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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주도 이유식과 소아과와 오후의 햇살

7개월 26일

by 구의동 에밀리

(전편에 이어서…)


아기주도 이유식의 첫걸음이 원물 스틱인데.


그 원물 스틱의 대표 중 하나인 당근 스틱이 구토의 범인인 게 확실해 보였다. 이로써 아이는 총 세 번에 걸쳐서 당근 스틱을 토해냈다. 1시 반, 2시, 2시 반.


토사물을 닦아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줬다. 이대로 아이를 알집매트에 내려놓고 “좀 놀고 있어봐”라고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슬링에 태워주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집안 정리를 했다. 침대 패드의 토사물도 물티슈로 걷어서 기저귀 쓰레기통에 던져놓고, 게운 것이 잔뜩 묻은 옷도 애벌빨래 통에 넣어두었다.


그나저나 2시 반이라. 이제 조금 있으면 3시 수유 시간이었다. 아이는 요즘 7시, 11시, 3시, 7시, 이렇게 네 번에 걸쳐서 4시간 간격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먹은 것조차 오버이트가 되어서 게워내는 상황이니, 더 뭔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리는 없으려나? 그렇다면 4시간 수유텀이 왔다고 해서 배가 고프지는 않을 텐데.


아니면 반대로 이미 먹은 것을 다 토해냈으니 오히려 더 배가 고프려나? 직관적으로는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가정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한 번 왈칵 토를 했을 때, 자주 가는 소아과 선생님께 전화 드렸을 때도 그와 반대되는 말씀을 하셨다. “애들은 원래 가끔 토하고 그래. 일단은 1시간 정도는 뭐 먹이지 말고, 분유도 평소보다 절반만 줘 봐.”


아무튼 곧 있으면 3시라는 생각에, 다시 재우기가 참으로 애매하게 느껴졌다. 1시부터 시작해서 2시 반까지, 아이는 1시간 반에 걸쳐 세 번 깨어나며 30분씩 잠들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눈만 껌뻑거리면서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슬링에 태우고, 이래저래 고민하며 집안을 서성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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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염려는 아무래도 당근 조각이었다.


세 번의 구토 모두 당근 스틱이 나왔으니, 이제 당근 스틱은 용의자가 아니라 범인으로 확정이었다. 세 번이나 토했으니 이제 나올 것은 다 나왔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혹여 한두 개가 더 남아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의 직감은 ‘아마도 다 나왔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범인으로 당근 스틱을 지목했지만서도 알레르기 또한 아직도 용의선상에서 확실하게 지워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11시에 이유식으로 이것저것을 먹으면서 생긴 두드러기가 의외로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심지어 팔의 접힌 부위에는 마치 방금 모기 물린 자국처럼 좁쌀만한 크기의 동그란 것이 서너 개 올라와 있기도 했다. 다행히 입 주위에 시뻘겋게 올라왔던 것은 사라져 있었지만 말이다.


슬링에 아이를 매달고, 밥을 준비하지도, 더 재우지도 못한 채 고민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알고 보니 당근 스틱은 그냥 얻어 걸려서 나온 거고, 구토가 진짜 알레르기 때문이었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정말 가는 게 맞나? 전화만 하면 되나? 하지만 전화로는 내가 본 것을 구두로 설명 드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걸. 혹시 나는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이 상태를 딱 보면 아시는 어떤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닐까?


고민이 계속되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이럴 때는 고민거리를 붙잡고 있으면 시간만 지체될 뿐이었다. 병원에 가는 것의 장점과, 가기 어려운 단점을 하나하나 꼽아봤다. 병원에 가면, 아이의 상태를 전문의 선생님께 확인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구토에 대해서도, 지금이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인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반면에 단점이라면, 거리가 있었다. 매번 남편과 함께 차로만 이동했는데,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해보니, 의외로 소아과는 지금껏 유모차를 끌고 가장 멀리 갔던 동네 카페보다는 가까웠다. 두 번째 장벽은 유모차의 진입이 불가하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이 2층에 있는데다가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어쩌지? 뭐, 1층에 세워놓고 가방만 쏙 들고 올라가면 그만이지. 마지막 장애물은 수유텀이었다. 에이, 이거야말로, 지금 얘는 뭘 더 위장에 넣고 싶은 게 아니라 있는 것마저 게워내고 싶어하는 상황이니, 걱정할 게 아니었다.


혼자 되뇌듯, 아이에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오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의 건강수첩과 건강보험증을 추가로 챙겨서 집을 나섰다.


- - -


“어이쿠, 어떻게 오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지금껏 영유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말고는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무슨 큰일이 생겨서 오셨나 싶은 표정이셨다.


“네, 저희 루나가 토를 세 번이나 해서요. 1시 반, 2시, 2시 반, 이렇게요. 그리고 여기 알레르기 같은…….”


“……없는데요?”


“엥? 분명 빨갛게 오돌도톨 올라왔었는데……?”


희한하게도 아이의 증상은 다 가라앉아 있었다. 컴퓨터 고장나서 수리기사를 부르면 말짱하게 돌아가는, 그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된 건가? 의사 선생님께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씀하셨다.


“아마 바깥 기온이 시원해서 그랬을 거예요. 근데 옷을 왜 이렇게 입혔어?”


바깥 기온이 시원하기로서니, 최고 기온이 기본으로 20도는 훌쩍 넘는 날씨였다. 게다가 아이는 솜뭉치로 된 유모차 시트에 앉아서 다녔다. 유모차를 낑낑 밀면서 열심히 걷는 나만큼이나 아이 또한 더위를 타곤 했기에, 집에서 입는 7부 내복을 입혀서 온 참이었다. 심지어 나는 집에서 입고 있던 반팔에 핫팬츠 차림 그대로 왔는데도 땀이 나는 날이었다.


“더워해서요…….”


“애들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이렇게 얇게 입히면 안 돼. 그리고 엄마는 왜 이래?”


“밖에는 땀 나요, 선생님…….”


- - -


의사 선생님께는 당근 스틱이 토사물에 나온 것도 말씀드렸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다가 그랬다고 말이다.


“당근 삶은 것 같은 음식도, 9개월 넘고 돌쯤 되면 주기 시작해. 그 전에는 이도 지금 두 개밖에 안 나고 그래서 힘들어. 다 갈아서 줘야지.”


어랏……. 요즘에는 핑거푸드와 아기주도 이유식이 트렌드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시지가 않았다. 처음 아기를 데리고 방문했을 때, 본인도 손주가 있다고 하셨던 게 문득 떠올랐다.역시 노의사 선생님이셔서 옛날 방식대로 다 갈아서 주라고 하시는 걸까?


수유량 여쭤봤을 때도 체중에 몇 ml를 곱하면 계산할 수 있다고 하셨고, 총량도 1,000ml 넘지 않으면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또한 ‘아이가 원하는 만큼 먹이세요’라는 요즘 얘기랑은 결이 달랐었다. 역시 7부 내의도 그래서 지적하신 걸까? 옛날 분들은 애를 꽁꽁 싸매서 키우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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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는, 약 두 개만 처방 받고 병원을 나섰다.


“피부에 알레르기가 나서요”라고는 했지만 팔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배도 한 번 보셨다. 하지만 배에도 오돌도톨한 것은 없었고, 오히려 배의 피부가 거칠거칠한 것을 보시고는 호르몬제 연고 하나를 처방해주셨다. 알레르기 발진에 먹일 수 있는 약도 주셨다. 증상이 너무 심하면 일단 이 약을 먹여서 다소간 가라앉히고 병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어쨌든 아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진료가 끝났을 때는 오후 4시였다. 3시 수유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양해를 구하고 주사실에 들어가서 챙겨간 분유를 먹였다. 이유식은 생략하고, 막수 때 양만큼을 챙겨갔는데, 시원찮게 먹길래 한 30ml 정도 남기고 트림을 시켜줬다. 아이는 트림을 하면서 조로록 하고 조금 게워냈다. 역시 배가 고프지는 않았구나.


병원에 갈 때처럼, 아이는 유모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찡얼댔던 것은 오로지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시자, 아이는 “흐에에에에……!” 하면서 울려고 했고, 선생님께서는 “알았어, 안 볼게”라며 눈을 돌리셨다. 그 때를 제외하곤 아이는 줄곧 눈을 꿈뻑거리면서 세상 구경을 할 뿐이었다.


- - -


유모차에 탄 아이를 보며, 마트나 카페에 갈 때마다 아이가 엄청 순하다고 직원분들께서 이야기하셨던 게 떠올랐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순하다’라기 보다는 ‘합리적인 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본인 입장에서 납득이 가는 상황이라면 웬만해서는 그냥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예컨대 잘 가지고 놀고 있던 장난감을 가져간다든지, 아니면 더워 죽겠는데 긴팔 긴바지 차림으로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다든지 하면 울었다.


가끔은 한숨 한 번 푹 쉬고는 쪽쪽이를 빨며 유모차에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마치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알겠으니 참겠다’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때는 이 아이를 아기가 아니라 어른에 준해서 대우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유모차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오늘의 순순함은 오히려 내 마음 속의 어딘가를 연약하게 만들었다. 조용히 세상을 구경하는 만7개월 아기와 함께,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기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앞보기가 아니라 양대면으로 태우고 가고 있었기에, 석양을 내가 완전히 등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몸빵으로 그림자를 만들어서 아이 눈이 부시지 않게 해 주는 각도였다.


아이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구경했다. 오는 길에 우리는 평소에 가지 않았던 곳들을 많이 지나갔다. 커다란 화원 가게를 지날 때는 풀 냄새가 났다. 지상철이 지나다니는 곳에서는 마침 지하철이 지나고 있어서 아이에게 하늘 쪽을 보여주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두셋씩 짝지어 하교하는 모습도 구경했다.


아이가 아플까봐 걱정돼서 병원에 유모차 밀고 다녀온, 지금의 모습이 하나의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아마 이 장면은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대체 언제까지?)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Sebastian Davenport-Hand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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