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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 끝나지 않은 전쟁

by 손정수

2025년 10월 28일 새벽 5시, 리우데자네이루 북부 지역에 위치한 Favela Morro do Alemao에 2천 500명의 경찰이 급습하여 붉은사령부라고 알려진 Comando Vermolho 범죄집단과의 총격적인 벌어졌다. 총 8시간에 걸친 교전이 끝났을 때, 거리에는 130구가 넘는 시신이 널려 있었다.


양측은 자동소총은 물론, 드론을 이용하여 경찰에게 폭탄을 투여 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아침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출근길에 총격을 피하는 시민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며 모두 경악했고 피비린내가 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지금도 연일 이번 작전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범죄와의 전쟁 서두라며 환호하는 사람과 선량한 시민들이 경찰의 학살을 당한 것이라는 등 평가가 크게 나눠져 있다.


지금 여기서 누가 맞고 틀리고 말할 자격은 없이나, 내가 그동안 살면서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을 경험으로 나눠 쓰려고 한다.



이 폭력의 진원지는 파벨라(favela)다. 산비탈과 도심 곳곳에 무허가로 들어선 이 빈민촌들은 단순한 '가난한 동네'가 아니다. 브라질 국가가 사실상 통치권을 포기한, 범죄조직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영토다. 참고로 파벨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2018년도에 쓴 글이 있으니 읽기를 권장한다.

https://brunch.co.kr/@joaobrazil/169


파벨라는 전국 어디에든 있다. 상파울로를 비롯해 리우데자네이루 대도시는 1950~6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었고 사람들은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고, 거대한 미로 같은 곳이 되었다.


현재 리우에만 800개가 넘는 파벨라가 있으며, 약 150만 명이 살고 있다. 가장 큰 파벨라인 호시냐(Rocinha)에는 7만 명이 넘는 주민이 빽빽이 모여 산다. 골목길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전기와 상하수도는 불법으로 끌어다 쓴다. 공공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쓰레기 수거도, 소방서도, 경찰서도 없다.



붉은사령단(CV)의 탄생


1964년부터 1985년까지 브라질은 군사독재 시대였다. 군부정권은 정치범들을 일반 범죄자들과 같은 감옥에 가뒀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섬에 위치한 칸디두 멘데스(Cândido Mendes) 최고보안 교도소, 일명 일랴 그란지(Ilha Grande) 교도소에서 기묘한 결합이 일어났다.


극심한 수감 환경 속에서 정치범과 범죄자들은 생존을 위해 손을 잡았다. 1970년대 초, 그들은 처음에 팔랑제 베르멜랴(Falange Vermelha, 붉은 팔랑스)라는 이름의 자위조직을 만들었다. 좌파 게릴라들의 조직 원리와 이념이 범죄자들의 네트워크와 결합했다. 수감자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탈옥 자금을 모으며, 열악한 감옥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했다.


1979년, 교도소 당국이 이 조직을 '코만두 베르멜류(Comando Vermelho, 붉은사령단)'라고 명명했다. 수감자들은 오히려 이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1980년대 들어 출소자들이 늘어나면서 붉은사령단은 감옥 밖으로 확장됐다. 처음에는 은행 강도와 보석점 털이로 시작했지만, 곧 코카인 거래의 폭발적 성장기와 맞물렸다.


콜롬비아 카르텔과 연결되면서 붉은사령단은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마약 유통망을 구축했다. 1985년 말까지 리우 파벨라 마약 거래의 70%를 장악했다. 붉은사령단은 국가가 방치한 파벨라에 '병행 국가'를 세웠다. 마약을 팔고, 일자리를 주고, 분쟁을 중재하며 사실상 통치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좌파 이념은 점차 사라지고, 순수한 범죄조직으로 변모했다.


1980년대 중반, 붉은사령단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급속히 성장하는 마약 시장을 둘러싼 갈등과 수익 분배 문제, 그리고 젊은 세대의 불안정한 리더십이 조직을 흔들었다. 일부 야심찬 간부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테르세이루 코만두(Terceiro Comando, 제3사령단)'를 결성했다. 이들은 보다 사업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마약 거래를 운영하고자 했다.


1990년대 내내 붉은사령단과 제3사령단은 리우의 양대 범죄조직으로 군림하며 파벨라 영토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1990년대 후반, 새로운 조직 '아미구스 두스 아미구스(Amigos dos Amigos, 친구들의 친구들)'가 등장했다. 붉은사령단에서 쫓겨난 멤버들이 세운 이 조직은 제3사령단과 동맹을 맺고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2002년, 제3사령단 내부에서 또 다른 분열이 일어났다. 마레(Maré) 파벨라 단지를 장악한 보스 '파껑(Facão)'이 아미구스 두스 아미구스와의 동맹에 반발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조직 이름을 '테르세이루 코만두 푸루(Terceiro Comando Puro, 순수 제3사령단, TCP)'로 바꿨다.


2009년, 붉은사령단은 아미구스 두스 아미구스의 공동 창립자 셀시뉴 다 빌라 빈템의 도움을 받아 수감 중이던 제3사령단 리더들을 대거 암살했다. 제3사령단은 사실상 붕괴했고, 순수 제3사령단이 그 잔당을 흡수했다. 현재 리우에서는 붉은사령단, 순수 제3사령단, 아미구스 두스 아미구스가 끊임없이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상파울루의 거인: PCC


1993년, 상파울루의 타우바테(Taubaté) 교도소에서 또 다른 거대 조직이 탄생했다. '프리메이루 코만두 다 카피타우(Primeiro Comando da Capital, 수도 제1사령단, PCC)'는 붉은사령단을 모델로 삼았지만, 훨씬 더 체계적이고 기업적인 구조를 갖췄다.


PCC는 전국의 교도소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곧 브라질 최대의 범죄조직이 되었다. 현재 약 30만 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코카인을 유럽으로 밀수출하는 국제 범죄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2016년까지 붉은사령단과 PCC는 20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파라과이, 볼리비아, 콜롬비아 국경의 마약 거래로를 둘러싼 갈등으로 동맹은 깨졌다. 이후 브라질 교도소에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며 수백 명이 사망했다.


2006년 5월에는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자 또한 자신들에 대한 공권력에 항의하기 위해 상파울로의 모든 상업 문을 닫도록 협박하였고 공공치안에 일하는 경찰, 교직원, 소방대원 등을 무차별로 급습하여 총 500명이 사망하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파벨라의 일상: 생존의 전장


파벨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처절하다. 한 집에 10명이 살면서 공동화장실 하나를 이웃 세 가족과 나눠 쓴다.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 큰 물통에 물을 받아두고 아껴 쓴다. 벽은 얇은 벽돌 한 겹이라 옆집 대화가 다 들린다. 그 벽을 총알이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밤 10시가 넘으면 거리는 조용해진다. 하지만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총성이 터지면 모두 바닥에 엎드린다. 아이들은 총소리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몸을 낮춘다. "총"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린다. 조직원들은 높은 곳에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한다. 경찰의 접근을 빨리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주민을 내쫓고 점거한다. 거부하면 다음 날 그 집 식구가 행방불명된다.


12~13세 소년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골목을 지킨다. '올례이루(olheiro, 감시자)'라 불리는 이들은 조직의 가장 밑바닥이다. 경찰이나 적대 조직이 오는지 망을 본다. 시급은 하루 50헤알(약 1만 원). 맥도날드 알바비보다 많다. 이들 중 절반은 20세를 넘기지 못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25세쯤 되면 '대장'이 된다.


그렇다면 경찰은 뭘 했나? 솔직히 말해, 별로 한 게 없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리우 군사경찰(PM)이 쓰는 권총과 소총은 1980년대 모델이다. 반면 범죄조직은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국경을 통해 최신 군용 소총, 수류탄, 심지어 대전차로켓까지 밀수입한다. 이번 작전에서 압수된 무기 중에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페루, 심지어 브라질군 제식 무기도 있었다. 화력에서 압도당한다.


더 큰 문제는 부패다. 경찰 내부에 조직의 스파이가 있다. 작전 정보는 24시간 내에 새어나간다. 경찰이 파벨라에 진입하기 전, 조직원들은 이미 무기를 숨기고 산으로 도망간다. 경찰은 빈집만 뒤진다. 설령 체포에 성공해도 소용없다. 교도소는 이미 조직이 장악했다. 안에서 여전히 명령을 내리고, 마약을 거래하고, 살인을 지시한다.


교도소장보다 조직 두목이 더 큰 권력을 가진다. 붉은사령단의 권력 구조는 실제로 수감된 고위 간부들이 밖의 파벨라 보스들(donos)에게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경찰은 점점 과격해졌다. 체포보다는 사살이 늘었다. 2024년 한 해 동안 리우 경찰이 쏴 죽인 사람은 약 700명이다. 하루 평균 2명꼴이다.


참고로 지긋지긋한 치안불안을 해소하고자 군대를 동원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8년도에 쓴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runch.co.kr/@joaobrazil/209


이번 작전은 달랐다. 리우 시정부는 2,5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군사경찰, 민간경찰, 연방경찰, BOPE(특수작전대), 심지어 브라질 국가정보국(ABIN) 요원까지 참여했다. 헬기 12대, 장갑차 30대, 드론 감시망이 동원되었다.


표적은 펜냐(Penha) 파벨라 단지와 알레망(Alemão) 파벨라 단지였다. 이곳은 리우 북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대규모 빈민촌으로, 붉은사령단의 심장부였다. 알레망은 특히 붉은사령단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었다. 전국 각지의 도피 범죄자 약 300여 명이 '보호비'를 내고 숨어 지내던 곳이었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48시간 전까지 실제 표적을 비밀로 했다. 작전명은 '오페라상 콘텐상(Operação Contenção, 봉쇄작전)'이었다. 작전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헬기가 먼저 골목 입구를 봉쇄했고, 장갑차가 좁은 골목으로 밀고 들어갔다. 조직원들은 저항했다. 8시간 동안 총성이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조직원들을 숲이 우거진 산비탈로 몰아넣은 뒤, 매복해 있던 특수부대가 일제 사격을 가했다.


오후 1시, 총성이 멈췄다. 결과는 범죄조직원 121~132명 사살(정부 발표 121명, 공공변호인 집계 132명), 경찰관 4명 순직(BOPE 2명, 민간경찰 2명), 12명 부상, 113명 체포, 마약 1톤 압수, 소총 93정 압수했다. 다음 날 아침, 주민들이 인근 숲에서 최소 70구의 시신을 더 발견했다. 그중에는 머리가 잘린 19세 청년도 있었다.


언론에 공개된 현장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아스팔트 위에 줄지어 놓인 시신들. 피로 얼룩진 티셔츠, 찢어진 군복, 방탄복 차림의 시체들이 마치 전시품처럼 늘어서 있었다. 일부 시신은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사망자 중에는 '페넬로피(Penélope)', 일명 '자피냐 두 CV(CV의 일본인)', '범죄의 뮤즈'로 불리던 여성 조직원도 있었다. 그녀는 소총에 얼굴을 맞고 사망했다. 붉은사령단 내에서 신임받는 전투원이었다고 한다.


여론은 두 갈래로 쪼개졌다. 작전 다음 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리우 파벨라 주민의 87.6%가 작전을 지지했다. 지지자는 "드디어 도시가 숨통이 트였다. 이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수 있다. 경찰에게 감사한다." 하고 비판측은 측: "이건 작전이 아니라 학살이다. 항복한 사람도 쐈다는 증언이 있다. 며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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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가족 중 일부는 언론 앞에서 "제 아들은 마약에 빠진 범죄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편히 쉬게 해주세요. 경찰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 발언은 브라질 사회의 깊은 상처를 드러냈다. 가족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 그게 파벨라의 현실이다.


다음 날, 수십 명의 파벨라 주민들이 리우 주정부 청사 앞에 모여 "살인자들!"이라고 외쳤다. 일부 가족들은 거리에 수십 구의 시신을 늘어놓고 항의했다.



국제사회의 개입과 대통령의 딜레마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성명을 내고 "끔찍하다"며 브라질 경찰 개혁을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도 조사단 파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리우 주지사 클라우지우 카스트루는 즉각 반발했다. "우리는 마약테러리즘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방탄복과 군복으로 중무장한 전투원이었다. 브라질은 범죄에 맞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리우 시장 에두아르두 파이스도 "도시가 범죄조직에게 인질로 잡혀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반응은 달랐다. 법무장관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작전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것에 "경악했다"고 한다. 연방정부는 협조 요청조차 받지 못했다.


대통령은 곧 신중한 입장을 냈다. "마약에 빠진 사람들도 사회의 희생자입니다.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이 발언에 여론은 폭발했다. "대체 누구 편인가? 범죄자 편인가, 시민 편인가?" "이런 태도가 나라를 병들게 만든다."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했다.


아르헨티나는 붉은사령단과 PCC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브라질 국경에 "최고 경계령"을 발동했다. 국가안보장관 파트리시아 불리치는 브라질인 입국자를 "철저히" 검사하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일, 리우 출신 3명이 불법 국경을 통해 아르헨티나로 넘어오다 체포됐다.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작전을 "야만적"이라 부르며 2002년 메데인 코무나 13 학살과 비교했다.


파라과이는 붉은사령단 조직원들의 도피 가능성에 대비해 브라질 국경 경비를 강화했다. 미국 국무부는 리우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라이벌 조직의 반격


작전이 끝난 직후, 순수 제3사령단(TCP)이 움직였다. 붉은사령단의 혼란을 틈타 남겨진 조직원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라질 언론이 입수한 영상에는 TCP 조직원들이 거리 한가운데서 붉은사령단 조직원을 머리에 총을 쏴 처형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더 데려와, 씨발"이라고 소리쳤다.


리우는 다시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도로가 봉쇄되고, 버스와 차량 70여 대가 불탔다. 도시는 비상 2단계로 격상됐다가, 하루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참고로 숫자로 보는 브라질의 폭력 상황이다.


연간 살인 건수: 약 47,000건 (2023년 기준)

하루 평균 살인: 129명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 22.0명 (한국은 0.6명)

지난 30년간 총 살인자 수: 약 120만 명 (한국전쟁 사망자보다 많다)

2024년 리우 경찰 작전 중 사망자: 약 700명 (하루 평균 2명)

2021년 자카레징유 작전: 28명 사망

1992년 카란지루 교도소 학살: 111명 사망

2025년 봉쇄작전: 132명 사망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경찰 작전)


브라질에서 30년간 죽은 사람이 시리아 내전 10년간 사망자보다 많다. 이게 단순한 범죄인가? 아니다. 이건 구조적 폭력이다. 이번 작전으로 132명이 죽었다. 하지만 파벨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가난도, 부패도, 절망도 그대로다.


3개월 후, 새로운 조직원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12세 소년이 총을 들 것이다. 경찰은 또다시 헬기를 띄울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일자리, 교육, 상하수도, 전기, 학교, 병원. 국가가 파벨라에 들어가야 한다. 총이 아니라 복지로, 탄압이 아니라 기회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시도된 UPP(경찰평화유지부대) 프로그램은 파벨라에 영구적인 경찰서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였다. 처음엔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예산 부족, 훈련 부족, 그리고 경찰의 폭력과 부패로 주민들의 지지를 잃었다. 2021년, 대부분의 UPP가 폐쇄되며 프로그램은 실패로 끝났다. 범죄조직들은 다시 영토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브라질 정치권에서 인기가 없다. "범죄자에게 돈을 쓴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도시를 전쟁터로 만든다"는 표현도 정치적으로 불편하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된다. 리우의 밤하늘에는 오늘도 헬기가 떠 있다. 서치라이트가 파벨라를 훑는다. 어디선가 또 총성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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