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르고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1-5

by 기픈옹달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붕鵬은 커서 도무지 크기를 알 수 없더래. 기운을 떨쳐 날아가는데 날개는 마치 하늘의 구름 같아. 바다를 출렁이며 저 아득한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하늘의 못(天池)까지 간데.
<소요유>, 장자


‘유가儒家의 계보는 맹자를 공자 다음에 놓는다. 그러나 이는 후대의 해석이 개입한 결과이다. 맹자는 공자의 계승자로 자처했으나, 정작 공자가 맹자를 보았다면 어떻게 여겼을까 의문이다. 짐작 건데 공자는 이 야심 넘치는 인물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자는 야심 찬 제자를 그리 기껍게 여기지 않았다.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안회顏回였는데, 그는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안회는 가난했지만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


양혜왕은 맹자 이외에도 여러 인물을 끌어 모았다. 그의 궁정은 여러 인물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공간이었다. 양혜왕을 섬긴 인물 가운데는 혜시惠施라는 인물도 있었다. 그의 행적이 크게 남아 있지는 않으나 그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은 훌륭한 친구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장주莊周, 훗날 장자莊子라 불리는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후대에 끼친 영향에 비하면 장자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출생지도, 생몰연대도 불분명하다. 다만 사마천의 기록을 참고하면 한때 낮은 관직에 있었으며, 뛰어난 재능으로 재상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단칼에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금 보화를 제안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만족했다. 마치 공자의 제자 안회처럼.


앞선 <논어>나 <맹자>와 달리 <장자>는 장자의 말을 그리 많이 기록하고 있지 않다. <논어>는 자왈子曰, <맹자>는 맹자왈孟子曰로 시작하며, 각각 공자와 맹자의 말을 기록한다. 그러나 <장자>에서는 장자왈莊子曰이라는 표현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은 이야기, 그것도 지어낸 이야기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이를 흔히 '우화寓話'라 하는데 <장자>의 우화적 형식은 조금 조심스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우화를 '교훈적 이야기'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장자는 교훈을 전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특정한 인물, 사물, 동물을 빌려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우화란 빗댄 이야기일 뿐이다.


<장자>에는 수많은 존재가 등장한다. 인물도 많고 사람이 아닌 것도 많다. 그중에 공자와 안회가 있다. 제법 여러 차례 등장하며 핵심적인 가치를 전하기도 한다. 때로는 공자의 입으로, 때로는 안회의 입으로. 따라서 일부 연구자들은 공자와 장자의 연관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이 둘을 대립적으로 보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사마천의 기록 때문이다. 사마천은 장자가 유가儒家를 공격하며 비판했다고 전한다. 후대의 습관적인 인식,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라는 학파의 대립으로 이해하면 이 둘의 사이는 더욱 멀어진다.


공자가 천하를 돌며 기회를 찾았듯, 맹자가 여러 임금을 만나며 자신의 이상을 설파했듯, 당대에는 세상을 떠돌며 자신의 재능을 내세운 자들이 많았다. 이를 유세객遊說客이라 하는데, 이들은 천하를 돌아다니고(遊) 자신의 학설을 전하며(說) 자신의 주인이 될만한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客) 이들은 때로 일관된 정치적, 철학적 사유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자신의 학설을 대표할만한 인물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학설과 여러 철학자가 교차하는 시대였다. 이를 간결하게 줄이면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할 수 있다. 훗날 사마천의 아버지는 이를 총 여섯 개의 학파로 나누었다. 유가,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대에는 그러한 명확한 구분이 있을 리 없었다. 도리어 무엇이라 딱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재주꾼들도 여럿 있었다. 맹상군의 고사는 이를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 맹상군은 제나라의 실력자로 그의 곁에도 수많은 인물이 몰려들었다. 그는 진나라 왕의 초청을 받아 진나라를 방문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해하려는 진나라의 계책임을 알고 도망치려 한다. 이때 도둑질을 익힌 식객食客의 재주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개처럼 몰래 숨어 들어가 훔쳐온 재물로 손을 써 진나라 궁궐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궁을 나왔지만 관문을 넘어가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는 닭 울음소리를 내는 재주꾼이 있었다. 그가 닭울음소리를 내자 아침인 줄 알고 관문이 열렸다나 뭐라나. 이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는 정말 다양한 인간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자도 크게 보아 이런 인물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는 자신의 재주가 어떻게 쓰일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바람에 그의 친구 혜시는 자주 그를 타박하곤 했다. 그런 헛된 이야기를 지어 무엇하느냐고. 그러나 장자는 '쓸모없는 것이야 말로 쓸모가 있다'는 해괴한 주장을 내놓으며 혜시의 비판을 꺾는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란 무엇인가?


저마다 부국강병을 앞세우며 천하통일의 꿈을 꾸는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승자는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맹자는 그 잠재적인 승자에게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심어주고자 했으며, 한편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숭상해야 천하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이상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장자의 관심은 영 다른 데 있다. 이러한 극심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는 이들에 장자의 관심이 있다. 다양한 신체적 불구자, 범죄자, 낮은 신분의 가난한 이들이 <장자>에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자는 그런 시대적 가치에 도무지 편승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장자>를 펼치며 나오는 곤과 붕의 이야기는 그가 영 딴 데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득한 북쪽 바다에는 크기를 알 수 없는 물고기가 있단다. 그 이름이 곤인데, 그 곤이 기운을 떨쳐 하늘을 솟구치면 이 곤이 커다란 새로 변한다. 도무지 크기를 잴 수 없는 이 커다란 새는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 올라 하늘을 가로지르며 아득한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맹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천하를 다스리는 인물은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를 이렇게 바꾸어도 좋다.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가? 장자에게는 이런 질문이 아무 의미가 없다. 천하의 향방이 어떻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는 게 그의 태도다. 맹자는 이런 장자와 같은 사람을 두고 천하보다 제 한 몸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손가락질했을 테지만, 장자는 거꾸로 항변할 테다. 도대체 천하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장자가 후대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개인의 생명 유지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개체의 생명을 중시했으나 또한 천하보다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장자가 말하는 바다란 이 땅이 끝나는, 바로 천하 바깥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곳은 알 수 없는 기이한 것들이 존재하는 신비한 세계이다. 여기서 기존의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길어 올리는 것이 장자의 작업이었다. 그가 특유의 부정의 방법을 통해 논의를 전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 말하는 자는 제대로 알지 못하며, 제대로 아는 것은 말로 옮길 수 없다.'


시대와 불화했다는 점에서 장자와 공자의 거리가 가깝지만, 언어를 두고는 이 둘의 거리를 도무지 좁힐 수 없어 보인다. 공자는 말을 알아야만 한다 했지만, 장자는 말의 무용성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장자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존의 언어규범으로 다룰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이를 한 글자로 옮기면 도道라 할 수 있다.


장자가 이런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출신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느 나라 출신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일부 연구자는 그가 소국 출신으로 전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없었음을 꿰뚫어 보았고, 또한 적잖은 사람들이 비참한 결말을 맺으리라 짐작했다. 공자가 자신이 당면한 현실에 관심을 두었다면 맹자는 그보다 고개를 더 높이 들어 통치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자 했다. 장자는 공자보다 더 낮게 생명과 일상의 문제로 파고들었고, 맹자보다 더 높게 천하 바깥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후대에 장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방외인方外人, 즉 세속에 초탈한 사람이라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장자는 세속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자 했으나,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매우 현세적이며 매우 공상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모순성이 <장자>로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게끔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또한 도道라고 하는 독특한 개념의 이중성도 여기서 연유한다. 도는 바로 곁에 있는 것이되, 까마득히 먼 것이기도 하다. 일상성과 초월성, 이 모순을 한데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도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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