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 부국강병 일통천하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1-4

by 기픈옹달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였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였다.”
<관안열전>


사마천(司馬遷 BCE145?~BCE86)은 고대사를 정리하면서 다섯 명의 성인을 소개한다. 까마득한 옛날 은나라 이전에 다섯 명의 성인이 있어 문명의 씨앗을 틔웠단다. 이 다섯을 묶어 오제五帝라 부른다. 황제黃帝, 전욱, 제곡, 요, 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오제본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종종 사마천이 꼽은 다섯과 다른 인물을 꼽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어째서 다섯일까? 사마천이 꼽은 다섯이 문제라면 이를 줄이거나 늘리면 될 일이다. 예를 들어 사제四帝나 육제六帝는 어떤가? 그러나 그런 경우는 없다. 다섯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인들은 특정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다섯은 전체를 포괄하는 숫자였다. 중국 철학의 주요 개념 가운데 하나인 오행五行을 떠올리면 쉽다. 하필이면 왜 다섯이었을까? 하늘의 주요 별이 다섯이어서? 아니면 손가락이 다섯이기 때문일까? 여튼 숫자 다섯이 중요하는 사실을 기억하자. 고대인들은 다섯을 채워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는 점도 함께. 춘추시대에도 다섯 명의 주요 제후들이 있다. 이들을 묶어 춘추오패春秋五霸라 부른다. 패자覇者, 춘추시대를 호령한 다섯 명의 제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제와 마찬가지로 누구를 꼽아야 하는지는 정설이 없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꼽는 인물은 제나라 환공桓公이다. 많은 사람이 꼽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환공보다는 그를 보필한 관중이 더 유명하다. 관중은 본디 제환공을 섬기던 인물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제환공이 제나라의 군주가 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훗날 제환공이 되는 공자公子 소백小白은 공자 규糾와 제나라 군주 자리를 두고 다투었다. 관중은 공자 규를 섬기며 공자 소백을 암살하려 하기도 했다. 관중의 계책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백이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이때 공자 규를 섬겼던 인물은 대부분 잡히고 목숨을 잃는다. 관중 역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 이때 관중을 구해준 것이 바로 그의 어릴 적 친구 포숙아였다. 포숙아는 제환공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천하를 도모하려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는 사자성어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보통 이를 친한 친구 관계라고 풀이하는데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읽어보면 좀 다르다. 어려서부터 관중은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는데 그때마다 포숙아는 관중 편을 들어주었단다. 함께 장사를 하더라도 관중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 관중의 형편을 알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관중은 이렇게 말한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였지만 제대로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였다."


공자 역시 <논어> 마지막 문장에서 알아줌(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자에게는 포숙아 같은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논어>에서 공자는 여러 차례 이렇게 말한다. "人不知而不慍 : 설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맘 상하지 말거라." 공자의 말에 이렇게 항변하는 제자도 있었다. 선생님께는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공자 주변에는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그를 거쳐한 제자가 삼천이란다. 그 많은 제자도 공자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었다.


공자의 외로움은 시대의 변화 때문이었다. 관포지교의 고사는 전통적인 규범보다 실제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환공이 너그러웠기에 관중을 받아준 것이 아니었다. 능력만 있다면 능력이 있다면 적도 언제든 내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관중의 이야기는 한 인물의 재능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다. 관중 덕택에 제환공은 천하를 호령하였으나 관중이 죽고 세상을 떠나자 제환공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아들들이 자리를 두고 다투는 바람에 한동안 제환공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역사는 그의 시체에 쓴 구더기가 문간을 넘어올 정도였다고 전한다.


제환공과 관중의 사건은 이웃 나라 제후들에게도 적잖은 인상을 남겼다. 누구든 제환공처럼 위세를 떨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관중과 같은 인물만 있다면. 각 나라는 이웃나라보다 더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되기에 혈안이었다. 제후국들은 이른바 부국강병富國強兵의 목표 아래 저마다 인재를 모시기에 혈안이었다. 맹자(孟子 BCE372~BCE289)도 이런 뜨거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공자의 후예를 자처하며 공자처럼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맹자>는 양혜왕과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양혜왕이 맹자를 맞아들이며 앞으로 나라에 이익(利)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맹자는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한다. “何必曰利 : 어찌 꼭 그렇게 이익만을 말합니까!” 첫 만남부터 맹자의 호통을 들었다. 양혜왕은 꽤 머쓱했을 것이다. 나라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무엇하러 맹자 같은 인물을 융숭히 대접하며 맞이했을까.


양혜왕梁惠王은 인재와 책략에 목마른 인물이었다.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양梁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는 위혜왕魏惠王이 되어야 한다. 헌데 어째서 <맹자>는 그를 양혜왕으로 기록하는 걸까? 이는 그가 이웃 나라의 침입을 받아 수도를 대량大梁, 지금의 카이펑開封으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의 침입을 받아 나라 꼴이 영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손빈은 제齊나라의 군대를 끌고 쳐들어 왔고, 상앙은 진秦나라의 군대를 끌고 쳐들어 왔다. 손빈은 이름난 병법兵法가였으며 상앙은 변법變法, 법을 통한 개혁으로 진나라의 부강을 도모한 인물이었다. 혜왕은 이들과 같은 인재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 맹자를 만났건만 맹자는 이익에 대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인의仁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공자가 인仁이라는 표현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탐구했다면, 맹자는 인의仁義라는 표현을 통해 규범적인 도덕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맹자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공자의 작업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래서 공자에게 인仁이 추상적이며 이상적인 가치였다면, 맹자에게 인仁은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가치가 된다. 공자는 인을 추구하라고 말했지만, 맹자는 인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공자와 비교할 때 맹자는 더욱 보수적이다. 예를 들어 관중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 둘은 크게 엇갈린다.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오랑캐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라며 관중의 역할을 긍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자는 가차 없다. 관중을 시정잡배처럼 여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효孝에 대한 관점에서도 이 둘은 서로 다르다. 공자는 부모의 마음을 유추해 보라는 식으로 효에 대해 이야기했다. 맹자는 순임금의 고사를 빌려 설사 부모가 자신을 죽이고 해치려는 마음을 품어도 원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맹자에 이르러 효孝는 죽어서라도 지켜야 하는 가치가 된다.


이런 차이는 시대의 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시대에는 그래도 주나라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맹자의 시대에는 그런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천하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맹자는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定於一 : 통일되겠지요" 그러나 그 통일 국가가 주나라일 가능성은 없었다. 주나라는 이제 허수아비나 다름없고, 새로운 통일 왕조가 등장할 차례였다.


그렇기에 제후들은 저마다 제 나라의 부강을 꿈꾸었다. 부국강병富國強兵의 목표는 일통천하一統天下, 천하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호칭도 바뀐다. 본디 주나라 임금만 왕王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너도나도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관중은 제환공을 섬겼지만 맹자는 제선왕을 만난다. 제나라의 임금의 호칭이 공公에서 왕王으로 변화했다는 점은, 제나라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주나라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맹자>는 새로운 천하의 통치자가 갖춰야 할 이상적인 덕목에 대해 세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논어>는 군자라는 표현을 빌어 통치계층을 폭넓게 이야기한다. <논어>에서 이야기하는 군자는 당시 제후들을 가리키기도 했으나, 그들 아래에서 관직을 얻을 제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했다. 혹은 설사 관직을 얻지 못하더라도 군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자는 성왕聖王의 이상을 이야기한다. 맹자가 만나고 싶은 것은 한 나라의 지배자이자 장차 천하의 통치자가 될만한 재목이었다. 과연 누가 천하를 통일할 것인가? 맹자는 여기에 큰 관심이 있었다. 맹자는 그들의 교사가 되고자 했다. 그렇기에 <맹자>에는 더욱 도덕규범적인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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