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계신 아빠와 함께 살게 됐다. 27살에 결혼을 해 출가(?)를 했으니 무려 14년이다. 올해 아이들을 봐주시던 시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까지'를 선언했지만 다행히 1년의 유예기간을 더 주신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해줬다. 아침에 스스로 준비해서 학교에 갔고, 학원 다녀온 뒤 내가 집에 올 때까지 둘이 잘 있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걱정이 컸나 보다. 엄마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봐주셨다.
가끔 볼 때는 몰랐는데 자주 보니 아빠의 허술한(?)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는 아빠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합가를 물어봤고 남편은 쏘쿨하게 같이 살자고 했다.
아빠가 들고 온 짐에는 곳곳에 엄마의 부재가 묻어있었다. 뒤죽박죽인 짐들 속 주름진 셔츠를 발견하고는 속상함이 밀려왔다. 평생 엄마의 케어를 받다가 혼자 살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아이들만 신경 쓰는 딸에게 서운한 기색을 하지 않지 않았다.
짐을 뒤져 꾸깃한 셔츠를 모조리 꺼냈다. 셔츠를 하나하나 탈탈 털고는 스팀을 뿜어대는 다리미를 갖다 댔다. 뜨거운 증기를 만나자 진하게 새겨져 있던 주름들이 쫙 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함에 쪼그라들었더 내 마음도 약간 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내가 딸과 데이트하는 걸세!
아빠를 돌보겠다고 함께 살자고 했지만 사실 내 마음이 더 편하다. 내 편이 집에 있다는 든든한 마음에서다. 아빠도 딸을 챙길 수 있음을 즐거워한다. 마흔 넘은 딸이라도 챙길게 많다고 하신다. 시간이 될 때면 춥다고 회사까지 태워다 주신다. 아빠 회사까지 30분 정도를 돌아가야 하지만 데려다줘서 좋으시단다. 며칠 전에는 집을 나서며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딸과 데이트하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