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오래 생각하다 그 녹찻잔이 떠올랐다.
그 일인용 청자 녹찻잔은 S출판사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쓰던 것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이었던 스물네 살의 나는 교정 교열과 필자 관리 외에도 아침 청소, 복사, 우체국과 은행 심부름 등의 일들을 맡고 있었는데, 회사를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 드시겠습니까?” 묻고 커피를 타는 일도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다. 커피만 빼고 다 좋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손님이 있으면 허리 높의 찬장에서 그 녹찻잔을 꺼냈다. 잔에 더운물을 채우고 찻잎대신 녹차 티백을 담갔다가, 색이 우러나면 건져낸 뒤 쟁반에 내갔다.
그 봄날 오후, 밖에서 함께 점심을 들고 온 필자 선생님들은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 모여앉아 활달한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들의 기호를 물은 뒤 몇 잔의 커피를 머그잔에, 녹차는 녹찻잔에 내갔다. 담소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 나에게 “이것 좀 치워라"라고 말했다. 언제나처럼 빈 잔들을 쟁반에 옮겨 나오던 길에 나는 잠깐 쟁반을 놓쳤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에 발이 걸린 것도 아니고, 어지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어어, 손에서 힘이 풀리네, 생각하는 동시에 녹찻잔이 가장 먼저 떨어져 요란하게 산산 조각났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잔의 파편들을 쟁반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출입문 오른편의 그 자리는 마침 조명이 없는데다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어째서인지 손이 빨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희끗한 상감이 새겨진 큰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아름답던 게 깨어졌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어두운 곳에 쪼그려 앉아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 늦게 최인호 선생님이 내 책상에 와서 불쑥 물었다.
많이 힘드니?
그 눈길에 헤아릴 수 없는 따스한 연민이 들어 있어서, 내가 힘든가, 그제야 문득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손에서 힘이 풀렸었나. 그 파편들을 빨리 주울 수 없었나. 뭐라 대답할 말이 없을 때 늘 그렇게 했듯,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조금 웃었던 것 같다.
헬로!
최인호 선생님은 언제나 그렇게 외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활짝 문을 열어젖히면서, 또렷하고 큰 발성으로 헬로! 무슨 빛이나 바람 같은 걸 몰고 오듯 힘차게 걸으며, 앉거나 서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 활짝 손을 들어올리며 인사했다. 경옥씨 헤어스타일이 바뀌었어요? 멋진데! 야, 오랜만이야, 최차장! 자신만만한 청년처럼, 또는 개구쟁이처럼. 거리낄 것 없는 인생이라는 특권을 선물받은 사람처럼.
그 거리낌없음의 세계에서 모두가 평등했다. 국회의장 출신의 출판사 오너부터 막내 신입사원인 나까지, 그에게는 정확히 똑같은 존중의 대상이었다. 상대의 나이가 많건 적건, 지위가 높건 낮건 상관없이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느슨히 기대고, 다리를 꼬고, 한 팔을 길게 등받이에 펼쳐놓고 멋들어지게 시가를 피운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1993년 2월, 『길 없는 길』의 마지막 교정을 보러 온 그는 그렇듯 거리낌 없는 명량성을 담아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춘향이가 왔네!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땋고 앉아 교정을 보고 있던 수습사원의 첫인상이 재미있었던지, 내가 퇴사할 때까지 선생님은 기분 좋을 때마다 나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 춘향이. 다른 사람이 그렇게 놀리곤 했다면 어쩌면 기분이 나빴을까? 당신이 지은 별명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듬해 1월, 내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선생님은 반가워하며 신문을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마침 비어 있던 주간실에서 다 읽은 뒤 불러서 소감을 들려주셨다. 참 어두운 이야기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이 어두운 가족이 바다로 소풍을 가는구나. 그게 나는 참 좋더라.
시간이 흘러 마지막으로 그 출판사에 출근했던 토요일, 선생님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까지 나를 앞에 앉혀놓고, 점심도 거르시고 두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제는 몇 가지 조언들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소설을 맨 앞에 둬야 한다. 그러려면 착하게 살려고만 하면 안 돼. 선의의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특별한 필체를 기억한다. 이를 악문 흔적처럼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한글에서 파생된 새로운 문자 같은 글자들.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그 원고를 편집하려면 선생님이 직접 불러줘야 했다. 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은 그가 한 문장을 부르면,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 그걸 입력한다. 키보드 소리가 멈추는 걸 듣고서 선생님이 다음 문장을 부른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그의 책상을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을 보았다. 원고지 묶음, 준비중이던 장편소설의 자료들, 돋보기안경. 작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 무섭게 깨달았다. 새 소설의 자료 준비를 끝냈지만, 이제 쓸 일만 남았지만 쓸 수 없다. 머릿속에선 이미 시작되었을 그 책이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투병중에 선생님이 쓴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던 밤의 전율을 기억한다. 독실한 가톨릭인 그가 때로는 거의 신을 등지는 날것의 의문을 던지며, 삶과 죽음 사이의 벼랑으로 힘껏 몸을 밀어내, 처절한 정직성으로 움켜쥔 소설, 평생 동안 맨 앞에 두었던 소설이 그를 끌고 나아간 순간들의 기록.
김연수씨를 통해 연락을 드리고 여백출판사로 찾아간 겨울, 방사선 치료 때 성대가 상해 작고 칼칼해진 목소리로 선생님은 나를 맞아주셨다. 우리 강이가 왔어? 이제는 춘향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여전히 재미있어하는 듯 활짝 웃고 계셨다.
그날 선생님은 가까운 바다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조개구이를 사주시고, 언덕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도 사주시고, 바람 찬 방파제를 잠깐 함꼐 걸으셨다. 돌아오는 길엔 함명춘 선배에게 오늘 눈이 왔어야 하는데…… 중얼거리셨다. 일행들이 화장실에 가서 둘만 남았을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걸 영영 알지 못할까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인 것처럼 그렇게 반복하셨다.
나는 신을 믿어본 적이 없으므로, 명동성당에서 집전된 선생님의 장례미사에서 모두가 부활을 합창할 때 이방인처럼 구석에 얼어붙어 있었다.
같은 이유로, 선생님이 마지막에 주님이 오셨다고 딸에게 말씀하신 것을 나는 오로지 문학의 일부로 이해한다. 가장 극심한 고통이,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그렇게 바꿔 부를 수 있었던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 낙차의 서늘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녹찻잔을 생각한다. 깨어졌어도 아름다운 조각들을 들여다보며 한참 쪼그려 앉아 있었던, 어두운 줄도 모르고 어두웠던 그 시절에, 내 책상으로 최인호 선생님이 가볍게 걸어왔던 것을. 담담한 진실을 담은 눈으로 내 눈을 건너다봤던 것을. 나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니?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잊지 않을 것이다.
《문학동네》, 2013년 겨울(77)호, pp. 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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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712003?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977147?sid=103