는데. 나랑 똑같이 떠들고 잔 네가 일어나 아침을 차려줬어. 샐러드와 팬케이크. 나의 허기를 달랜 너는 출근 채비를 금세 마쳤지. 현관을 나서더니, 문 앞에 재활용 박스를 씩씩하게 챙겼어. 예쁜 샌달을 신고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입은채, 한아름 종이박스를 들고서 엘레베이터를 내려 먼저가라고, 자기는 분리수거하고 출근하겠다고. 비는 쏟아지는데, 출근은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나도 먹이고, 분리수거도 하는 너를 보면서 나도 나의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장대비가 모질게 쏟아져 정류장까지 걷는 짧은 시간에도 신고 있던 러닝화가 다 젖었어. 평소같음 분명 짜증이 났을텐데. 자취방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돌아가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 그냥 너는, 너대로 사는데. 너대로 사는 모습에서 나는 늘 배워. 딱히 네가 나를 가르치려고도, 뭘 알려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난 항상 배웠어. 신기하지.
세상에 어떻게 너같은 사람이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새삼스럽다. 글씨도 예쁘게 쓰고, 일도 야물딱지게 잘하고, 아는 음악이나 책이나 영화는 언제나 나보다 훨씬 많고. 요리도 잘해. 네가 한가지 약한게 있다면 악력이 너무나 약해서 가위 없이 팩을 자르지 못하고, 잼이 든 유리병을 잘 열지 못하는 거 아닐까. 내 악력이 좀 쓸 만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말하면 너는 분명히 언니가 준것도 많다며 말을 늘어놓겠지. 난 또 그 말들을 하나도 믿지 않고 의심하며 들을거고. 아마 앞으로도 늘 그렇겠지? 늘 그러기를 바라.
7월 7일. 네 생일이다.
에그타르트를 들고 너를 찾아가야겠어. 앞으로도 네가 말하려고 했던 것들을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될거야. '역시는 역시다'가 절로 튀어나오는 명불허전인 오랜 친구가 될게. 늘 고마워.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