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보내는 할머니의 한 마디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니 그 날 입관해야 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보통 몇 분향실 어느 고인분이라고 종이에 적혀 있어야 하는데 그 날의 종이에는 안치 번호와 고인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은, 분향실을 마련하지 않고 입관만 한다는 뜻이었지요.
간혹 부고를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아 가족분들끼리 고인분을 모시고 싶거나 형편이 너무 어려워 분향실조차 마련하기 힘든 경우 가족분들과 상의한 후 입관식을 진행하기에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 생각을 하고 가족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거기... 아가씨... 우리 할배 입관 언제하는교? "
보풀이 잔뜩 일어난 갈색 니트에 두꺼운 검은 목도리를 턱 끝까지 둘둘 말아 메시고 찾아오신 할머니께서 물으셨습니다.
'아.. 할머니 혼자 오셨구나... '
할머니께 할아버지 입관을 어떻게 진행드리는지 설명을 드리고 난 후 할아버지를 입관실로 모셨습니다.
할아버지를 감싸고 있던 하얀 시트를 펼치니 우두두둑 떨어지는 오래된 하얀 각질들.
제때 깍지 못해 길게 자라나 버린 꼬불한 수염.
귀 밖으로 나온 노란 귀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목과 가슴에 뭉쳐져 있는 검은 때들...
깨끗한 솜과 알코올로 할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고 엉망으로 자라 버린 수염도 말끔하게 면도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수의를 입혀드린 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할머니를 입관실로 모셨습니다.
입관실에 들어오시자 말없이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할머니...
" 할머니, 할아버지 씻겨드리고 옷도 잘 입혀 드렸어요. 여기가 손이니까 한 번 잡아주시고.. 할아버지 좋은 곳으로 편히 가시라고 마지막 인사해주세요."
"................."
한참의 침묵.
할머니께서는 묵묵히 할아버지의 손과 가슴을 계속 쓰다듬으셨습니다.
" 할머니, 이제 할아버지 입관해도 될까요? "
" 그래주이소.... "
그렇게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니 그 전까지 슬픔도, 안타까움도 잘 표현하시지 않던 할머니께서 무언가를 꾸욱 눌러 담은 듯한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공부, 취업, 직장, 인간관계, 결혼, 가족, 돈, 사랑, 일.......
지금 현재의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 보다 나빠지지 않기 위해
지금 보다 좀 더 잘 살기 위해
지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에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쉴틈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나요?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그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무거운 짐들을 잠시 벗어던지고 가만히 쉬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힘겹게 애쓰지 않아도, 버겁게 노력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도 살아간다고 고생한 당신.
고된 하루를 잘 버텨낸 당신.
고생했고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