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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의 가격은 4천 원

어느 휴직자의 이야기

by 구의동 에밀리

고민 끝에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기로 했다.


물론 커피라면 집에서 내려 마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카페에서 커피를 사오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따라 요가를 제대로 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보통은 아기 퍼즐 매트 위에서, 아무 트레이닝복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갈아입고 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가 매트부터 제대로 깔고 시작했다.


요가 앱에서 일러주는 대로 허리를 숙이고 있으니, 레깅스의 무늬에 눈길이 갔다. 포르투에서 여행 기념품 겸 구매한 제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방가르드(?)한 레깅스는 별로 없지……’


하지만 만약 국내에서 판다고 해도, 내가 과연 구매자가 될까? 아마도 ‘이런 걸 다 파네’라고 중얼거리며, 민무늬 단색 레깅스를 집어들었을 테지.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일상이라는 쳇바퀴를 허겁지겁 굴리다가, 갑자기 영 딴판인 세계에 똑 떨어져 버리는 일. 눈을 뜨고는 있되 무엇 하나 제대로 살피지 않으며 살다가, 문득 자신을 발견하는 일. 예를 들면 심미적 취향, 가치관, 꿈꾸는 생활 방식, 좋아하는 활동, 그리워지는 냄새, 자꾸만 찾게 되는 음식 같은 것들.


요가를 마치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리츠 카페라는 작은 가게였다. 말수 적은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탓에,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헉 제법 맛있잖아?’ 하게 되는 커피를 파는 곳.


‘아무리 1인출판을 하고 있다지만, 명백히 휴직자 신세인데. 돈도 안 버는 주제에 커피를 사 마셔도 될까?’


망설임을 꾹 누르고, 카페 문을 열었다. 잠시 후,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받아 든 손은 설레기까지 했다.


그렇구나. 오늘은 설렘을 단돈 4천 원에 살 수 있는 날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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