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꼬들꼬들한 김치라면'이다. 이 소박한 한끼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엄마는 아빠와 함께 일을 하셨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돌봄교실이 없었고 학원에 다니는 애들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가방만 던져놓고 곧장 놀이터로 향했다. 딱히 약속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늘 비슷한 시간에 놀이터에 있었다. 놀이터는 암묵적인 만남의 광장이었다.
놀다 배가 출출해지면 우리는 가게로 달려갔다. 가게 앞에 도착하면 모두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운이 좋아 돈이 모이면 과자 몇 봉지를 사서 나눠먹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우리의 간식은 달라졌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며 진화하듯이 가스렌지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가진 돈을 모아 '라면'을 샀서는 빈집으로 몰려갔다.
우리에게 레시피는 없었다. 냄비를 꺼내 어림짐작으로 물을 넣고는 김치 한줌 더했다. 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스프와 반으로 쪼갠 면을 넣어 휘적거렸다. 알싸한 김치와 맛있는 라면 냄새가 코끝에 닿으면 허기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우리는 면이 다 익기도 전에 가스렌지에서 냄비를 끌어내렸다. 둥근 상에 모여 앉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후르륵, 후르륵 소리가 울려퍼지고 가득했던 면이 자취를 춘다. 이어 하얀밥이 빨간 국물에 투하된다. 숟가락이 냄비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우리는 부른 배를 바닥에 깔고 느긋함을 즐겼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미션이 남아있었다. 바로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냄비와 그릇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라면 봉지를 흔적 없이 처리하고는 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밥통과 김치통이 혼자 먹었다기에는 너무 훅 줄어있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김치라면을 끓일 때는 늘 약간 덜 익힌다. 친구들과 먹던 꼬들꼬들한 맛에 길들여져있기 때문이다. 라면 냄새가 코끝에 닿으면 그때 기억이 뭉실뭉실 떠오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라면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들킬까봐 봉지를 숨긴다는 것이다. 물론 집안에 남아있는 냄새로 아이들에게 덜미를 잡히지만.
<김치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4가지 방법>
짤까봐 김치를 씻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그대로 넣고 스프양을 줄이는 것이 좋아요.
김치가 덜 익었다면 '식초'를 한스푼 넣어보세요! 김치의 신맛이 살아나고 면은 더 꼬들해져요.
배추김치가 없다면 깍두기, 총각김치, 파김치 등 다른 김치를 넣어보세요. 특히, 무 종류가 들어가면 국물이 더 시원해져요!
김치에 콩나물을 넣으면 국물에 시원한 맛이 더해져요. 여기에 계란을 깨서 얹으면 콩나물 국밥라면을 즐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