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아침 공기가 선선하다.
사람은 오감으로 기억을 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후각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을 우선 떠올렸기 때문에, 후각 같은 것으로도 기억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듣고 신기해 했다.
그런데 후각만큼이나 촉각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을 담는 것 같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다가도 가을만 되면 영국에서 살던 기억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국은, 특히 런던은 궂은 날씨로 악명이 높다. 허구헌 날 비가 온다. 그것도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대부분이다. 현지인들은 그런 비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맞고 다녔다. 그들이 우산을 쓰는 경우는 우박(!)이나 눈이 내릴 때 뿐이었다. 장대비가 내리면 당연히 우산 같은 것은 가방에 없었기 때문에 가게 천막 밑에서 다들 옹기종기 서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비를 그냥 맞고 다니는 영국인들이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비 맞으면 대머리 된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믿었다. 요즘에는 산업화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따라서 빗방울에는 온갖 산성 물질이 가득하기 때문에 맨머리에 맞으면 큰일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다 보니 남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우산을 들고 다니는 내가 별난 동양인처럼 여겨질까봐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방수가 되는 트렌치 코트도 사 입었고, 가방에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영국은 비가 늘 함께할 뿐만 아니라 공기도 대체로 선선했다. 한국이 여름의 강렬한 태양과 겨울의 혹한기 칼바람이 공존하는 매운맛 기후라면, 영국은 다 식은 식빵이나 비스킷 같은 나라였다. 그저 매일매일이 회색빛 하늘이고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였다.
그리고 그 서늘한 기운 속에 영국의 기억이 있었다.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는 '여행은 교환학생의 의무'라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나 영국은 유럽이니까 EU 국가들을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야 본전을 뽑는다는 게 교환학생들 사이에서 정설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역으로 '해외대학에서 한국으로 온 교환학생' 친구들을 종종 봤는데, 주말에 보통 뭘 하는지를 물어보니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시아 국가들을 많이 여행하려고 한다"면서 말이다.
막상 한국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비행기 값이 부담스러워서 (그 때는 2010년대 초였기에 저가항공도 지금처럼 많이 없었다) 그렇게나 자주 아시아 국가를 여행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럽이나 미국에서 아시아를 왔다갔다 할 바에야 한국을 거점으로 삼아서 여기저기 다니다 가겠다는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아시아도 돌아다니는데, 유럽에서 저가항공과 기차를 활용하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겠다는 생각은 다행히 지금 돌이켜봐도 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 때 내가 스스로를 돈 없는 학생이라며 여행도 안 다니고 심지어 교환학생도 안 갔더라면, 직장인이 된 다음에야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게 분명하다.
나와 같은 시기에 런던의 'SOAS'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간 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나까지 10명이 조금 넘었다 (16명이었던가?). 한국에서 미리 연락처를 교환하고 여행 팀을 짜기도 했는데, 나는 나를 포함해서 4명 짜리 팀을 만들었다.
기숙사는 학기에 맞춰서 입소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우리는 며칠간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여행을 준비했다. 그 때가 9월 초 쯤이었으니 한국은 아직 여름이 가시지 않은 날씨였겠지만 런던은 벌써부터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세면도구를 챙겨 게스트하우스 공용 욕실에 들어서면 조금은 한기가 느껴져서 샤워기 물을 바로 맞기가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묵었던 곳은 무려 16인실이었기 때문에 그런 자질구레한 일까지 신경을 쓰기란 사치에 가까웠으므로 얌전히 샤워를 했다.
런던의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위쪽으로 올라가며 영국 3국 투어를 시작하면서는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이 더 으슬으슬하게 느껴졌다. 위도에 따른 기후 변화를 책으로는 배웠지만, 이렇듯 몸소 체험하고 나니 비로소 그게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깨달았다.
하루는 더블린에서 벨파스트로 북쪽을 향해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녁 7시 반인가 했는데, 벌써부터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너무 추워서 버스 온도계를 흘끗 보니 10도인지 14도인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몹시 춥게 느껴져서, 더블린에서 기념품으로 산 캐시미어 목도리(그 동네는 캐시미어가 특산품이라고 한다)를 목부터 정수리까지 둘둘 둘렀다.
그런 추운 날이었는데도 어느 집에서는 부모님이 안 계신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집 앞 마당도 들락거리고 하면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나는 목도리는 물론이고 장갑까지 낀 차림이었는데 그들은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로 잔을 들고 왔다갔다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추위 따위는 낭만적인 삶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을 줄 수 없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듯 해서, 혼자서 무척 인상 깊어하며 캐리어를 돌돌 끌고 갔다.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일찍 떠졌다. 이층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보니, 6인실에서 나만 깨어 있었다. 나를 제외한 동행 3명은 물론이고, 같은 호실에 랜덤으로 배치된 모르는 커플 2명도 아직 잠들어 있었다. 창문으로는 추운 공기가 스멀스멀 들어오고 있었고, 창 아래 놓인 라디에이터는 딱히 쓸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층침대 계단을 내려가서 혼자 창 밖을 바라봤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낮은 지붕들을 비추고 있었다. 높이 솟은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 숲에 익숙해 있던 내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가까워지던 때가 떠올랐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하나같이 테마파크의 인공적인 건축물들 같아서, '에이 어디까지 이렇게 꾸며놓았으려고?' 하는 순진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매일 보는 집들이 이런 모습이겠지. 그런 삶은 또 어떤 삶일까 궁금해졌다.
같은 날 오전에 우리는 9시 반에 시작하는 버스 투어가 있었다.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는 길도 여전히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돌로 된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소리가 또렷이 남을 정도로 고요했던 도시의 아침도 그 서늘한 감촉 안에 깃들어 있었다.
그 후 런던으로 돌아와서도 선선한 공기는 아침마다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길에 스쳤던 바람 속에도, 어느 주말 아침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청설모를 구경하던 기억 속에도, 촉감은 추억으로 새겨져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